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14-16: 교회 시대의 기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04 ㅣ No.835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14) 교회 시대의 기도(「가톨릭 교회 교리서」 2623~2649항)


다섯 가지 기도 중 찬미와 흠숭

 

 

개관(2623~2625항)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오순절에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한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내려오십니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되새기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또한 교회가 기도 생활로 성장하게 하십니다. 

 

이는 예루살렘의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교리서는 이것이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전형적인 모습”(2624항)이라고 설명합니다. 곧 교회의 기도는 △ 사도들의 신앙에 근거를 두고(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 사랑으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되고(친교를 이루며) △ 성체성사로써(빵을 떼어 나눔으로써) 양육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이와 함께 성경에 나오는 기도들, 특별히 시편의 기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것을 근거로 해, 이 시편들을 현재 상황에 따라 새롭게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 바칩니다. 구약의 시편 기도에서 살펴봤듯이, 시편은 “신분이나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바칠 수 있는 진실한 기도”(2588항)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께서는 또 “교회 생활과 성사와 교회의 사명에 적용하는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신비를 표현하게 될 새로운 기도문들이 생겨나게 하십니다”(2625항). 기도문들은 전례의 영적 전통 안에서 발전해 나가는데 신약성경을 포함해 정경(正經)에 들어 있는 기도문들은 그리스도 기도의 규범이 됩니다. 

 

교리서는 이 기도들을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해 설명합니다. 찬미와 흠숭, 청원, 전구, 감사, 찬양 기도가 그것입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Ⅰ. 찬미와 흠숭(2626~2628항)

 

찬미는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과 사랑이신 하느님을 향하는 인간의 만남입니다. 이 찬미 기도는 “그리스도인 기도의 기본 움직임을 드러낸다”(2626항)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찬미 안에서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과 이 선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서로 대화하며 결합하기”(2626항)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미 기도는 “하느님의 선물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 강복해 주시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2626항). 

 

찬미 기도가 기도의 기본 움직임을 드러낸다고 했는데, 이 움직임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 올라가는 움직임”입니다. 이것이 찬미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내려오시는 성령의 은혜”입니다(2627항). 이는 강복입니다. 말하자면 성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강복하셨기에 우리는 성부를 찬미하는 것입니다. 

 

흠숭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임을 깨달은 인간이 취하는 기본 자세”로 “우리를 지어내신 주님의 위대함”과 “우리를 악에서 구해 내시는 구세주의 전능”을 드높이는 것입니다(2628항). 흠숭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마음을 쏟아 꿇어 엎드리는 것이며, 존경 어린 침묵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극히 거룩하시며 최고의 사랑을 받으셔야 할 하느님께 대한 흠숭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우리의 간청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준다”(2628항). [평화신문, 2016년 9월 4일, 이창훈 기자]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15) 교회 시대의 기도(「가톨릭 교회 교리서」 2623~2649항)

 

청원기도에는 순서가 있다

 

 

II. 청원 기도(2629~2633항)

 

청원 기도는 글자 그대로 원하는 바를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청원 기도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깨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면서 청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청원 기도와 관련해 교리서가 설명하는 다음의 내용은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원(起源)도 아니고, 우리가 당하는 역경을 우리 마음대로 없앨 수 있는 주인도 아니며, 우리의 궁극적 목적도 아니다. 도리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아버지께 등을 돌린 죄인임을 알고 있다. 청원은 이미 아버지께로 돌아섬을 의미한다”(2629항). 

 

그래서 청원 기도의 첫 단계는 “용서를 청하는 것”(2631항)입니다. 루카 복음 18장 13절에 나오는 죄 많은 세리의 기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용서를 청하는 것은 순수한 기도의 전제 조건입니다. “겸손하고 신뢰심을 가져야만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도 친교를 나눠. 다시 빛 가운데서 살 수 있기”(2631항)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용서를 청하고 화해하라고 하셨듯이(마태 5,23-24 참조), 용서를 청하는 행위는 성찬 전례에 앞서 이뤄져야 합니다. 

 

청원 기도라고 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는 기도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청원은 ‘하느님 나라’에 집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먼저 아버지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마태 6,10 참조). 교리서는 하느님 나라를 바라는 이 청원에 “순서가 있다”고 밝힙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청하고, 다음에는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고 그 나라의 도래에 협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청해야 한다”(2632항)는 것입니다. 

 

교회의 시대에, 하느님 나라가 오는 데에 협력하는 일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사명이라는 말은 또한 교회를 이루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이 협력은 행동으로만이 아니라 기도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곧 “세례받은 모든 사람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서 노력해야”(2632항)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오도록 협력한다는 것은 또한 하느님 사랑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사랑에 참여하게 될 때 다른 필요한 모든 것이 또한 청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원 기도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청원 기도의 첫 단계는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단지 하느님 나라가 오기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오도록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필요한 다른 모든 것을 청하는 것입니다. 청원 기도를 바칠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늘 떠올립시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평화신문, 2016년 9월 11일, 이창훈 기자]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16) 교회 시대의 기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23~2649항)

 

타인 위해 청원하며, 감사하고 찬양

 

 

Ⅲ. 전구(2634~2636항) 

 

전구(轉求)는 다른 사람을 위해 청원하는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청원하는 대표적인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로마 8,34)라고 로마 신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특히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전구자”(2634항)이십니다. 또 성령께서도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다른 사람을 위해 청원하는 전구는 아브라함 이래로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일치된 인간 마음의 특징”(2635항)입니다. 교회 시대에 와서 그리스도인의 전구는 △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며 △ 성인들의 통공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통공(通功)’이란 ‘공로가 통한다’는 뜻으로 내가 쌓은 공로를 내 것으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픈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전구)은 통공 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구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제 실속만 차리지 않고 남의 이익도 돌봅니다. 또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위해서까지도 기도합니다. 자신을 못 박은 이들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위 기도(루카 23,24 참조)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스테파노가 바친 기도(사도 7,60)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전구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박해하는 사람들과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원수들을 위해서도 전구합니다(2647항; 1티모 2,1; 로마 12,14; 로마 10,1 참조).

 

 

Ⅳ. 감사 기도(2637~2638항)

 

“감사 행위는 교회의 기도를 특징짓는다”(2637항)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희생 제사인 성찬례는 또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이기도 합니다(1359항 참조). 그리고 이 성찬례는 교회 생활의 중심이요 정점입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 10항 참조). 

 

그래서 교리서는 “교회는 감사제인 성찬례를 거행하여, 자신의 정체를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본질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2637항)고 밝힙니다. 사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또한 감사 기도를 바칠 때 언제나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칩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 기도는 청원이 받아들여졌을 때만 바치는 기도가 아닙니다. “모든 기쁨과 모든 슬픔, 모든 사건과 모든 필요가 다 감사를 드리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2648항). 이와 관련,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콜로 4,2).

 

 

Ⅴ. 찬양 기도(2639~2643항)

 

“찬양은 하느님께서 진정 하느님이심을 한결 더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기도의 형태”, 말하자면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기리는 것”(2639항)입니다. 하느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25일, 이창훈 기자]



3,11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