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사순시기 - 세례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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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05 ㅣ No.448

[레지오 영성] 사순시기: 세례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교회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에 따라 우리에게 사순시기를 환희의 정신으로 기념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16-18)

 

우리가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사순시기동안 우리 주변에는 아주 많은 격려와 감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인 자비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매일 미사에 참례하거나, 진정으로 고해를 하거나, 금주를 하거나, 매일 가족이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거나, 그들에게 아주 깊은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레지오 단원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성무일도를 바쳐 쁘레또리움 또는 아듀또리움 단원이 되기로 결심하기도 합니다.

 

사순시기 동안에는 아주 큰 관대함의 정신이 주변에 머무르며, 우리 모두는 최소한 좀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아가 여러 방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전체 교회는 자신을 새롭게 하여 자신의 중점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다시 둘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순시기동안 우리 모두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복음의 기쁨을 좀 더 광범위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사순시기에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 성인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세례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사순시기는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앞두고 최종적으로 준비를 하는 시기였으며, 기존 신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세례 때 한 약속들을 엄숙하게 갱신하기 위한 진지한 준비의 시기였습니다. 부활성야는 전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전체 전례력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입니다.

 

세례의식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쁨에 대한 개념을 알게 해 주기 위해서 엑술테트(Exsultet)라 불리는 부활 찬송의 구절들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기뻐하라, 땅도 기뻐하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영원한 임금의 광채가 너를 비춘다. 비춰진 땅아 깨달으라 세상 어둠 사라졌다. 기뻐하라 자모신 성교회, 위대한 광명으로 꾸며진 성교회 백성의 우렁찬 찬미소리 여기 들려온다.’(역자 주: 이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부활찬송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 얻어

 

찬송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계속하여 환희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왜 세례가 사순시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이며, 거룩한 부활전례의식의 중심에 자리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 성인의 가르침과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 대한 그의 소책자와 다른 저서들의 중심 주제가 세례인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의 절대적인 예수그리스도 중심주의로 인해 세례는 몽포르 성인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원이 되고, 성부의 자녀가 되고, 그리고 성령의 성전에 들어갑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께 완전히 빠져들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몽포르 성인은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이며, 이 봉헌이 바로 자신의 모든 영성의 근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가끔 몽포르 성인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은 너무 나간 것이고, 레지오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한 것도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그들이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나 레지오 교본을 읽어보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해라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몽포르 성인은 참된 신심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만약 성모님께 대한 우리의 신심이 주님으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전환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것을 악마의 환상의 하나로 취급하여 거부해야 한다.’(참된 신심 n.68). 또 그의 가장 큰 업적인 영원한 지혜의 사랑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감히 모든 것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을 모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아니다.’(영원한 사랑의 지혜 n. 11)

 

몽포르 성인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그의 영성에서 절대적으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며, 프랭크 더프 형제와 그가 창설한 레지오에게도 동일한 것입니다. 교본 마지막 부분의 색인 표 끝 부분에 있는 주석에서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 대한 인용문들은 삽입되어있지 않다. 교본에 수록되어있는 모든 단어 속에는 주님이 함께하며, 따라서 교본의 모든 부분에서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 레지오 단원들은 모든 장소, 모든 상황 속, 그리고 모든 경우들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 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더프 형제의 글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레지오는 순수한 예수 그리스도 중심주의입니다.’ 이 글은 몽포르 성인의 산물입니다.(역자 주: 영문교본의 색인 표 부분은 한글 교본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줘

 

그러면 마지막으로 몽포르 성인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가르침에 따른 성모님께 대한 총체적인 봉헌이 세례의 실체인 그리스도께 대한 총체적인 봉헌의 어느 부분과 합치하게 되는 것일까요? 아마 몽포르 성인의 글을 다시 한 번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성모님께 더 봉헌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더 봉헌하는 사람입니다. 복되신 동정녀께 자기 자신을 완벽하고 완전하게 봉헌하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 대한 완전한 봉헌이 되는 이유입니다또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성스러운 세례의 서약과 약속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심 n.120)

 

몽포르 성인은 누구든 성모님을 등한시하면 그 사람은 세례를 이해할 수 없으며, 나아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세례의 맥락 또한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어머니로서 성모님의 역할은 우리로 하여금 세례를 통해 시작된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성삼위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매우 기쁜 사순시기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4월호, 글 비드 맥그리거(OP 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역 이재호 스테파노(대구 Se. 국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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