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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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수도승 생활의 탄생: 전(前) 수도승 운동이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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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74

[교부들의 가르침] 수도승 생활의 탄생


’전(前)-수도승 운동’이 기원

 

 

흔히 ’교회의 꽃’이라 일컫는 수도 생활(vita religiosa)은 그 뿌리를 수도승 생활(vita monastica)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수도승 생활의 기원을 살펴본다 함은 곧 수도 생활 일반의 기원을 살펴보는 일이 된다. 그리고 기원을 살펴본다 함은 그 본질과 교회 안에서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는 말과도 즉시 통한다.

 

교회 안에서 수도승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년대 중후반이라는 것이 대다수 사가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수도승 생활의 기원에 관해 마치 정설처럼 퍼져있는 오해가 하나 있다. 이에 따르면, 교회사의 무대에 맨 처음 등장한 그리스도교 수도승들은 안토니우스를 필두로 한 이집트 사막의 은세 수도승(anachoreta)이었다. 그 중 몇이 헐렁한 공동체를 이루자 파코미우스가 나타나 이들을 조직하여 회수도승(coenobita)이 등장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바실리우스가 파코미우스계의 수도승 생활을 개혁하고, 그러는 동안 이집트의 이 수도승 생활이 당시의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로 ’수출’되었다는 것이다. 꽤 명망있는 저술가들마저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의 기원이 이집트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오늘날도 더러 본다. 놀라운 일이다. 이집트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사료들이 수도승 생활의 역사가 그렇게 단선적인 발전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와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 등에서의 수도승 생활에 관한 근래의 연구들은, 수도승 생활이 각각의 지역에서 대체로 독립적인 뿌리를 지니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의 기원은 이집트 사막보다는, 이전부터 교회 안에 이미 존재하던 이른바 ’전(前) 수도승 운동(pre-monachismus)’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전-수도승 운동’은 그리스도교 탄생을 전후로 지중해 문화권 전역과 근동 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마치 시대 사조(思潮)와도 같았던 당대의 더 광범위한 수행 운동 맥락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신비적 수행 운동, 동양에서 유입된 종교들, 여러 영지주의 유파들, 마니교, ’엔크라테이아’라 불리던 금욕 운동, 근동 지역 전체에 널리 퍼져있던 세례 운동 등이 바로 이 사조의 흐름을 타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중 마지막에 거론한 두 가지는 유대 계통의 수행 단체인 쿰란의 엣센파 공동체와 ’치유자들(테라페우테스)’의 공동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큰 수행 사조 속에서 이미 200년대 중반 이전에 초기 그리스도교 수행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아직 ’수도승’(monachos, monachus)이란 용어도 문헌들 속에 거의 발견되지 않거니와, 뚜렷한 제도로 조직된 수도승 생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살면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그리스도교 수행자들과 그들이 때로 형성하던 헐렁한 공동생활은 독신(獨身), 시편기도, 단식 등 후대의 본격적인 수도승 생활의 중요 요소들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요컨대 그리스도교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수도승 생활은 바로 이렇게 형성된 초세기 교회 내의 수행 운동을 모체로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흔히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위와 같은 탄생 배경을 지닌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의 실질적 기원이 복음이라기보다는 복음 외부의 철학-종교적 전통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한 때 ’유다계 수행 운동 유입설’, ’헬레니즘 유입설’, 인도 영향설 특히 ’불교 수도승 전통 유입설’ 등이 나왔다. 주로 개신교 학자들에게서 나온 이 견해들의 공통점은, 직접적 증빙 자료가 없으면서 이미 형성된 부정적 가치판단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 전반을 재단하고, 그 기원에 관한 사료도 그런 각도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호교적 입장에 흐른 나머지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은 이런 외부적 요인들과는 전혀 관계없었다"고 주장한다면 이 역시 진지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태도일 것이다. 모든 자료를 종합해서 볼 때,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요 뿌리가 되는 것은 복음이 제시하는 그리스도 추종(Sequela Christi)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초세기 수도승들은 자신마저 포함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뒤를 따르라는 급진적인 초대를 복음 안에서 발견했고, 이 초대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당대의 광범위한 문화-종교적 맥락에서 꽃피고 있던 몇몇 수행 방편들이 자연스레 채택(토착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의 ’소금끼’는 바로 이 ’급진성’(radicalism)에 있다. 행여 발자국을 놓칠세라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바짝 뒤쫓으며, 복음의 요구를 완화시키지 않고 에누리없이 실천하는 데에 있다. 수도승을 뜻하는 ’모나코스 monachos’란 그리스말의 어근이 ’하나(monos)’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우선 자기 안에서 ’하나’를 이룬 사람으로서(마음이 갈라지지 않음) 하느님을 만나 하느님과 「하나」를 이룬다. 그리하여 즉시 동료 인간들과도 심원한 차원에서 「하나」를 이루는 사람이다. 독신의 수행도 은둔의 수행도 모두 이런 ’하나’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런 단순함(haplotes)의 추구야말로 신구약을 면면히 꿰뚫고 흐르는 유대-그리스도교 윤리의 핵심이다. 본격적 수도승 생활은 세상으로부터 어느 정도거리를 두는 것을 큰 특성으로 삼는다. 그 탄생과 성장은 밀라노 칙령(313)을 기점으로 교회의 세속화가 시작되는 때와 시기적으로 거의 겹친다. 이 사실 자체가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도자들의 역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웅변이라 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2003년 8월 31일, 이연학 신부(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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