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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묻지마 범죄와 분노: 사회에 대한 복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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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29 ㅣ No.1253

[경향 돋보기 - ‘묻지마 범죄’와 분노] 사회에 대한 복수극



얼마 전에도 예비군 훈련장에서 이른바 ‘묻지마’ 살인범이, 함께 훈련받던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총질하여 두 명이 사망하고, 본인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2014년에 대검찰청은 전년도에 발생하였던 범죄 가운데 55건 정도가 묻지마 범죄에 해당한다고 발표하였다. 2013년에도 김현철 검사는 대검찰청이 발간한 「형사법의 신동향」 제39호에서 묻지마 범죄가 2010년보다 2012년에 현저히 늘어났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대검찰청에서는 묻지마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심층적인 분석보고서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묻지마 범죄의 본질

최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는, 전혀 관련이 없는 누군가에게 보통 사람들도 범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시민들에게 큰 공포의 대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이 범죄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는 초기 단계에 머무른다.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는 언론에서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연구자들은 범행의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차원에서 ‘무동기 범죄’(김상균, 2012년), ‘이상 동기 범죄’(고선영, 2012년)로 부르기도하였다.

박형민과 이수정은 이 용어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면서 피해대상의 선정이 무차별적이란 점이 핵심적 특성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범죄를 ‘무차별 범죄’(박형민, 2013년; 이수정, 2013년)로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적절한 용어가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범죄는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에서, 확실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에 대해, 흉기를 사용하여 살인, 상해, 폭행, 기물파손 등의 위해(危害)를 가한 사건을 ‘토리마 사건(거리의 악마 사건)’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총기를 이용한 총기난사 사건이 묻지마 범죄에 해당되는데, 이러한 사건들을 일컬어 ‘무차별적인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다수살인’ 또는 ‘대량살인’이라고 한다. 2012년 미국 의회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적절한 형사정책을 입안하려면 더욱 구체적으로 이 현상을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30년 동안 일어났던 78건의 사건들을 분석하여 ‘공중 총기난사’로 명칭을 통일하도록 제안하였다. 이 명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함축한다.

① 모든 사건이 공공장소에서 발생하였고, ② 몇 명의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렀는지보다는 폭력성(분노폭발) 자체가 중요하며, ③ 피해자의 선택이 무차별적이며, ④ 폭력이 범죄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는 점이다. ‘총기난사’에 관한 미국 의회의 이러한 정의는, 총기에 대한 제재가 심한 우리나라 사정을 고려해 보더라도 이 땅의 묻지마 범죄의 특성 또한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적 공간이 아닌 ‘공공장소에서 비면식의 불특정 다수에게 폭력성 분출을 목적으로 가하게 되는 무차별적인 폭력행위’를 묻지마 범죄의 본질로 이해하면 되겠다.
 

범죄자의 심리적 특성

한편 외국의 심리학자들은 묻지마 범죄자들의 심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 피해의식 등의 인지 왜곡 ? 범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지적으로 범죄를 지지하는 왜곡된 사고와 태도를 지닌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무시하거나 증오한다.’ ‘세상은 나에게(만) 불공평하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았다.’ 이러한 피해의식이 이들의 사고를 지배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그 대가로 분노를 표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보복에 대한 특권의식은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묻지마 범죄자들이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현상은 바로 이 같은 피해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 부적절한 감정과 대처 기술의 결여 ? 범죄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적절한 대처능력의 부재를 보인다. 대처 기술은 보통 ‘감정적 대처’, ‘회피 중심의 대처’, ‘사안 중심의 대처’로 구별된다. 감정적 대처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문제와 관련해 느끼는 감정을 계속 표현하면서 그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회피 중심의 대처는 어떠한 문제를 직시하는 것을 피하고자 다른 것을 하면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사안 중심의 대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방식이다.

감정 중심의 대처와 회피 중심의 대처는 범죄자들에게 아주 흔한 특징으로, 사안 중심의 대처에 도달하지 못한 채 만성적으로 울분에 휩싸여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 사회에 대한 적대감 ? 묻지마 범죄는 특정인에 대한 보복형 범죄라기보다는 사회에 대한 무차별적인 보복형 범죄이다. 이들은 사회생활에서 겪은 좌절과 낙오의 반복된 경험을 통해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모든 일에 일반화시킨다. 범죄자들은 경쟁사회에서 자신을 좌절시킨 대상, 곧 사회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기에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사회와의 소통도 끊은 채 자신만의 세상 속에 갇혀 살아간다.

그러는 동안 사회에 대한 불만과 스트레스도 증가한다. 인간관계의 단절은 개인을 무규범의 상태로 빠지게 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따라서 극도로 반사회적인 태도는 사회적 고립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 고립과 관계의 결여 ? 범죄자들의 상당수는 외톨이처럼 주변과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최소화한 채 살아온 사람들이다. 사회적 지지를 제공하는 관계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타인과의 친밀감이 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고립감은 또다시 부정적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스스로를 자해하거나 타인을 공격하는 행위에 탐닉하게 만든다. 이처럼 범죄의 이면에 내재된 ‘관계 결여’의 시작은 범죄자의 성장 과정과도 연관된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였던 경우 이 같은 심리적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범죄자들의 유형

