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인간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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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15 ㅣ No.1249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인간의 임무



“인간은 세계에서 하느님의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 부당하게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으며, 이렇게 인간은 자연의 반항을 자극하고, 자연을 다스리기보다는 학대한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백주년」, 37항).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창세 3,17)

창조주 하느님과 그분이 보시기에 좋았던 온갖 피조물, 그리고 하느님 모습을 닮은 사람이 함께 지냈던 에덴동산은 ‘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은 ‘실낙원’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탐욕은 사람만이 아니라, 아름다웠던 피조세계마저 황폐화시켰습니다(창세 2-3장 참조). 이에 더하여 노아 시대에 사람의 죄악과 탐욕은 극에 이르러, 하느님께서는 “내가 사람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라고 탄식하시며, 대홍수를 통해 세상을 벌하셨습니다. 다만 선한 노아 덕분에 세상의 완전한 파멸은 막을 수 있었고, 하느님과 사람, 모든 생명체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창세 6-9장 참조). 예언서도 사람의 행위에 의한 환경의 재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난무하는 곳에 땅은 통곡하고 들짐승과 새와 물고기마저 죽어갑니다(호세 4,1-3 참조). 이처럼 성경은 사람의 죄악이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고 온 피조세계를 죽음으로 몰고 감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계명(도둑질을 하지 말라.)은 모든 피조물을 존중하기를 요구한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무생물 등은 그 본성상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류 공동선을 위한 것들이다. 우주의 광물, 식물, 동물 자원을 이용할 때, 도덕적인 요구도 동시에 중시해야 하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무생물과 생물에 대한 지배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이 지배권은 미래 세대들을 포함하여 이웃에게 쾌적한 생활환경을 물려주어야 하겠다는 배려로 제한을 받은 것이다. 이 지배권은 피조물 전체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요구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415항).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22)

“자연환경은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 이상으로 소중한 창조주의 놀라운 작품”으로써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진리안의 사랑」, 48항)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여 파괴시켰습니다. “지구상의 여러 나라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책임 있게 관리할 의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 환경 파괴는 흔히 장기적인 정책들의 결여나 근시안적인 경제 이익 추구에서 기인하고, 결국 이는 피조물에 비극적이고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제43차 평화의 날 담화문, 7항). 이러한 우려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 이익에 눈이 먼 근시안적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4대강과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지역민의 의견과 생태, 사회, 국제관계 등 제반 여건을 무시한 채 천혜의 자연 환경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며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제주 강정 마을을 들 수 있습니다.

“만물을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만드신 실체 하나 하나를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참 좋았던” 이 피조물의 정점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세우셨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주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인간의 책임에 맡기시고, 인간에게 그것들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며 돌볼 임무를 맡기셨다”(『간추린 사회 교리』, 451항).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마태 6,26)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곱게 가꾸시기에, 하느님을 닮은 피조물로서 창조주와 다른 피조물들 사이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은 이기적인 탐욕을 채우려는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 모든 사람들은, 특히 창조질서 보전이라는 임무를 자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발전의 모델로 삼아왔던 경제성과 효율성과 투자 이윤 중심의 구조들을 반성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며 “더 편하게 살고, 더 많이 누리려는 탐욕을 넘어 자발적인 불편을 선택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2015년 환경의 날 담화문)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2015년 6월 14일 연중 제11주일 의정부주보 6-7면,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송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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