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삶의 지혜9: 테르툴리아누스의 호교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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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9 ㅣ No.138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9) 테르툴리아누스의 ‘호교론’에서

 

 

“낙태는 태아를 낳기 전 범한 살인이다”


[본문]

 

『우리는 어느 경우에도 살인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태아에게 피가 여전히 흐르고 있는 한 모태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체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낙태는 태아를 낳기 전 범한 살인입니다. 누군가 이미 태어난 영혼을 죽였는지 아니면 태어날 영혼을 없앴는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도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테르툴리아누스 「호교론」 9, 8)

 

『우리는 낙태약을 사용한 부인들이 살인자이기에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낙태한 까닭을 밝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어느 사람은, 모태에 있는 아기도 이미 생명체이기에 하느님께 무척 소중하다고 여기면서도 어느 때는 태어난 아기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아테나고라스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청원서」 35, 6)

 

 

“낙태 이유 하느님 앞에서 밝혀야”


[해설]

 

집 가까이 있는 관악산을 오르다 보면 나무 이름표에 여러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때죽나무, 물오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4월 중순 이곳에 활짝 핀 벚꽃은, 잎이 갓 나온 나무들을 배경으로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어 봄의 정취를 마음껏 느끼게 해주었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은 자연의 순리와 법칙이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원칙이었다. 교부들 가운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켜 수염을 깎는 것조차 반대하였다.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연의 순리를 너무 쉽게 거스르는 우리보다 자연에 가까이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생명에 관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 가운데 하나가 낙태라고 생각한다.

 

낙태에 관한 글은 유다, 그리스, 로마 문헌에 자주 나타난다. 유다의 율법에서 태아는 사물로 분류되어 태아를 죽게 하였다면 그에 대한 배상으로 속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임신한 여자와 부딪쳤을 경우, 그 여자가 유산만 하고 다른 해가 없으면, 가해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요구하는 대로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 그는 재판관을 통해서 벌금을 치른다』(새 번역 「탈출기」 21, 22). 

 

유다 사상가 필론과 역사가 요세푸스 등은 이미 완전한 모습을 갖춘 태아를 죽였다면 이를 살인으로 여겼다. 이들은 의학적 지식에 따라 이 때를 임신한 뒤 90일로 정하였다. 

 

그리스인들은 (태아를 낙태시키는 약을 사용하지 말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내용에 따라) 낙태를 비도덕적 행위로 이해하였지만 실제로는 자주 낙태시켰으며, 법률상 살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로마인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였으나, 세베루스 황제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이에 대한 형법상의 처벌을 규정하였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모든 호교가와 마찬가지로 테르툴리아누스(166년경~220년 이후 사망)는 태어난 아기만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하는 로마의 법률관을 통렬히 비난하였다. 

 

그는 모태에 있는 태아에 영혼이 없다고 하는 스토아 학파의 견해를 반박하여 태아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증거로, 임산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작은 움직임마저 느낀다고 제시하였다(「영혼론」 25). 

 

그는 성교를 하면 태아의 영혼과 부모의 영혼이 결합하기 때문에 태아가 완전한 영혼을 갖추는 때는 바로 임신이 된 때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한 인간인 태아를 낙태약으로 죽이는 행위를 매우 신랄하게 비난하였다(「정결에 관한 권고」 12).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교의 많은 부인들이 이러한 계명을 경시하였다고 시인한다(「동정녀들의 머리수건」 14, 4 이하).

 

초대 그리스도교 문헌들은 한결같이 낙태를 엄중히 금하였다(「디다케」5, 2; 오리게네스 「아가 주석」 2, 58). 교회법에서도 낙태를 살인으로 여겼다(키프리아누스 「편지」 52, 2 이하; 엘비라 교회회의, 규범규정 63; 68). 예외로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에만 낙태를 인정하였다(테르툴리아누스 「영혼론」 25; 아우구스티누스 「교리요강」 23, 85). 낙태를 하는 여성들이 하느님 앞에서 유아를 왜 살인하게 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내용도 초대 그리스도교의 일치된 견해였다. 

 

고대교회는 참회(오늘날의 고해성사) 문제와 관련하여 유연한 입장을 취하지 않아, 많은 신자가 회개를 멀리하거나 세례를 받지 않는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낙태에 관한 부작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이미 실천하고 있던 미혼모 돌봄이나 입양 이외에 다양한 피임법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는 실제 삶과는 멀어진 전통적 피임 외에 다른 피임 방법은 악으로 여기고 있지만, 낙태가 살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는 큰 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작은 악을 허용하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국민들에게 생명 존중의 정신을 심어주려고 매우 노력하고 있음에도, 과반수 국민이 낙태를 하는 현실에서 교회는 이에 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2005년 5월 29일, 하성수(한국교부학연구회 · 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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