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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협ㅣ사목회

평신도를 무슨 말로 바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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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10

'평신도'를 무슨 말로 바꿀까요?

 

 

천주교 용어 위원회에서 10년 가까이 심의하고 주교회의에서 확정한 용어들을 모아 [천주교 용어집]을 지난 해 9월 1일에 펴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평신도'라는 용어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번 제기되었으나,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독자 제현께서 지혜를 모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씁니다.

 

평신도란 'Christifidelis laicus'(the lay Christian faithful)를 옮긴 말로,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laoV (형용사 laikoV)라는 그리스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사전에 정의된 뜻을 보면, 집합적인 의미로 일반 백성, 군중, 민중, 국민, 주민, 서민, 평민을 뜻하며, 하느님의 백성을 가리킬 때에도 이 낱말을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용어 위원회가 구성되기 전에도 '평신도'라는 말이 교회의 계급을 전제로 하는 부정적인 뜻을 지닌 말이라고 하여 그 개정이 주교회의에 건의되었습니다. 주교님들께서는 그 같은 건의안을 제출한 평신도들의 주장에 공감하시면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이 말을 그대로 써 왔습니다. 용어 위원회에서도 서너 번에 걸쳐 이 용어를 재론하였으나,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용어 위원회의 심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평신도'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교회법전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교계 제도 안에서 신분의 구별과 개념상의 명확한 구분이 필요할 때에, '평신도'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신자' 또는 '신도'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으나, 그 개념이 성직자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 신자를 포괄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cbck.or.kr)에 '평신도'라는 용어를 개정하자는 주장들이 게시되었고 또 그에 대한 다른 의견들도 제시되었습니다. 저는 그 대안의 제시를 요청하였으나, 아직까지는 '성도'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마땅한 용어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견들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재훈 님이 http://www.spill.or.kr에서 옮겨 온 글에서 발췌

 

천주교 용어 위원회에서 규정한 용어는 미래의 교회가 변함없이 사용할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되어야 한다. 용어의 선택에 있어서 지금의 용어보다 더욱 정확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용어가 발견된다면 바꾸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입각하여 정확한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천주교 용어 위원회는 신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용어 위원회에서는 평신도라는 용어가 신자들을 성직자나 수도자들로부터 폄하하기 위해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용어의 사용 목적은 단지 신분의 직능을 표시하는 용어라는 것, 또한 '평'이라는 글자에 대한 뜻 안에 '일반 또는 일반적'이라는 뜻의 'generalis'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사전에서 '평'이라는 용어는 특별한 직무나 책임을 맡고 있지 않은 계층을 통칭하는 용어로 정의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받게 되는 직무와 관련하여 '평신도' 또한 사제와 수도자들과 동등하게 직무를 부여받게 됨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인용하며 밝힌 바 있다. 그 문헌에서는 명백하게 '평신도' 또한 특별한 직무를 받은 존재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사전적인 의미에서 밝힌 바 있는 특별한 직무나 책임을 맡고 있지 않은 계층을 통칭하는 용어로서의 '평'은 그 사용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다시 대화를 재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미래의 교회를 위해서 ...

 

 

* 강대인의 답변

 

'평신도'라는 말을 바꾸자는 주장의 일면에 이해가 갑니다. '평신도'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그냥 '신자'라고 하여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신자'라는 말에는 교황님부터 저 같은 껍데기 신자까지 다 들어가지요. 교계 제도 안에서 신분의 구별과 개념상의 명확한 구분이 필요할 때에 '평신도'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 용어 위원회의 결정입니다. 사제나 수도자와 구별할 수 있는 좋은 말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좋은 대안을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용어 위원회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으므로, 님의 의견이나 이 토론방에서 이루어지는 의견 교환 내용을 용어 위원회 회의에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습니다. 용어 문제에서 제가 답답하게 생각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들어 온 일부 단체들이 외국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데, 정말 우리 구원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 들꽃 님의 글에서 발췌

 

