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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예수님의 고난을 계시하는 만물과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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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12 ㅣ No.1835

[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예수님의 고난을 계시하는 만물과 이웃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생태 회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하신 2015년 가을이었습니다. 한 수녀회에서 이 회칙을 첫 장부터 6장까지 한 달에 한 장씩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회칙 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에 대해서 발표하시던 수녀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며 발표를 잠시 멈추셨습니다. 그날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었는데요, 함께 공유해 주시기를 청하자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미사 때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황폐해져 가는데 이런 세상에서 당신이 왕이십니까? 이런 물음이 올라오면서 너무 아팠습니다. 자연은 이토록 무참히 파괴되고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에 싸여서 각박해져 가기만 하는데, 주님, 당신이 정말 왕이십니까?”

 

요한 복음에서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이 물음은 4월초에 맞았던 성금요일 복음에서 온 것인데요, 이때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 18,37)

 

빌라도는 진리를 따라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진리를 등진 유다 지도자들과 군중의 목소리를 따릅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예수님을 내주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합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려다보시는 가운데 당신이 받으신 숨과 영을 아버지께 맡겨드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주님, 당신이 주님이신 이유는 당신이 우리 위에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주님이신 이유는 당신이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이 생후 6개월 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저는 저의 주님이신 이유는 당신이 저 같은 사람들이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아픔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그들에게 파괴당하는 이 우주 만물의 주님이신 이유는 당신이 그렇게 파괴당하는 이 우주 만물 안에서 우주 만물을 통하여 “여전히” 일하시면서 이 우주 만물을 당신의 집, 당신의 친구, 당신의 계시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만물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끌어안으신 채 당신의 온 창조물 안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기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주시듯 당신을 우리 존재의 양식으로 내어주시면서요, 주님.

 

그러하오니 주님, 저희가 이 거룩한 때에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고 당신이 성령 강림을 준비하면서 자연 만물의 아픔을 당신의 고통과 연결해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자연의 파괴로 고통당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농부들, 특히 세월호에 갇힌 채 찬 바다 속에서 당신이 주시는 숨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간 사람들, 당신의 민중들, 당신의 미얀마 시민들이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아픔을 당신의 고난과 함께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당신께서 있어라 해서 생긴 빛 안에서, 당신이 마련하신 하늘과 땅 사이에서, 당신이 흙에서 내주신 것들을 먹고 당신의 숨과 당신의 물로 살면서, 이 모든 당신의 선물에 감사하며 당신께 받은 것들을 함께 나누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생태인”으로서, 당신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당신 부활의 현존으로 충만하게 하신 당신의 온 창조물과 당신의 온 사람들과 더불어, 생명을 주시는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이루시는 살림의 영광을 아름답게 경축하게 해주십시오.

 

한 자매님은 자신을 설명해 주는 자연물로 천둥과 불을 선택하시고 꺼려지는 것으로 천둥을 선택하셨습니다. 자신과 가까운 것으로 천둥과 불을 꼽은 이유는 자신이 분노할 때 천둥과 불과 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천둥이 꺼려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자매님은 처음에 천둥과 불을 선택해 놓고 이것들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이 무척 싫고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천둥은 하늘의 의노를 상징하는 듯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모습에서 꺼려지는 천둥의 모습은 의노가 아니”라고, “본성적인 인간의 화, 분노를 표현하는 모습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둥이 “천둥을 무섭고 공포로 느끼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힘든 대상일지” 생각하면서, 사람들도 자신을 그렇게 “피하고 싶은 성격”의 소유자일 것 같다며 이렇게 진술하십니다.

 

“나의 이성과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감정으로 치달을 때 시끄러움을 넘어서 남들이 다 알도록 분노를 알리는 나의 모습이 천둥처럼 공포스러우면서도 어리석은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나를 수련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를 천둥처럼 다 빛으로 나를 드러내고 울림으로 나를 드러냄이 아닌 침묵과 평화로운 온유한 마음을 가지기를 희망하기에 나의 이러한 결점을 상징하는 듯한 천등이 부담스럽다.”

