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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교육으로 읽는 이 시대의 교육: 살레시오 교육과 새로운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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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4 ㅣ No.132

[예방교육으로 읽는 이 시대의 교육] 살레시오 교육과 ‘새로운 운동장’

 

 

우리가 실컷 듣고 되뇌었던 ‘격리’라는 말을 영어로는 ‘quarantine’이라 하는데, 이 말은 라틴어에서 온다. 이는 ‘40’을 뜻한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노아의 홍수 때 밤낮으로 40일간 비가 내려 홍수가 계속되었고(창세 7,12), 모세는 하느님을 뵙고 계약의 판을 받으러 구름을 뚫고 올라간 시나이 산에서 40일을 지냈으며(탈출 24,18), 백성들의 배반으로 한 번 더 40일을 주님 앞에 엎드려 있어야 했고(신명 9,25), 약속의 땅을 정찰하는 데에 40일이 걸렸으며(민수 13,25), 엘리야는 40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고(1열왕 19,8), 에제키엘 예언자도 40일을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집안의 죄를 짊어져야 했고(에제 4,6), 요나 예언자는 40일이 지나면 니네베가 무너진다고 호소하여(요나 3,4) 사람들을 살려 냈으며,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이를 때까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만 했다(탈출 16,35).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셨고(마태 4,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사도 1,3). 이를 두고 많은 성서학자나 신학자는 ‘40’이라는 숫자가 ‘변화’를 뜻한다고 해석한다. ‘40’은 사람과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믿고 기도할 수 있게 된다는 상징어이다. ‘변화’는 ‘회개’이다.

 

사람들이 40일도 훨씬 더 넘게 격리생활 하는 중에 강은 맑아졌고 계절 따라 나무와 풀이 자라났으며 대기는 맑아졌고 범죄율도 낮아졌으며 전쟁마저 멈췄다. 일과 벌이에 바빴던 사람들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갔으며 온 세상 사람들이 종교를 막론하고 대피정을 하며 기도했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하게 되었다. 2020년이라는 해를 맞아 우리는 그렇게 ‘20+20=40’임을 호되게 절감했다.

 

살레시안도 변화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 변화는 여러 갈래에서 와야 하지만, 적어도 그 한 축은 살레시오회가 지닌 ‘운동장’ 개념의 재해석에 달려 있다.

 

 

돈 보스코가 전한 복음 : ‘로마에서 보낸 편지’

 

1884년 5월 10일 돈 보스코가 로마에서 보낸 유명한 편지가 있다. 이 편지는 현재 살레시오회의 회헌 · 회칙의 부록으로 실려 있을 만큼 살레시오회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헌이다. 최근 전 세계 살레시오회의 대표들이 6년에 한 번씩 모이는 제28차 살레시오회 세계총회에서 돈 보스코의 9대 후계자인 파스콸 차베스 신부는 이 편지를 두고 “로마에서 보낸 돈 보스코의 편지는 ‘돈 보스코가 전한 복음(the gospel of Don Bosco)’입니다. 이는 (살레시오회) 초기의 숨을 호흡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규범입니다. 즉, 하느님을 향한 영성이며, 청소년을 위한 사목이고, 우리의 현존이 더욱 복음화를 위한 것이 되어서 젊은이들을 교회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구조입니다. … (이 편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개인적 차원의 회개, 청소년들을 향한 사목적 회개, 그리고 우리의 현존이 더욱 복음화되어서 청소년들을 교회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도록 구조적 회개를 도모해야 합니다.”1)라고 말한다.