- 용어는 존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엄중함을 기해야 한다. 천주교 용어 위원회에서 개정할 의사가 없음을 단정한 '평신도'라는 용어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 용어의 사용이 앞으로 한국 교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다볼 줄 아는 눈이 있었으면 .... 평신도라는 용어에 대해 용어 위원회는 '일반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용어 자체가 계급 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이 있다면 '특수'가 그 반대 개념으로 존재한다. 용어 위원회는 일반이라는 용어가 다른 계층과 동등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이라는 용어가 직분상 평등함을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특수'라는 상반된 개념이 그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특수'라는 개념은 '일반'이라는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계층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솔직해지자. 성직자와 평신도가 동등한가? 하느님 앞에서 동등한지는 몰라도 교회 안에서는 평등하지 않다. 한국 교회는 그 어느 지역 교회보다 권위적이다. 얼마 전에 [당대비평]에 실린 글에서 가톨릭 성직자들의 권위 의식을 문제삼은 바 있다. 어느 본당이나 실권은 성직자들이 쥐고 있다. 아무리 그 성직자가 겸손하다 해도 실권을 쥐고 흔드는 위치에 있다면 신자들은 예수님의 권위보다는 세속의 권위의 중심에 서 있는 성직자의 권위를 보게 된다. 작은 본당에서도 성직자의 세속적 권위는 절대적이다. 한국 교회의 상황이 이러하기에 '일반적'이라는 의미에서 무의식적 수동성을 함축하는 평신도라는 용어는 개정되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평신도를 수동적 존재로 규정하지 않았다. 평신도들은 직무를 받은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사제들이 직무적 사제직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 일반과 특수의 반대 개념으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교회 개념을 분열시키지 말아야 한다.

 

- 저는 평신도라는 용어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평신도를 일명 많이 쓰이는 표현인 병신도로 부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병신 노릇 많이 하고 있다는 입장일 수도 있고, 성직자 계층에 종속되어 있어서 제 목소리를 못 내는 수동적인 계층이라고 볼 수도 있기에 쓴 장난기 어린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도 제 밥그릇 못 찾아먹는 계층이기에 적당한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히려 교회 내 기득권 계층인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이 제대로 서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성직자들도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어두워서 평신도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착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 안에서 비추어볼 때 평신도라는 용어는 봉건주의의 잔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직적인 명령 체계, 자발성을 잃은 노예와 같은 평신도 ... 너무 심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의 본당을 보세요 .... 본당 신부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모든 행정적인 세속권은 본당 신부에게 있을 걸요? 본당 신부는 세속 권력의 핵심에 위치해 있을 겁니다. 신자들을 못 믿는 것이지요. 동등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여기질 않습니다. 평신도 제자리 찾기 운동은 용어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하인 님의 글에서 발췌

 

'평신도'라는 용어, 그 존재의 영성적 의미는 확실히 "은총의 이름이요, 구원받는 이름"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입니다. '일반'이니 '특수'니 하는 용어 싸움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수도자, 성직자, 천사, 구세주까지도 포함되는 그 존재 가치의 의의는, '일반'이라는 '평신도'를 위해서 있다는 데에서 '평신도'라는 이름이 지닌 복됨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平)! '신도'라는 보편성 앞에 붙은 이 '평'자를 볼 때마다 저는 '참으로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이 '평'들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증거를 우리는 '특수'라는 계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국 말의 '신도' 앞에 '평'자가 여남은 개 더 붙었으면 싶습니다. 낮은 자가 하늘나라에서는 높다는 원리를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리스어 'Laikos'에서 유래된 라틴어 'Laicus'를 영어로는 'Layman'이라고 하지 않습디까? 이 단어의 어의를 뜯어 보면, '피지배적 계층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별 볼 일 없는 '풋나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한국 교회에서는 '평신도'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풋나기'보다는 '평신도'가 훨씬 좀 부드럽고 무난한 용어일 성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 위원회는 당시 'Laicus'라는 용어를 대신할 만한 적당한 용어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교회 안에서의 'Laicus'의 위치와 기능적 역할에다 교의적으로 '최고의 축성'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거면 그만 되었지 않나 싶었습니다.

