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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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뇌물과 그리스도교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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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10 ㅣ No.1247

[복음살이] 뇌물과 그리스도교 신앙



뇌물(賂物)은 자신에게 부당한 특혜를 바라면서 권력이 있는 자에게 비밀리에 건네는 재물입니다.

우리나라 형법에서 뇌물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서 받는 금품이라고 규정합니다(형법 제129조 제1항). 알선수뢰죄(형법 제132조)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공무원의 직무에 속하는 업무를 알선하여 금품을 받는 경우인데, 실무적으로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제3조에서 정한 알선수재 규정을 적용합니다.

한편 뇌물공여죄(형법 제133조)는 뇌물을 준 사람을 처벌합니다. 보통 기업가가 자신이 조성한 비자금을 뇌물로 사용하여 공직자에게 전달한 것이 확인된 경우 뇌물공여죄가 성립되지만 수사가 실패하면 단순히 대표이사가 회사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처벌하거나 매출 누락을 통해 비자금을 마련한 사안에 대해서만 조세포탈로 처벌합니다.

뇌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가 있고, 공무원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존재했고, 뇌물이 폐해와 해결책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촌지’ 등의 이름으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뇌물의 성격을 지닌 금품 수수가 빈번합니다.

최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뇌물 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그리스도교에서는 뇌물에 대해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 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지혜로운 격언을 모은 구약성경의 잠언을 비롯하여 성경은 ‘뇌물’에 관한 가르침을 여러 차례 전해줍니다. “뇌물을 주는 자의 눈에는 그것이 요술 보석 같아 그가 몸을 돌리는 곳마다 안 되는 일이 없다”(잠언17,8)라는 잠언의 반어적인 표현이 보여주듯이 뇌물을 통해 만사형통 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지도자들이 “모두 뇌물을 좋아하고 선물을 쫓아다닌다”(이사 1,23)며 현실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결국 “악인은 품속에 감춘 뇌물을 받고 올바른 일을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잠언 17,23).


뇌물 주고받음으로써 부정 깊어지고 정의 무너져

“부정한 이득을 챙기는 자는 집안을 어지럽히지만 뇌물을 싫어하는 이는 잘 살게 된다”(잠언 15,27)라는 말씀처럼 부당한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신은 물론 가족도 고통에 빠지게 합니다. 반면에 청렴하고 정직한 삶은 오히려 참된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줍니다.

마찬가지로 공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할 임금이 “뇌물을 탐하는” 경우 나라를 망치게 됩니다(잠언 29,4).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멸망한 원인을 제공한 임금들의 죄에 대해 비판하는 에제키엘 예언자는 “뇌물을 받아 남의 피를 쏟는” 임금의 죄도 함께 거론합니다(에제22,12). “뇌물은 마음을 파멸시킨다”라는 코헬렛(전도서)의 통찰(7,7)처럼 뇌물수수는 결국 이익을 얻는 지혜로움이 아니라 파멸을 부르는 어리석음입니다.

뇌물을 주고받음으로써 사회 곳곳에서 부정과 불의가 깊어지고 공정과 정의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은 특히 공정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재판에서 뇌물이 재판관의 눈을 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모세는 탈출기에서 재판과 관련하여 “너희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온전한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이들의 송사를 뒤엎어 버린다”(탈출 23,8)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신명기에서도 모세는 판관들에게 비슷한 규정을 전합니다. “너희는 공정을 왜곡해서도 안 되고 한쪽을 편 들어서도 안 되며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된다. 뇌물을 지혜로운 이들의 송사를 뒤엎어 버린다.”(신명 16,19) 이어서 모세는 “너희는 정의, 오직 정의만 따라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을 차지할 것이다”(신명 16,20)라고 말합니다. 뇌물수수는 정의를 해치는 일이고 결국 하느님이 주시는 땅을 잃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편 역대기에서도 유다 임금 여호사팟은 유다 전역의 성읍에 판관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당부하기를 주님을 대신해서 판결하기 때문에 주님을 경외할 것과 “주 우리 하느님께서는 불의나 차별이나 수뢰가 있을 수 없소”(역대하 19,7)라며 단호히 불의와 뇌물을 멀리할 것을 당부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409항도 “법에 따라 결정해야 할 사람들의 판단을 빗나가게 하는 매수”는 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가르칩니다. 판단을 내려야 할 이가 뇌물을 받아 매수되는 경우 뇌물을 준 자에게 판결을 통해 이익을 돌려줄 부담이 생기기 때문에 불공정한 결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 기업들이 편의를 바라는 뇌물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 일반인들 가운에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뇌물 중 하나는 ‘촌지’입니다.

부패예방기구인 국민권익위원회가 2009년 3월 전국 초·중·고 학부모 1660명을 대상으로 학교촌지에 대한 국민의식 실태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 응답자의 46.8%가 학교 촌지를 뇌물로 생각하고 있었고, 5명 중 1명꼴로 촌지를 준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36.4%의 학부모가 촌지를 건넨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촌지 관행이 계속되는 이유는 자기 자녀만을 생각하는 학부모의 이기심(54.7%)과 교사들의 윤리의식 부족(20%)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촌지 관행을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법·제도의 합리적인 개선이 시급하다’는 응답이 21.6%였으며 ‘교사들의 윤리의식 제고’(20.8%), ‘촌지 수수에 대한 적발 및 처벌의 강화’(20.7%)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기적 세태 극복하고 잘못된 의식 바꿔야

지난 3월 10일 국회는 부정청탁과 공직자의 금품거래를 금지하기 위해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금품거래 자체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업무와의 연관성을 따지지 않고 처벌함으로써 돈으로 공무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기존의 형법에서 수사의 업무의 연관성을 따져야하는 어려움을 고려할 때 획기적인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돈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통해 청탁이 이뤄질 수도 있으므로 이 법안에 부정청탁 방지 규정도 넣었습니다.

물론 이런 법률이 있다고 해서 뇌물이 금방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정과 정의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자신(또는 자신의 가족)만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우리의 이기적 세태를 극복하고 잘못된 의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또 뇌물을 받는 쪽의 위치에 있다면 권력의 남용과 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공정과 정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는다. 이 과욕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갖가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24)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너희들은 언제까지 불의하게 심판하며 악인의 편을 들려느냐? 약한 이와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불쌍한 이와 가련한 이에게 정의를 베풀어라.”(시편 82,2-3)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6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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