2014년 대검찰청의 의뢰로 묻지마 범죄자들에 대한 실증연구를 위해 교도소에 수감된 이 범죄자 18명에게 심층면접과 심리평가를 수행하였다. 외국 문헌에서 추출한 무차별 총기난사범의 심리특성이 우리나라 범죄자들에게도 확인되는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그 결과 대검찰청에서 식별해 낸 우리나라 범죄자들은 왼쪽 그림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먼저, 극도로 정신장애가 심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자들이 상당수 존재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정신분열증, 곧 조현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들이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 가운데에는 낯선 사람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국의 경우 정신병적 증상이 뚜렷한 수감자들은 일반적으로 치료감호 시설에 수용되지만 우리나라는 살인범으로서 수형생활도 함께해야 한다. 치료감호는 단기형으로만 집행하고, 나머지 징역기간은 교도소에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체 범죄자들 가운데 정신장애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0.04%에서 0.07%로 매우 낮은 반면, 묻지마 범죄자들 가운데는 30%로, 이는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만일 이들이 사소한 폭력행위를 하였을 때 치료명령 등이 이미 집행되었다면 아마도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다음으로 뚜렷한 유형은 극도로 반사회적인 사고를 하는 누범들이다. 이들도 범죄자들 가운데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였는데, 강력범죄의 평균 전과 횟수가 5회를 넘어섰다. 순천교도소에서 만난 묻지마 살인범은 지난날에도 살인 전력이 있는 무기수였다. 그는 십 년 징역형을 살고 출소한지 삼 개월만에 다시 살인을 저질러 수감되었는데, 세상을 비관하면서 자신보다 많이 가진 자들을 모두 적으로 여겼다. 흥미로웠던 점은 세상의 모든 잘못은 권력을 가진 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흉기난동으로 목숨을 잃은 두 명의 일반인들에게는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피해자가 운이 나빠서 희생되었다는 식으로 진술하였다. 또한 “이번 삶은 실패”라고 한탄하였다. 이런 표현이 과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올바른 반성인지 혼란스러웠다.

세 번째 외톨이 유형은 그야말로 외국의 총기난사범과 공통점이 많았다. 이들 대부분이 초범들이었으며, 전과가 있더라도 모두 경범에 해당하였다. 학력 또한 세 집단 가운데 가장 높았으며 젊은 시절 한때는 정상적인 직장생활도 해본 사람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인 여의도 사건의 주인공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이제는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보통사람이었다. 정신병리나 극도의 반사회성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는 2012년 여의도 칼부림 사건 당시에는 악에 받쳐 피해자들에게 칼을 휘두르고, 경찰에게 완강히 저항하였다. 그에게 당시를 회상시키자 도대체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당시 신문기사에서는, 그가 이미 상당기간 실직상태에 있었고 인터넷에 빠져 고립된 생활을 하였으며,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였다고 했다. 그러던 중 혼자 죽기가 억울하여 지난날 인사고과를 불리하게 내린 옛 상사를 찾아가 함께 죽기로 작정하였던 것이 범행동기였다. 그러나 막상 그를 만나려는 목표가 좌절되자 극도의 분노감에 휩싸여 아무에게나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이런 행동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풀이 범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화풀이성 범죄, 시대상의 반영

사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최근 장기간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중산층은 설 자리를 잃고 실직으로 내몰린다. 또한 젊은층은 장기간 미취업 상태에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 ‘삼포세대(三抛世代)’, ‘오포세대(五抛世代)’란 말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얼마나 딱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취업이 안되니 결혼도 하지 못하고 아이도 낳을 수 없다. 무슨 정책을 펴도 인구가 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제 밥그릇 지키기가 이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고, 누구도 자신들에게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절망감과 열패감으로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희망도 인본주의도 사라진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부표처럼 떠다니며 세상을 적대시하며 비관한다. 바로 이런 소외와 무질서의 순간에 분노는 폭력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유달리 화풀이성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만성화된 불만은 때로는 자신에 대한 공격행동이나 타인에 대한 공격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로, 특히 청년층의 첫 번째 사망원인이 자살이란 사실은 이런 명제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변화의 씨앗은 교육제도 안에서

최근 가출 청소년 28만 명, 학업 중단자 8만 명이라는 절망적 통계수치들을 보면서 앞으로 이런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것임을 걱정하고 있던 중에, 친구 아들의 대안학교 생활을 엿볼 기회가 잠시 있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여유롭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천국 같은 자연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입시로 말미암은 극단적인 경쟁으로 내몰리지 않으면서 직업체험 위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이 학교의 아이들이 행복해 보였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친구 부부는 두 아이를 일반 학제에서 키워보고는 막내만큼은 특별한 선택을 하였고, 현재 아이의 학교생활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 우수하지만 불행한 형들보다 공부는 못할지 모르지만 행복한 막내에게서 큰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사회적으로도 더 성공한다는 사실은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수십 년간의 연구를 거쳐 입증한 결론이다.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인지 아닌지 하는 간발의 학력 차이보다는, 남들과 어울려 삶을 즐길 줄 알고 자연에 감사할 줄 아는 순한 심성이 묻지마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임을 생각해 본다. 결국은 가족해체를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서, 변화의 씨앗은 교육제도 안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고, 친구 아이의 대안학교 생활은 그 씨앗이 어떻게 심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기성세대가 ‘무조건’, ‘평등적(획일적)’, ‘표준적(배타적)’이란 원칙에 매달리지만 않는다면 사실상 여러 가지 실험은 가능하다. 다양한 대안교육이나 그룹 홈(자활꿈터)을 중심으로 하는 홈스쿨링(가정학교)을 허가해 주고 많은 뜻있는 어른들이 쉽게 교육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극한의 경쟁으로 내몰리고도 취업 실패로 신세한탄이나 세상을 비관하도록 만들지 않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조만간 닥쳐올 이유 없는 분노범죄의 만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동안 당연시했던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할지 모르겠다.

* 이수정 데레사 -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범죄심리학자로 대법원 전문심리위원과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평가위원을 맡고 있으며, 「최신 범죄심리학」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5년 7월호, 이수정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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