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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프란치스칸 영성35: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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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01 ㅣ No.1565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35)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들에게 일을 하는 데 있어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가르쳤다. 그림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인.

 

 

⑤ ‘기도와 헌신(신심)의 영’과 삼위일체적 삶

 

프란치스코는 「수도 규칙」 10장에서 ‘글 모르는 형제들’에게 글을 배우지 말라고 권고한다.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이런 권고를 한 근본적인 이유는 형제들이 공부를 통해 자신을 높이려는 유혹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자신을 높인다는 것은 관계성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참 자아와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이들(존재들)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권고를 한 프란치스코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안토니오 성인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을 기꺼이 허락해 주는 내용이 나온다. 단순하게 보면 ‘이거 모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안토니오에게 한 가지 매우 소중하고 의미심장한 조건을 내건다. 다음이 편지 내용이다. “나의 주교(주-안토니오는 주교가 아니었지만, 프란치스코는 신학자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주교’라고 부르고 있다) 안토니오 형제에게 프란치스코 형제가 인사합니다. 수도 규칙에 담겨 있는 대로 신학 연구로 거룩한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면, 그대가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의 마음에 듭니다.”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사실 글자 그대로 ‘기도의 마음과 온전히 하느님께 향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만 한다면’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도와 헌신(신심)’의 영에서 ‘헌신’ 혹은 ‘신심’이라는 말의 라틴어는 ‘devotio’이다. 이 단어는 ‘우리의 마음과 혼과 얼을 온전히 하느님께 집중하는 것’인데, 수도승적 전통에서는 이것이 기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마음 자세였다.

 

그런데 프란치스코에게는 이 말이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지된 상태의 기도 혹은 일반적 의미의 염경 기도나 전례 기도, 묵상 기도 등과 관련한 우리의 자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란치스코는 안토니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듯이(“「수도 규칙」에 담겨 있는 대로”), 이 ‘기도와 헌신의 영’이라는 말을 자신의 「수도 규칙」 5장에서도 쓰고 있고, 클라라 역시도 자신의 「수도 규칙」 7장에서 같은 내용의 권고를 자매들에게 주고 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의 「수도 규칙」 5장과 클라라의 「수도 규칙」 7장의 주제는 ‘일하는 자세’라는 점에 주목해 보아야 한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형제들에게 권고한다. “주님께서 일하는 은총을 주신 형제들은 충실하고 헌신적으로 일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혼의 원수인 한가함을 쫓아내는 동시에 거룩한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현세의 다른 모든 것들은 이 영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과 ‘기도와 헌신의 영’을 지니는 것은 같은 마음의 상태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앞서 언급한 토마스 머튼의 말대로 하느님과 더불어 ‘홀로 있음(관상)’의 상태에 이르게 될 때, 우리가 하느님 관심의 대상인 세상 모든 존재와 더불어 연결된 상태에서 현존하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를 이해야 한다는 말이다.

 

곧 ‘기도와 헌신(신심)의 영’을 지닌다는 말은 존재의 실질적 의미인 ‘존재의 위대한 사슬’ 안에서, 혹은 ‘나-너’의 관계성을 살아가는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인 틱낫한 스님이나 가톨릭의 여러 영성가는 이제 존재에 대해서 말할 때 그저 존재(being)가 아닌, 연결된 존재(inter-being)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본질을 담고 있는 모든 피조물의 핵심적 존재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존재의 이 본질적 핵심을 깨어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프란치스칸 신비주의자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1499~1562)는 ‘기도와 헌신(신심)의 영’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신심(헌신-devotio)은 성 토마스가 말하듯이, 덕을 행함에 있어 기민함이요 맞갖은 능력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덕행을 통해 우리는 우리 영혼의 모든 어려움과 버거움을 날려 보내고 선한 모든 것을 재빠르게 실행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이는 영적 자양분이고, 신선함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슬이요, 성령으로부터 우리 안에 훅 불어넣어진 숨결이며, 초자연적인 정감이다.”(알칸타라의 성 베드로, 호명환 역, 「기도와 묵상 안내서」, 프란치스코출판사)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3월 28일,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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