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영적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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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13 ㅣ No.802

[레지오 영성] 영적 달인

 


신앙의 기본기

 

어떤 일에서든 달인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쓸데없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기본기가 몸에 배게 되면 헛된 힘을 쓰지 않고도 자기 일을 훌륭히 해냅니다. 기본기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사람은 폼만 요란할 뿐 실력도 늘지 않고 결과도 신통치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기본기가 튼튼해야 실력도 늘고 좋은 성과도 거두게 되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성당에 다니고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 중에도 신앙의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지 못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기도하지만, 기도의 응답을 얻지 못해 원망하는 때도 많지요. 하느님은 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실까요? 내 신앙은 왜 충만함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신앙의 기본기가 제대로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기본기는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과 연결되어야만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과 축복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연결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호흡하시는 하느님의 숨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창세 2,7) 창조하셨다는 것은 당신의 생명을 인간에게 넣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영’(spirit)이라는 단어는 본래 ‘숨. 호흡’(πνεῦμα)이라는 뜻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숨은 우리 몸에 변화가 생길 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힘이 들면 한숨을 쉬고, 흥분하면 거친 숨을 내쉬며, 두려울 때는 숨을 죽입니다. 사는 일이 바쁘고 번잡스러워지면 숨 가쁜 삶이 됩니다. 하느님의 영은 영혼의 숨결과 같습니다. 생명의 기본이 숨쉬기이듯이 영적인 삶의 기본기도 영적 숨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영적인 숨을 편안하게 내 쉴 수 있어야 영적인 삶도 충만하게 되는 것이지요.

 

 

영적 갈망

 

성경은 사람을 영혼(영 Sprit)과 정신(혼 Soul)과 육신(몸 Body)으로 이루어진 영적인 존재로 설명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의 성화가 영과 혼과 몸을 흠 없이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 없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1테살 5,23)

 

인간은 단지 육신과 정신만 지닌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영은 인간의 깊은 곳에서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영적인 생명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갈망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영적인 갈망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찾아가는 삶을 ‘영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에서는 하느님을 갈망하도록 창조된 영적인 존재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 당신을 찬미하며 즐기라고 일깨우시는 이는 당신이시니,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 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고백록 1장 1절. 성염 역>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향하도록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 영혼에 당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기에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간절히 찾게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우리 마음속에 있고 이 갈망이 하느님을 찾아 나서게 하고 그분을 만나게 합니다. 하느님을 만난 영혼은 그분을 찬미하게 됩니다.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불행은 인간만이 지닌 영적 갈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물질문명이 급속히 발전하고 그 결과 먹고사는 일이 나아졌다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문제와 모순이 더 커집니다. 가정의 붕괴와 환경의 파괴, 전쟁과 분열, 이기주의와 외로움 등 우리 시대의 삶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영적 갈망을 잃어버리고 단지 눈앞에 보이는 욕망만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불어넣어 주신 영적 갈망은 우리 마음을 하느님과 연결해 줍니다. 내 안에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영적 갈망이 살아나야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숨 쉬듯 기도하기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는 해가 뜨기도 전에 마당을 쓸며 식구들을 부르셨습니다. 잠이 덜 깬 식구들도 고상 아래에서 조과(아침기도)를 바쳤습니다. 저녁에는 일터에서 돌아온 식구들이 호롱불 앞에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길고 긴 만과(저녁기도)를 바쳤습니다. 성당에서는 하루에 세 번 씩 종을 울렸습니다. 삼종기도를 바치라는 종소리였습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삼종기도를 바쳤습니다. 하루가 기도 속에서 시작되고 기도 안에서 저물어 갔던 것이지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조과(朝課), 만과(晩課)라고 부르는 것은 기도가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일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선조들은 숨 쉬듯, 밥 먹듯, 일하듯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기본기요 수덕 생활이었지요.

 

나치의 폭력과 학살에 저항하며 참된 신앙의 길을 증거하다 순교한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신앙의 기본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부끄럽게 낭비한 시간, 이기지 못한 유혹들, 연약함과 낙담 속에서 일하는 것, 다른 사람과의 교제나 우리의 생각에서 나타나는 무질서와 방종은 종종 아침기도의 소홀함에서 비롯됩니다.”<본회퍼의 시편이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보고 하루를 시작하면 영적인 갈망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일상의 골방에 머뭅니다. 아침부터 부정적인 생각과 욕망으로 시작하면 하루의 삶은 굶주린 짐승이 먹이를 찾아 헤매는 날이 되고 말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성호부터 그으면 마음속에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솟아나겠지요. 새로운 하루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내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일을 위해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면 말끔히 세수하고 단장한 듯 하루가 시작되겠지요. 일상 중에 나의 나약함으로, 함께 사는 사람들의 허약함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유혹들은 하느님을 간절히 부르고 그분께 나의 나약함을 맡겨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하고 선택할 때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느님 앞에 힘과 용기를 청하면 내가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하느님은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숨 쉬듯 하느님을 찾고, 밥 먹듯 하느님을 부르고, 일하듯 하느님께 의탁하면 우리 안에 이미 와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기본기이지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4월호, 김영수 헨리코 신부(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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