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삶의 지혜7: 아우구스티누스의 입문자 교리교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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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9 ㅣ No.136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7) 아우구스티누스의 ‘입문자 교리교육’에서

 

 

“들으면서 믿고, 믿으면서 희망하고, 희망하면서 사랑하라”


[본문]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명하셨을 때, 이 계명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의 모든 말씀을 요약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씌어졌으며 후손들에게 맡겨진 신약의 모든 거룩한 말씀들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에는 신약의 「가려짐」이 있고 신약에는 구약의 「나타남」이 있습니다. 이 「가려짐」 때문에 육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는 육적인 인간들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의 멍에를 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 「나타남」 덕분에 영적인 사람들은 교만하지 않고 경건한 신심으로 감추어진 신비의 문을 두드리며 나타난 것을 찾습니다. 영적인 이들은 열려졌던 신비의 문이 닫히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 영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면서 사랑의 선물로 건네진 자유를 누립니다.

 

욕심보다 더 사랑에 반대되는 것은 없습니다. 욕심은 교만의 어머니입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바로잡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요 거룩한 사랑의 표징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들 한가운데 계신 겸손의 모범이십니다. 인간의 교만은 진정 커다란 비참이며, 하느님의 겸손은 비할 길 없는 커다란 자비입니다.

 

교리교사는 모든 주제를 사랑과 관계시키고 사랑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설명하든지 예비신자들이 들으면서 믿고, 믿으면서 희망하고, 희망하면서 사랑하도록 가르치십시오.

 

-「입문자 교리교육」 4, 8

 

 

“하느님은 기쁘게 주는 이들을 사랑”


[해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영혼의 목자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입문자 교리교육」은 사목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젊은 부제 데오그라티아스의 간절한 요청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의 응답이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고,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매우 많은 예비신자가 그리스도교의 문을 두드렸다. 북아프리카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친 교재가 없었던 당시의 교리교사가 처한 어려움이 얼마나 컸으며, 이러한 교재가 얼마나 절박했는지는 데오그라티아스가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난다. 

 

『어디서부터 가르칠 것인가?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까? 강의를 끝내면서 몇 마디 권고해야 하는지, 아니면 오직 계명만을 일깨우면서 입문자들이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초대되어 삶으로써 이를 증거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지?』(입문 I, 1).

 

사실 오늘날 교리교육을 맡고 있는 이들도 거의 이와 같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리를 가르치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가르치는 내용이나 방법에 있지 않고 교리교사(봉사자)의 욕심에 있다고 지적한다. 곧, 봉사자는 자신이 이전에 내적으로 가장 귀하다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수 있으며, 이런 욕망이 큰 만큼 자신이 올바로 전하지 못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마침내 봉사자는 이런 실망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봉사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기쁨을 잃은 상태라고 설명하면서 기쁨을 얻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기쁨이란 무엇일까?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들을 사랑하십니다』(2고린 9, 7).

 

아우구스티누스는 데오그라티아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주는 이들의 기쁨」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성경 말씀을 제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에게 기쁨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주님께서 현세의 재물에 대해서도 기쁘게 내주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영적인 재물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사랑하시겠습니까! 적절한 때에 이 기쁨이 함께 하는 것은 이런 계명을 주신 그분의 자비에 힘입은 것입니다』(「입문」 2, 4).

 

아우구스티누스는 「가려짐」과 「나타남」의 관계를 통해 구약에서 가려진 기쁨이 신약에서 나타났음을 설명하고, 기쁨이 함께 하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주신 그분의 자비에 힘입은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기쁨은 바로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겸손이라고 결론내린다.

 

그리스도의 은전을 멀리 나누는 봉사직에 초대받은 데오그라티아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그리스도의 겸손에로 초대된다. 그리고 데오그라티아스는 진정한 교사는 그리스도이며 자신은 그리스도의 봉사자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나는 말하면서 배우고 당신들은 들으면서 배웁니다. 우리는 유일한 교사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 학교의 동창생입니다』(「설교」 16A).

 

[가톨릭신문, 2005년 5월 15일, 이성효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수원가톨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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