 

이런 성찰과 함께 자매님은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불의 모습이 더 맞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불은 나의 인내 없고 금방 뜨거웠다 식고 물이나 바람에 쉽게 꺼져버리는 약함도 표현하는 듯하다.”

 

자매님은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슬펐다.”고 “내 모습이 너무 화로만 보이”고, 자신의 “단점이 커 보였다”고 하셨습니다. 자매님은 “나 자신이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긴장과 무서움을 느끼는 모습도 보”면서 “내 어둠만 부각되는 것 같아 천등이 무서웠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나의 어둠이 나를 괴롭힐 때 그것을 보고 ‘아, 내가 그렇구나!’ 하며 주님 앞에 나를 비울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공포스런 굉음과 마찰을 관계 안에서 평화로이 지혜스럽게 극복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이와 동시에 자매님은 이 성찰을 통해서 받은 선물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천둥도 좋은 점이 있었고 불도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쓸 때 얼마나 중요한지 보게 되었다.” 실지로 자매님은 더운 지방에서 “천둥과 벼락을 동반하는 우기를 보낸 적이 있는데 정말 천둥 번개가 내가 머리로 알고 있는 공포와 분노가 아닌, 참 신비롭고 멋진 풍광이었음을 기억한다.”면서 이렇게 진술하십니다. “어두운 밤하늘 끝도 없이 번쩍 가르는 번개가 보이고 귓가에 우렁차게 천등소리가 들리면서 비가 쏟아지는 그 밤하늘을 기억한다.… 더위로 지칠 대로 지친 환경에서 자연이 주는 생명의 활력을 피어나게 하는 에너지의 공급 같았다. 시원하게 한 계절의 밤을 보낼 수 있는 속이 뻥 뚫리는 신비로운 밤, 멋진 우기의 시간이었음을 기억한다. 천등과 번개, 비가 오는 밤을 설렘으로 기다리는 때도 많았다.”

 

어떠신가요, 〈빛〉 독자 여러분? 공감이 되시는지요? 이 자매님은 천둥과 불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통해서 이렇게 기도하시기에 이릅니다. “천둥과 불을 선택하면서 제일 그리운 것은 물, 하늘, 바람, 산, 못, 땅이 더 좋아보이고 그리웠다. 물이 제일 많이 생각났다. 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격동치면서 나를 괴롭히는 이 생각의 불을 꺼달라고 하는 마음에서. 나의 모습에는 천등과 불이 있는데, 하느님의 천등처럼 의노와 정의가 아니라면, 분노로 나를 드러내는 모습이 아니었으면 한다.”, “매번 제 약함을 가지고 내 생각이 전부인 양 내란이 일어나는 나의 자아가 이제는 가없게 느껴진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평화와 친교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자매님은 우리 사회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자매님은 자연물들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하느님은 천둥과 불을 통해서 창조주께서 자연 안에서 함께 하시며, 대자연의 웅장함과 놀라운 신비는 인간을 살리고, 자연이 없어서는 인간이 살 수 없음을 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깨달음 속에서 자매님은 “나 역시도 이러한 큰 지구의 집에서,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창조된 작은 존재이지만 정말 깊이 사랑하시기에 영과 육을 주시고 나 자신을 지켜주시는 그분께 의탁해야 함을 느낀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대자연 안에서 신비하게 생명을 허락하신 그분의 위대하심에 작은 내가 찬미와 감사로 생명을 살아내야 함을 되돌아봅니다.”

 

이 자매님은 “아주 큰 틀에서 보니 지구와 내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구에 와서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 안에서 지구와 함께 지구의 일부로 지구와 더불어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다가, 몸은 지구로 돌려주고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영은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월간빛, 2021년 6월호, 황종열 레오(평신도 생태영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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