 

이 편지글이 살레시오회 안에서 이렇게 중요한 문헌이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글에 무엇보다도 돈 보스코의 마음을 담은 살레시오회의 생활양식이 서술되어 있어서, 이 글이 살레시오회와 관련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자신을 거듭 돌아보게 하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 편지글은 돈 보스코께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1870년까지의 오라토리오와 돈 보스코의 후계자들이 뒤를 이었던 당시의 오라토리오를 비교하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1870년 이전의 오라토리오 : 오락 시간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뛰는 사람, 달리는 사람, 깡충깡충 뛰는 사람, 여기서는 개구리 놀이, 저기서는 공치기, 한쪽에서는 젊은이들 한 떼가 모여서 어느 신부님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고 다른 쪽에선 어떤 부제님을 둘러싸고 등 넘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이 보였고 그들 주위에서는 젊은이들이 명랑하게 웃고 떠들며 노래했습니다. 친절과 신뢰로 가득 찬 분위기였습니다.

 

현재의 오라토리오 : 즐거운 함성이나 노래, 그 같은 활발한 움직임은 전혀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의 태도나 얼굴에는 대부분이 싫증, 피곤, 짜증, 불신들이 나타나 있었고, 그래서 내 마음은 아팠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기둥에 기댄 채 쓸쓸히 생각에 잠겨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단체 오락에 끼지 않으려고 계단이나 복도, 또는 뜰 쪽에 있는 발코니에 나와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자기들끼리 그룹을 지어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무엇인가 소곤거리고 주위를 힐끗힐끗 살피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나타나는 미소들은 성 알로이시오가 있었다면 반드시 얼굴을 붉혔을, 눈짓들을 겸한 그런 미소였습니다. 더구나 개중에는 노는 것이 도무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2)

 

이 대목은 돈 보스코께서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집의 구조를 볼 때 성당, 다양한 실내수업이 진행되었던 교실들, 기숙사, 그리고 운동장 중에서 공간적으로 볼 때 주로 운동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돈 보스코께서 아이들과 함께 시설이나 구조물이 없는 들판에서 첫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살레시오회 안에서 운동장 없는 살레시오 집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살레시오회의 모든 일은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살레시안의 삶을 보여 주는 위의 편지글이 살레시오회에 기록한 복음이라면, 살레시오회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노는 ‘운동장’은 가히 성역(聖域)이다. 살레시오회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땀 흘리며 함께 뛰는 살레시오 회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본연의 모습으로 여긴다. 그것이 살레시오회 사목의 위대한 비밀이라고도 말하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모든 것을 잊어 갈지라도 운동장에서의 우정만큼은 잊지 않을 것을 믿고, 교실에서 가르치는 교수나 선생이 되기보다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는 살레시안이기를 꿈꾼다. 이는 자발적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가 바로 운동장이라고 믿고, 학교가 되었든 가정이 되었든, 정규학교이든 비정규학교이든, 그 어떤 교육기관이라도 아이들과의 교육적 삶과 교육적 사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운동장’이라는 비밀 열쇠가 있어야만 한다고 살레시오회는 확신한다.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면서 살레시안과 아이들은 가까워지고, 그 가까워짐이 서로를 사랑으로 이끌며, 서로의 사랑은 신뢰가 된다. 그래서 살레시오회의 회헌에서는 ‘영원한 기준인 돈 보스코의 오라토리오’라는 소제목을 달아 ”돈 보스코는 당신 최초의 오라토리오에서 사목상의 전형적인 체험을 하였다. 그 오라토리오는 젊은이들을 맞아들이는 집이었고, 복음을 전파하는 본당이었으며, 삶을 준비하는 학교였고, 친구로서 만나고 기쁘게 생활하기 위한 운동장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서 이 발도코의 체험은 모든 활동과 사업에 대한 식별과 쇄신의 영원한 기준이 된다.”3)는 아름다운 명구를 제시한다.

