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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 세계 병자의 날 기획: 코로나19로 역할 커지는 원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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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2-11 ㅣ No.1254

[세계 병자의 날 기획] 코로나19로 역할 커지는 원목실


전인적 돌봄으로 아픔의 여정에 함께하는 동반자

 

 

코로나19는 인류가 걸어온 길이 과연 맞는 것인지 성찰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쌓여있던 수많은 문제들을 수면 위로 꺼내 놨다.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국가들의 보건 체계 취약성, 병자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약하고 힘없는 이들이 더욱 힘들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8차 세계병자의 날을 맞아 형제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감염병의 전 세계적 확산을 통해 수많은 병자와 그 가족들을 돌보고 위로한 모든 사람의 헌신과 관대함도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들이 보여준 형제애야 말로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이 오가는 병원. 코로나19로 인해 전쟁터와 같았던 병원에서 가장 약한 이들을 돌보며 형제애를 실천한 이들이 있다. 바로 원목실의 사목자들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도를 원하는 환자를 만나지 못해 가슴 아파하고, 문 닫을 위기에 있는 원목실을 찾아 함께 기도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환자들을 만나 위로받았던 시간들. 그들이 코로나19와 함께한 시간들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녹아있다.

 

 

종교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일반 병원 원목실까지 이어져

 

코로나19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지난해 1월. 중국의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힘없이 쓰러지는 뉴스 보도를 보며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무서운 질병 정도로 인식했다. 중국에서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공포가 확산됐다. 치료법이 없는 감염병 확산에 비상이 걸린 곳은 병원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원목실에서 사목하고 있는 장경민 신부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던 2월에 병원으로부터 종교활동을 중단하고, 환자방문을 금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원목실 문을 닫으라고 전해들었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1, 2명 수준이었던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1차 대유행의 시작은 신천지였다. 신천지 신도로 밝혀진 31번 환자는 증상이 있으면서도 의료진의 검사 요청을 거부하고, 교회 예배에 간 것이다. 다른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예배를 하면서 확진자가 크게 증가했다. 특정 종교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병원 내에 있는 모든 종교시설은 강도 높은 제재를 받게 됐다. 장 신부는 “병원 내 빵집이나 커피숍 등 편의시설은 문을 열었지만 원목실은 종교시설이라는 이유로 문을 닫아야 했다”며 “일부 종교인들의 행동이 모든 종교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진 것 같아 안타까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기에 원목실 활동 허락을 요구하기 어려웠다. 원목실 사목자를 비롯해 환자, 병원 관계자 모두 상황을 지켜보며 나아지길 기다릴 뿐이었다. 장 신부는 “다행히 6월부터는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 병자성사는 드릴 수 있게 됐고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병원 측에서도 배려할 의지를 보였다”며 “하지만 8월 광화문 집회로 인해 2차 대유행이 시작됐고 모든 게 없던 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몇 달간 환자방문을 못했지만 직접 원목실을 찾아 기도나 병자성사를 요청하는 환자들은 끊이지 않았다. 장 신부는 “11월에 3주 정도 원목실 문을 열었을 때, 30년간 냉담하다 큰 병을 얻고 다시 신앙을 찾고 싶다는 분,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삶을 정리하고자 원목실 문을 두드리는 환자분들이 계셨다”며 “힘든 상황에서 삶의 의미나 영적인 가치를 찾고자 하는 많은 분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원목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29일 대구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에서 열린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회’에서 원목실 담당 이영승 신부가 함께한 이들에게 안수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어려움 속에서 원목자의 역할은 더욱 강조

 

모두에게 처음이었던 감염병의 확산. 나의 감염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공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켰다. 질병으로 육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환자들에게 코로나19는 삶을 더 힘들게 하는 존재였다. 은평성모병원 원목실 김미희 수녀는 “코로나19로 보호자 1명의 면회만 가능해지면서 환자들은 외롭고 답답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며 “마지막 순간에 가족과 만나지 못하거나 1명의 가족만을 만나고 돌아가시는 분들을 뵈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은평성모병원은 원목실 수도자들이 병원 내에 상주하는 덕분에 환자방문에 제한을 덜 받았다. 감염관리과 교수의 지도 아래 환자 방문할 때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생필품을 사러갈 때를 제외하고는 병원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은평성모병원 원목실 사목자들은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의 불안하고 경직된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었다.

 

은평성모병원 영성부장 황재호 신부는 “코로나19 전에는 본당의 신부님과 수녀님이 방문해 본당 신자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기도 했는데 지금은 방문이 어려워 원목실 사목자들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며 “미사참례를 못해 아쉬워하는 환자들을 위해 환자방문을 할 때 영적으로 좀 더 도움이 돼 드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병원 원목실의 역할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영적인 부분도 함께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전인적인 치유야말로 감염병으로 인한 두려움이 커진 지금, 환자들에게 필요한 돌봄이다. 황재호 신부는 “환자를 만나면 질병에 대한 아픔뿐 아니라 인생이나 주변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그분의 삶에 공감해 드리는데 집중한다”며 “이처럼 원목실의 사목자들은 환자분들이 아픔의 여정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동반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원목실의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전인적인 치료를 위해 의료진을 비롯해 영양사, 치료사, 원목신부 등이 모여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동심(同心) 프로그램’뿐 아니라 병원에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다행이당’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동심 프로그램에서 원목신부의 역할은 환자와 환자 가족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공유하는 것이다.

 

전인병원 원목실 이영승 신부는 “한달에 두 번 있는 회의를 통해 환자 치료에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설득을 할 수 있는지 등의 의견은 원목신부가 제안하고 반면에 환자의 심리적인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학적인 정보를 의료진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며 “환자와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면서 좀 더 적극적인 치료가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으로 아파하는 환자들이 사목자와 만난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이 치유되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 원목실 사목자들은 이 의미있는 목표를 위해 병원 현장을 지키고 있다.

 

[가톨릭신문, 2021년 2월 7일, 민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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