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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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유한양행, 성심당, 그리고 윤리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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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06 ㅣ No.1251

[복음살이] 유한양행, 성심당, 그리고 윤리 경영



우리나라의 기업가로서 윤리 경영을 실천한 효시는 너무나 유명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1895-1971)입니다. 유일한 박사는 어린 시절 평양에서 감리교 신자로서 성장했으며 9살에 미국 감리교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성장하였습니다.

1926년 귀국과 함께 창립한 유한양행은 동포들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의약품의 수입 및 개발을 목표로 삼았고, 1939년 한국 기업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고, 철저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등 윤리 경영의 모범을 보여 왔습니다.

1968년 박정희 정권 당시 거액의 정치자금을 헌납하라는 지시를 무시하는 바람에 혹독한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오히려 철저한 세금납부 사실에 정부를 놀라게 하여 모범납세 법인으로 훈장까지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1969년 은퇴하며 우리나라 최초로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기고 1971년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유언을 남기고 타계함으로써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기업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 중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유일한 박사의 모범에 따라 윤리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동안 고질적인 정경유착으로 부당한 특혜와 탈법을 저질러왔던 재벌 기업들의 탐욕을 너무도 자주 보아왔습니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안전이나 환경에 관한 규정을 지키지 않으며,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불량품을 납품하기 위해 뇌물을 주기도 하고, 교묘하게 정당한 상속세를 내지 않으면서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신앙에 따른 윤리적인 경영을 하며 재화의 나눔과 신뢰, 공동선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기업을 만나면 반갑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유경제는 기업의 이익을 더 많은 이들이 누리도록 하는 새로운 경제 운동

대전의 중심인 중구 은행동 주교좌 대흥동성당 건너편에 있는 성심당은 1956년부터 시작된 역사만큼이나 빵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은 빵맛이 좋을 뿐 아니라 창업주가 빵집 이름을 예수 성심(聖心)을 기리겠다는 뜻으로 성심당(聖心堂)으로 짓고 성당 십자가가 보이는 곳에 가게를 자리 잡을 만큼 투철한 가톨릭 신앙을 나눔의 삶으로 실천해 보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창업주인 임길순(암브로시오)씨는 초기부터 대전역 주변의 배고픈 이들에게 빵과 성당에서 나오는 구호물품들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창업주의 아들로서 현재 성심당 대표를 맡고 있는 임영진(요셉)씨 역시 부친의 뜻을 이어 나눔을 실천하면서 포콜라레 운동을 경영에 접목시켜 ‘투명 경영’과 ‘공유경제(economy of communion)’를 도입했습니다.

투명경영을 위해서 임영진씨 부부는 법인을 설립하여 자신과 아내는 월급사장과 이사를 맡고, 매출을 공개하여 직원들과 함께 결산하며, 정직한 납세를 합니다. 그가 2000년 경 포콜라레에서 배운 ‘공유경제’의 실천으로 기업 수익의 3분의 1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른 3분의 1은 회사, 직원 및 사회인력 양성을 위한 재투자에, 나머지 3분의 1은 직원을 위해 사용합니다. 또한 매달 직원 한 명의 임금만큼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습니다(평화신문 2015.5.31일자 참조). 이렇게 이익을 직원들과 사회를 위해 내어 놓아도 성심당은 전국에서 빵을 사거나 견학하러 온 사람들로 붐비며 계속 번창해 왔습니다.

공유경제는 1991년 포콜라레 운동의 창시자인 끼이라 루빅의 제안에 따라 포콜라레 회원들이 기업을 세우고 기업 전체의 이익을 자유롭게 공동으로 내어놓아 더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부의 생산을 추구하려는 새로운 경제 운동입니다.

끼아라 루빅은 1991년 5월 브라질 상파울로 교회의 ‘아라첼리’라는 소도시를 방문했을 때 의식주와 실업 문제로 고통 받는 이 지역의 빈민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포콜라레 회원들에게 공유경제 기업의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즉 브라질의 포콜라레 회원 20만 명에게 이 지역에 고용과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생산적인 기업체들을 세우자고 제안하면서, 이 기업체의 이익의 3분의 1은 기업에 재투자하고 3분의 2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들과 ‘주는 문화’를 위해 일할 사람들을 양성할 기관을 위하여 할당하자고 제안 했습니다. 끼아라는 자신이 제안한 공유경제의 근거는 요한바오로 2세의 사회회칙 <백주년>이며, 이 회칙의 내용을 깊이 묵상하면서 공유의 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과 중대한 실천 사항들에 대하여 명확한 영감을 받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세계 735개 기업들이 공유경제를 실천

요한바오로 2세는 <백주년>에서 자유 시장은 효과적이긴 하지만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들, 인간의 기본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과 정의의 엄격한 의무”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34항).

또한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남기는 것만이 아니라, 기업체 자체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며, 전체 사회에 봉사할 특별한 집단을 형성하는 인간들의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35항).

나아가 소비사회에서 더욱 잘 살기를 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내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을 존중해야 하고, “향락을 목적으로 살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을 향하는 생활양식은 잘못이며, 진선미의 추구와 공동의 발전을 위한 친교가 투자의 선택을 결정하는 생활양식이 되어야 하며, “사랑의 의무”는 단지 남는 것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필요한 것’으로 도와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36항).

끼아라의 공유경제 제안에 따라 이 지역에는 실제로 2천여 명의 주주가 있는 ‘스파르타코’ 공업단지가 개발되었고, 곧 이어 인접한 이웃 나라들과 전 세계로 확산되었데, 2005년 현재 세계 735개의 기업들이 이 공유경제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공유경제의 기업들은 서로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때 긴급한 필요를 도와주며, 소비자 및 지역 공동체 등과 신뢰의 관계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주는 문화’, ‘평화의 문화’ ‘법률을 준수하는 문화’ ‘기업의 안과 밖의 환경을 개선하는 문화’의 확산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 가톨릭교회는 “기업은 유용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함으로써 사회의 공동선에 이바지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만남과 협력, 관련자들의 능력 증진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사회적 기능도 수행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경제활동에서 “경제적 목표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목표”도 함께 추구해야 하며, “개인과 사회의 구체적인 발전을 이루는 참된 가치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338항). 또한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일하는 공동체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여야 하며 일부 사람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만족시키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됨을 명심하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339항).

최근 전 세계에는 사회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나눔과 상생의 문화를 건설하려는 대안 기업과 사회적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가톨릭 신자 기업가들이 세상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윤리 경영의 문화를 추구하고 지혜를 찾아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7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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