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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성과 생명에 대한 책임: 미혼부 책임의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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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11 ㅣ No.1241

[복음살이] 성과 생명에 대한 책임 - 미혼부 책임의 법제화



한국 사회에서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미혼부 책임의 법제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위원이며 국문학자이자 ‘생명문화 연구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온 이광호 박사는 2014년 5월부터 미혼부에게 자녀의 양육비를 강제하여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게 하는 ‘미혼부 책임법’ 제정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4년 11월8일에는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주최로 공청회가 열려, 미혼부 책임의 법제화를 위한 다양한 논의와 함께 2014년 3월에 공포되어 2015년 3월25일에 시행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실질적으로 미혼부의 양육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2015년 4월11일 청계천에서 시행된 ‘2015 생명대행진’의 주제도 ‘모성존중사회건설’과 ‘미혼부 책임법 제정’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성적 일탈로 인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 중 혼전성관계와 미혼 임신, 그리고 미혼모의 발생은 미혼모 당사자는 물론이고 자녀와 주변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끼치게 됩니다. ‘미혼모(未婚母)’라 불리는 여성의 경우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한 심적 고통부터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인 부담, 학업의 중단, 양육권 포기에 이르기까지 성에 대한 무지와 미숙함으로 일어난 결과에 대한 책임과 고통의 짐을 홀로 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과 함께 책임을 져야할 아이의 아버지는 미혼부(未婚父)라고 불려야 하지만 그 표현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존재감이 없습니다. 미혼 남녀가 성관계를 하여 임신을 하게 되면 많은 경우 남자는 책임을 회피하여 연락을 끊어버리거나 낙태를 강요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출산을 선택하여도 많은 생부들이 그 양육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질 의사가 없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명과 책임을 보장할 법적 시스템 갖춰야

여성정책연구원이 2010년 양육 미혼모 7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및 8명에 대한 심층면접의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미혼모의 양육 및 자립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미혼모가 아이 아버지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받는 경우는 전체 응답자의 4.7%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응답자의 26%만이 미혼부에게 양육비 지급을 요구한 적이 있었고, 청구 소송 의향이 있다고 한 사람도 32.6%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미혼모들이 자녀 아버지와의 대면을 원하지 않거나 소송 절차와 소요 시간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설사 양육비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판결에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미혼부가 양육비 지급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설치되어 양육비 불이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미혼 한부모에게 양육비를 긴급 지원해주고, 양육비 채권 추심을 지원해준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높습니다.

전문가들은 성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혼전성관계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하고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더라도 낙태하지 말고 출산을 선택하라고 가르쳐도 생명과 책임을 보장해줄 법적 시스템이 없으니까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미혼부의 양육 책임을 법제화 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덴마크에서 16세 이상의 미혼부는 자신의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양책임을 지도록 법률로 양육 의무를 강제하고 있어서 덴마크 젊은이들은 스스로가 미혼부가 되지 않으려고 성적인 행동을 신중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미국의 경우 미혼부가 미성년자라면 아르바이트를 알선해 주는 등 학교에 다니면서도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거나,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하고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하면 월급에서 일정액을 갚게 합니다. 그러나 양육 책임을 지지 않은 미혼부에 대해서는 ‘아동지원국(Division of Child Support: DCS)’이라는 기관에서 이름만 가지고도 찾아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소송신청서 제출 시점부터 아이 아빠의 모든 재산 조회가 들어갈 뿐만 아니라, 해외에 도피한 미혼부까지 찾아내 양육비를 청구합니다. 게다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미혼모가 미혼부의 부동산 및 동산에 압류권을 행사할 수 있고, 여권 발급이 거부되고 운전면허증 등 각종 자격증이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비양육 부모의 소득에 전적으로 기초해 양육비가 산정되며, 급여공제명령, 구금과 운전면허 취소 등을 통해 이행을 강제합니다. 캐나다 역시 미혼부가 양육비를 책임지지 않을 경우 운전면허정지, 여권사용금지, 벌금과 구속이 단계적으로 시행되어 양육비 지원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미혼부 책임 법제화로 책임의 성교육 꼭 필요

지난 해 11월 공청회에서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장 이성효 주교는 이러한 미혼부 책임의 법제화가 가져올 효과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첫째 사회적 차원에서 젊은이들에게 성에 있어서 철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예를 보면 이런 법적 책임을 인식하면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강조한 성교육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둘째로 10대 청소년들이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관계에는 개인의 자유일 수 있지만 거기에 따르는 책임을 위해서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 첫 성관계 경험의 연령을 늦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청소년의 첫 성관계 경험 연령이 최근 13.6세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첫 성관계 경험 연령을 네덜란드의 경우처럼 성공적으로 늦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피임 교육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미혼부 책임의 법제화를 통한 책임의 성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임신한 후 홀로 버려서 낙태를 강요받는 여성들이 남성으로부터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낙태보다는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낙태가 합법화되어 있어도 낙태율이 현저히 낮은 이유는 아이를 낳고 돌보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지원이 잘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미혼부 책임의 법제화와 함께 우리 사회가 생명존중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일입니다. 성 개방 풍조와 쾌락주의 문화 속에서 청소년들은 성적 충동과 호기심으로 쉽게 성관계에 몰두하고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미혼 임신의 경우 낙태로 마감되는 경우가 다수이지만 그럼에도 심장이 뛰는 뱃속의 아기의 모습을 보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책임감으로 출산을 선택한 미혼모의 결정과 용기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입양대신 양육을 택한 경우 주변에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져 직장에서 차별을 당하거나 강제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혼자서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하기에 큰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이들이 자립하여 떳떳하게 아이를 양육하고 계속 공부하여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희망을 가지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법과 제도, 그리고 그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5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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