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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62: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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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21 ㅣ No.832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2)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②


‘하느님의 집’으로 거듭난 엘리사벳

 

 

- 첫 영성체 때의 복녀 엘리사벳(1891년).

 

 

첫 영성체로부터 시작된 영적 여정

 

복녀 엘리사벳의 유년기에서 그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준 중요한 사건이라면 단연 첫 영성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린 엘리사벳은 첫 영성체를 준비하기 위해 상당히 열심이었고 대단한 기대를 품었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은 7살에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본 후 충실하게 첫 영성체를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1891년 4월 19일 12살이 되던 해, 엘리사벳은 첫 영성체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복녀는 성체 안에 현존해 계신 예수님께 많이 끌렸으며 평소에 늘 자기 영혼 안에 계신 그분의 현존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복녀의 일생에서 예수님의 현존, 더 나아가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은 일생을 통해 드러나는 아주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현존에 대한 깊은 자각과 투신 속에서 장차 복녀의 고유한 영성적 색채가 형성됩니다. 이런 일련의 영적 여정에서 볼 때, 엘리사벳의 첫 영성체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 안에서 시작된 그분을 향한 끌림은 이 여정의 첫걸음인 셈입니다. 이때부터 엘리사벳은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며 그분께 애정을 쏟고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성숙함도 갖춰 갔습니다.

 

 

디종 가르멜 수녀원과의 인연

 

첫 영성체는 어린 엘리사벳에게 장차 자신이 이 지상에서 이루게 될 소명을 꽃피울 못자리와 인연을 맺게 해 주었습니다. 그 못자리는 다름 아닌 디종 가르멜 수녀원이었습니다. 첫 영성체를 한 그 날 오후, 엘리사벳은 어머니와 함께 디종 가르멜 수녀원에 인사하러 갔습니다. 당시 디종의 신자들 사이에서는 자기 자녀 중에 누군가 첫 영성체를 하면 그 아이와 함께 가족이 가르멜 수녀원을 방문하는 좋은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맏딸이 첫 영성체를 통해 이제 신앙적인 면에서 한층 성숙한 아이로 자랐음을 기뻐한 복녀의 어머니는 가르멜 수녀원을 찾습니다. 아는 지인의 소개로 엘리사벳을 데리고 그곳 수녀들에게 아이를 소개하며 기도를 청하기 위해 면회를 갔습니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는 약 100여 개의 가르멜 수녀원이 있는데 디종 가르멜은 1605년 9월 21일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유서 깊은 수녀원입니다. 특히 이곳은 성녀 데레사가 가장 아끼던 애제자인 예수의 안나 수녀가 스페인에서 여러 동료, 제자 수녀들을 이끌고 직접 창립한, 성녀 데레사의 정신이 깊이 배어 있는 수도 공동체입니다.

 

처음 창립될 당시 이 수녀원은 디종 시내의 ‘샤르보네리 거리’에 세워졌으며 그 후 1613년 성녀 ‘안나 거리’로 이전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정부의 반교회적 정책으로 1819년 잠정 폐쇄됐다가 51년 후인 1870년에 와서야 ‘카르노 거리’에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복녀 엘리사벳이 훗날 1901년 입회하게 될 수녀원은 바로 이곳으로, 엘리사벳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엘리사벳을 비롯해 그의 어머니와 동생은 특별한 날이면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수녀님들과 교감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적인 인연들이 이어지며 소녀 엘리사벳의 마음에는 가르멜을 통해 자신의 성소를 꽃피우고자 하는 열망이 자라났습니다. 복녀 엘리사벳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는 디종 가르멜 수도 공동체는 1979년 디종 외곽에 있는 ‘플라비녜로’(Flavignerot)라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로 이사해서 살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에 담긴 신비적 의미

 

첫 영성체 후 엘리사벳이 어머니와 함께 수녀원을 방문했을 당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 디종 가르멜의 원장 수녀님은 한껏 기뻐하던 엘리사벳을 축하해 주며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이 간직하고 있는 의미, 즉 그것이 ‘하느님의 집’이라는 의미라는 걸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사벳’ 이름에 대해 영성적으로 풀어서 설명한 내용이 담긴 작은 상본을 선물해 주셨는데, 이 또한 복녀의 일생에 늘 회자되곤 했던, 장차 복녀의 성품에 영향을 끼친 어린 시절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이 누구이며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그의 현재와 미래의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이름에 담긴 ‘하느님의 집’이라는 의미를 일생을 통해 곱씹으며 자신이 일생을 통해 이뤄야 할 소명을 자각해 갔습니다. 이는 장차 가르멜 수녀원에서의 생활을 통해 심화하게 될 것으로, 무엇보다 자신을 삼위일체 하느님이 머무시는 집으로 인식하며 자기 영혼 안에서 그분을 흠숭하고 찬미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이룩해야 할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돼주었습니다. 

 

당시 디종 가르멜 원장 수녀가 엘리사벳에게 준 상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었는데 이는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됐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이름은 위대한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 주님께서 오늘 그 신비를 이루셨습니다 / 아기여, 당신의 마음은 이 땅에 있습니다 / 하느님의 집, 온전히 사랑이신 하느님의 집이여.” 

 

그로부터 2년 후인 14살이 되던 해, 엘리사벳은 내면에서부터 하느님이 자신을 가르멜 수녀로 부르신다는 내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개인적으로 동정 서원을 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엘리사벳은 다양한 시를 썼으며 이를 통해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침묵과 고독 중에 오직 하느님과 살고자 하는 자신의 원의를 다졌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8월 21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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