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깨어 기다림은 사랑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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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2-11 ㅣ No.1904

[현대 영성] 깨어 기다림은 사랑하고 있음이다

 

 

‘기다림’이라는 주제로 묵상을 하던 중 저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를 앞두고 부모님을 기다리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시며 사셨고, 장남을 공부시키기 위해 도시에 사시던 이모님 댁으로 저를 보내셨습니다. 시골 촌놈이었던 저는 초등학교 때 도시로 전학을 왔고, 나름대로 도시 친구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합주부에 들어가 악기 연주도 하게 되었는데, 마침 운동회 때 근사한 합주부 복장을 하고 행렬을 하며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리고 부모님께 자랑스런 저의 모습을 보여드릴 마음으로 운동회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운동회 바로 전날 어머님께서 ‘도무지 시간이 되지 않아 운동회에 올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부모님께서 오시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실망이 컸습니다. 그날 저녁 방문을 잠그고 홀로 책상에 엎드려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혼자서 쓸쓸하게 운동회에 참석하면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제 처지가 참 서럽게 느껴졌습니다. 운동회를 마치고 홀로 이모님 댁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그래, 나는 혼자다. 나는 홀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말자”라고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지금 그 시절을 다시 되돌아보면 추수철이라 바쁜 때였을 뿐 아니라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모시고 시골에서 살아가시는 부모님 역시 아들에게 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신 상황이 이해되고, 부모님을 원망했던 제가 참 속이 좁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야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마음이 점점 넓어져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게 되고, 오히려 부모님의 더 큰 사랑을 헤아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도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를 위한 하느님’에서 ‘하느님을 위한 나’로 변화되어 하느님의 더 큰 사랑을 닮아 가는 여정인 듯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는 우리 신앙을 더 깊게 하여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하며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다시 말해 내 뜻대로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 하느님께서 행동하지 않으신다고 하여 원망하거나 불신하기보다는, 더 큰 마음, 더 큰 사랑을 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대림절을 잘 보내는 길일 것입니다. 또한 이미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것들을 정화하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나눔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참된 믿음과 사랑을 강조하셨고, 사도 야고보 성인께서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셨듯이, 우리는 이 대림 시기 동안 믿음으로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고 사랑의 실천으로 이웃과 더 가까워져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신비가 요한네스 타울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세 번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천지 창조 이전 아버지에 의한 영원으로부터의 탄생, 두 번째는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의 탄생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탄생은 하느님의 모든 날, 바로 우리의 작고 여린 영혼 안에서의 탄생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림 시기가 우리에게 작년과 같이 후회스러운 시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태어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태어나심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산모가 뱃속의 아기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 쏟듯이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깨어 준비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종말, 즉 세상의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모르니, 지금부터 주님이 오실 것을 준비하고 그분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마지막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신 주님의 오심은 바로 지금 오늘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곁에 항상 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깨어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신 주님을 깨어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 가운데 그분을 만나는 길은 ‘그분처럼 사랑할 때’이며, ‘사랑하고 있음’ 그것은 바로 그분을 만나고 있음이요 그것은 ‘깨어 그분을 기다리고 있음’과 같은 것입니다.

 

[2022년 12월 11일(가해)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가톨릭마산 2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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