 

 

* 작은이 님의 글에서 발췌

 

저는 평신도입니다. 평신도라는 말이 어디에서부터 나쁘게 시작되었고, 나쁘게 사용되었는지...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제 경력이 너무 짧아 모르겠습니다만, 평신도를 '병신도' 취급하시는 신부님도 충분히 보았고, 스스로 병신도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신자들도 넉넉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평신도를, 사목의 대상만이 아닌, 하느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보아 주시는 신부님들도 충분히 만났고, 스스로 병신도가 되지 않기 위해, 어리석은 행동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자신을 닦는 신자들을 충분히 많이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왜 평신도라는 호칭이 그리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라는 형벌이 세상에서 제일 처참하고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이제는 곳곳에 십자가가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평신도라는 말의 어원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신자가 아닌 사람들 가장 가까이에 다가서서 살아가는 하느님 나라의 첨병이라는 의미로 다가설 수는 없을까요? 평신도라는 말을 버리고, 우리도 스승이나 아버지 같은 의미를 지닌, 높여 주는 존칭을 받고 싶으신가요? 저는 그냥 평신도로 있겠습니다.

 

 

* 들꽃 님의 대안:성도

 

'평신도'를 대체할 용어를 제시합니다. '평신도'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성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어떨까요? 200주년 신약성서 새번역에 많이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요새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개신교의 용어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희랍어 성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으로서 사도 시대에는 사도와 모든 믿는 이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굳이 구별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오늘날에 다시 이 용어를 차용해서 사용하면 어떨까요? 사제와는 구별된 신자 계층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된다면 '평신도'라는 어정쩡한 계급적 요소를 내포한 입장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신도라는 용어는 초대 교회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용어입니다. 신약성서 번역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라는 용어는 즐겨 사용하였던 용어입니다. 왜 교회의 정신과 부합되지 않은 평신도라는 용어가 교회 안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군요.

 

 

* 강대인의 이견

 

'성도'라는 말로 생활 신분이 구분될까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가운데에서 성품 사제직을 받지 않았거나 수도 생활 등 봉헌 생활을 하지 않는 신자들의 생활 신분을 교회법적으로 구분할 때에 쓰는 말이 없을까요? 이를 계급으로만 여겨 기분 나쁘게 알아들을 것이 아니라 엄연한 생활 신분의 구별로 받아들이면 우리 구원에 장애가 될까요? 구분을 하지 말자면, 용어를 두고 더 이상 논의할 이유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구분이 필요할 때에도 그저 구분하지 말자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성도'라는 말이 아니라도 지금 '신자'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성서에 나오는 '성도'라는 말에는 사도, 원로, 장로, 일꾼(보조자, 봉사자:부제)들이 다 포함됩니다. (성서의 이러한 용어들에도 분명한 직무의 구분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 말에는 또한 이미 세상을 떠난 거룩한 신자들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들의 친교'를 같은 말인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폭넓은 뜻으로 사용하여 왔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어떤 새로운 우리말을 찾아 쓸 때까지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용어 문제가 아니라 '교회론' 전체에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공동체인 당신의 거룩한 교회를 이 땅 위에 가시적인 구조로 세우시고 끊임없이 지탱하여 주시며, 교회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진리와 은총을 널리 베푸신다. 교계 조직으로 이루어진 단체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 지상의 교회인 동시에 천상의 보화로 가득 찬 이 교회는 두 개가 아니라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훌륭한 유비로 교회는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에 비겨지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께서 취하신 본성도 구원의 생명체로서 말씀과 떨어질 수 없도록 결합되어 말씀에 봉사하듯이,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교회의 사회적 조직도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우리는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교회의 사목을 맡기셨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교회의 전파와 통치를 위임하셨으며, 교회를 영원히 진리의 기둥과 터전으로 세우셨다. 이 교회는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교회 헌장, 8항).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을 선포하여야 할 신자들이 제단 근처에 몰려드는 평신도들의 성직자화도 우려할 일이고, 하느님을 섬기는 성직자들이 세속적인 일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성직자들의 세속화도 함께 경계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서 가시적인 교회의 위계 조직을 분명히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권위는 또한 봉사 곧 섬김에서 나온다는 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품위와 행위에서 진정한 평등(vera aequalitas quoad dignitatem et actionem)을 지닌다고 교회법이 밝혀 줍니다(제208조 참조).

 

[사목, 2001년 7월호, 강대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행정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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