 

실로 살레시오회에서 “‘운동장’의 가치는 청소년들이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마음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주인공이 되어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는 범주로 이해된다.”(파스콸 차베스 신부) 그런데, 이 ‘운동장’을 먼지 흩날리는 실제의 운동장으로만 이해하고, 그곳에서 땀 흘리며 아이들과 함께 뛰는 것만이 청소년을 위한 사목이며, 그렇지 않은 살레시안들은 함량 미달이거나 뭔가 문제성이 있는 살레시안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경험적으로 보아서 살레시안의 집단 내면에는 이러한 강박이 어느 정도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내용이겠지만, 나는 살레시오 집에 오기 훨씬 전, 어렸을 때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아 기절한 적이 있었고, 야구 시합에서 투수를 하다가 공을 왼쪽 정강이에 맞은 뒤로부터 크고 작은 공이 두려워 운동장에서 항상 적극적이지 못했다. 이는 다른 말로, 자신을 탓하는 열등감 속에서 내가 과연 살레시안으로서 적합한지를 수도 없이 되물어야만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아이들과 새로운 운동장

 

오늘날 돈 보스코께서 살았던 ‘운동장’의 삶은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예로서 100명의 아이에게 자유 시간(‘로마에서 보낸 편지’에서는 ‘오락 시간’이라고 번역됨)을 주면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놀라고 한다면 아이들이 보이는 자유 시간의 패턴은 어떤 모습일까? 돈 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서도 뛰는 애들, 소리 지르는 애들, 공을 차는 아이들이 있었듯이 각자의 성향에 따라서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아이들, 교실에서 잠이나 자려는 아이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아이들, 게임이나 하고 싶은 아이들, 음악 감상을 하고 싶은 아이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은 아이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아이들, 애완동물과 놀고 싶은 아이들, 등산하고 싶은 아이들, 무엇인가 만들어 보고 싶은 아이들, 스마트 폰으로 채팅이나 하고 싶은 아이들, 무엇인가를 글로 써 보거나 그려 보고 싶은 아이들 등등 수많은 형태가 있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햇빛을 보게 해야 하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회인으로서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내용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살레시오회의 ‘운동장’ 개념은 적어도 아이들에 따라서 다양화되고, 시대와 역사적 조류에 따라서 재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의 언어를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언어는 문화의 소산이고, 진화는 시대의 주제를 담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자의 편의대로 자칫 아이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한 공간에 몰아넣으려 하거나 우격다짐으로 아이들을 운동장에서 뛰게 할 수도 있고,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행동만이 살레시오회의 고전적인 생활양식이라는 오류에 빠지면서 수많은 다른 가능성을 지녔으면서도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놀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로부터 저평가되거나 자격지심을 갖는 살레시안들이 생겨날 수 있다. 살레시오 집에 사는 모든 아이들과 살레시안들이 운동선수일 수 없고 또 운동선수인 척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 살레시오회가 ‘운동장’에 관한 개념을 어떻게 재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살레시오회의 구조 회개의 영역 설정이 달라지고 살레시오회의 사목적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운동장’의 재해석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운동장에서 애들과 함께 땀 흘려 뛰는 살레시오적인 희생과 헌신이라는 고유 가치를 훼손하거나 혹은 합리적인 회피의 명분을 갖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임방이 운동장일 수 있고, 노래방이 운동장일 수도 있어야 한다. 돈 보스코께서 ‘로마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일차적인 의미에서 살레시오회 안에 운동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시지만, 같은 편지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일, 우리 마음에 맞는 일만을 하는 것은 참된 순명이 아니라, 다만 자기 의지를 만족시키는 것뿐임을 잘 알아 두십시오. … 유치한 듯한 그들의 모든 일에 끼어서, 그들이 좋아하는 일들 안에서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젊은이들은 웃어른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하면 그들의 수고는 가볍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통해 ‘운동장’의 현대적 재해석이 필요함을 강조하셨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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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스콸 차베스 신부, ‘로마에서 보낸 편지: 돈 보스코가 전한 복음’, 2020년 2월 26일.

 

2) 살레시오회 회헌 · 회칙: ‘부록’ 233-235쪽에서 발췌.

 

3) 살레시오회 회헌 40조.

 

[살레시오 가족, 2020년 7월호(163호), 김건중 신부(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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