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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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아버지 성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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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10 ㅣ No.1255

[생명 사랑] 생명의 아버지 - 성 요셉



요셉의 꿈, 램브란트 1650-55경, 유화, 부다페스트 미술박물관 소장, 헝가리.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마태 2, 13)

인간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을 무상의 선물로 나누어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생명의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가 드러납니다. 이러한 인간생명은 우리에게 맡겨진 신성한 실재이며 그래서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이 생명을 보존하여야 하며 사랑으로 그리고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우리 자신을 다시 선물로 내어 줌으로서 완성시켜 나아가야 합니다.(생명의 복음 2항)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명의 연대성을 거부하는 현대의 세태를 ‘죽음의 문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비판하였습니다.

이 죽음의 문화는 “더 큰 사랑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쓸모없다고 여기거나 참을 수 없는 짐으로 생각하고,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들의 복지나 생활양식을 위협하는 사람들로 여기고 이들을 거부하거나 제거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생명의 복음 13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문화를 넘어 이 세상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할 소명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하느님이 묻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질문입니다. 하느님은 이 질문을 통해 모든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를 지키는 사람들이며 모든 사람은 타인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서로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봉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임을 밝힙니다.(생명의 복음 19항)

이처럼 생명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우리는 오늘 아기 예수님의 양부인 요셉을 통해 구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느님을 돕다’ 곧 ‘돕는 사람’ 의미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교회에서 성 요셉의 사명을 “보호와 방위, 수호와 원조”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교황은 성 요셉이 아기 예수의 수호자, 마리아의 수호자, 성가정의 수호자, 교회의 수호자, 우리의 수호자라고도 하였습니다.

레오 13세 교황은 성 요셉을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며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함의 모범이고, 미혼자, 독신자, 수도자 · 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이다. 그리고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므로 가톨릭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요셉(Joseph)이란 이름의 의미는 ‘하느님을 돕다’ 곧 ‘돕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양아버지인 성 요셉의 인생은 성실한 돕는 이의 삶이었습니다.

정결한 남편으로서 동정을 원하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보호하고 지켜주었는데 이는 자기희생과 봉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실한 아버지로서, 예수님의 양부로서 자기 임무를 다하였습니다.

또한 구약성서에서 ‘요셉’(Joseph)은 히브리어 yosep(더하다)에서 유래하는데, 이 말은 ‘하느님께서 후손을 더하시기를’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성조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유래하는데 예수님 시대에는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을 낳은 라헬은 하느님께 또 다른 아들을 더하여 달라고(yosep) 간청합니다. “아기 이름을 요셉이라고 부르고, ‘야훼께서 나에게 아들을 하나 더 점지해주셨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하였다”(창세 30,24).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인 요셉에게 인류의 구세주를 보살피도록 맡겨주신 것입니다.

사실 성서에는 요셉을 ‘예수의 아버지’(마태 13,55; 루가 3,23; 요한 1,45. 6,42)로서 묘사하고 있는 것 이외에는 마태 1-2장과 루가 1-2장에서만 이 조용하고 신중하며 겸손한 종에 대하여 아주 적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서에 적게 나타난다고 해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성 요셉이 적게 참여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인은 특별한 부름을 받았습니다. 즉 모든 남자들 중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아버지로서 그 지고의 직무를 나누도록 선택받았습니다.


요셉은 생명을 받아들이는 선택하고 보호해

마태오 복음에는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이 마리아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때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남모르게 파혼할 생각을 합니다. 그때 요셉의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계시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천사가 말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마태 1,18-25)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의 잉태소식은 요셉에게는 참으로 혼란스러운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쉽지 않은 결단, 곧 생명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합니다.

요셉의 결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세주 예수님을 직접 뵈올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까지도 내어 놓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부성애는 생명을 위협하는 온갖 공격에서 아들과 그 어머니를 지켜

하지만 오늘날 많은 가정에서 요셉과 같은 상황에서 요셉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요셉과 다른 선택을 한다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만나 뵙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더 소원해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으나 법적인 남편이며,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으나 아버지 요셉을 통하여 법적인 다윗의 후손(마태 15,23)이 되었고 메시아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또한 두 살 이하의 어린 남자아이들을 찾아 모두 죽음에 이르게 했던 헤로데의 잔인한 계획에서도 천사의 인도에 따라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아기 예수를 보호합니다.(마태 2,13-15) 요셉은 아버지로서 아기 예수의 생명과 그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숭고한 희생과 체험합니다. 이러한 요셉의 부성애는 생명을 위협하는 온갖 공격에서도 아들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지켜냅니다.

아버지 요셉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가난하고 약한 생명으로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도 의로운 사람이었고 관상적 시각으로 하느님의 뜻을 새기며 실천했던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생명의 아버지라 불릴 수 있을 만큼 모든 아버지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생명의 복음 104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8월호, 지영현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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