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성미술ㅣ교회건축

전례미술칼럼: 생각에 겉옷을 입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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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4-26 ㅣ No.949

[전례미술칼럼] 생각에 겉옷을 입히듯

 

 

모진 추위와 눈바람을 견뎌낸 나무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더니 요즘은 정말 아름다운 초록으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정화해주고 있습니다.

 

건축 현장에도 인부들의 분주한 발걸음과 손놀림이 희망을 쌓아가는데 활기가 넘치는 요즘, 공사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과 기회를 조금이라도 허투루 쓸까 모두가 고심하면서 저마다 이루고 싶은 꿈과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계획했던 바를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많은 생각과 주변 정리가 필요하지만 무한한 설렘도 품으면서 한 걸음씩 내딛는 기쁨도 갖게 됩니다.

 

어릴 적 우리는 찰흙이나 수수깡으로 무엇을 만들까 하는 생각에 앞서 무작정 오려보고 빚어보던 작은 동그라미들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하나씩은 지니고 있습니다.

 

수수깡으로 가운데가 뻥 뚫린 안경을 만들어 끼고, 아무렇게나 굴려 빚은 찰흙덩이에다 삐뚤빼뚤 금을 그어 수박도 만들고 작은 꽃병도 만들어 가지고 놀던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요즘은 영유아기에도 촉감 놀이나 오감 놀이를 통하여 지능과 정서 발달에 도움을 받는다고 하니, 무엇을 그리고 만들고 써보는 모든 행위는 완성을 향하여 걷는 인간사에 참으로 필요하고 든든한 밑받침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어떤 조각이나 만들기는 생각에 겉옷을 입히는 것과 같아서 생각을 다듬을 때마다 겉옷의 장식이 조금씩 변하듯 매일의 삶 또한 빚는 대로 그 형상을 갖추어 나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지난 시간의 계획과 현실을 돌아보니 자국마다 손길의 흔적마다 그때의 생각들이 많이 녹아있음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지극히 소박했지만 정겹고 평화로웠던 순간들이 모아져 오늘에 이르렀음에 새삼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조각가이자 천재 화가인 미켈란젤로는 인고 끝에 자신이 조각한 모세상에 대고 ‘왜 말을 하지 않느냐?’라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또한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안타까움과 절망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피에타상에는 감히 인간의 눈으로 평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니, 그만큼 작가와 작품이 혼연일체가 되어 또 다른 분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듯 생각이 살아 숨쉬는 모든 것에는 그 표현이 서툴러 투박스런 우리 일상의 소품이나 최상의 걸작품으로 탄생된 피에타상 모두 나름의 혼이 서려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삶에 책임을 다하는 훌륭한 인생 조각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겸손한 도구로 임한다면 그때 비로소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진정한 예술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합니다.

 

[2023년 4월 23일(가해) 부활 제3주일 서울주보 6면, 황원옥 마리아에스텔 수녀(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 가톨릭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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