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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 기부문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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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25 ㅣ No.1258

[경향 돋보기 -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 기부문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의 역사

기부의 역사는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길고도 긴 기부의 내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과 그 궤적을 같이 한다.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들은 신분에 따른 여러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그러한 특권을 누리는 것에 상당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의 2천 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나서 용감하게 싸웠다고 한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 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재임 중 국가의 재정이 어려울 때 개인재산으로 국고를 네 번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로마의 귀족들 또한 공공시설의 복구나 건축을 위해 개인재산을 희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빈곤 퇴치나 차세대 육성을 위한 기부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런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 지성이나 체력, 기술력이나 경제력에서 다른 민족들보다 뒤떨어졌다던 로마인들이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무려 천 년 동안이나 강국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유럽에 뿌리내린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렇게 시작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 뿌리내리게 된다. 프랑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조각가 로댕의 유명한 작품 ‘칼레의 시민’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칼레의 시민은 14세기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때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 시민들의 생명을 구한 영웅들을 기념한 작품이다.

당시 칼레의 시민들은 영국군에 포위당한 채 근 1년을 완강하게 저항하였으나 식량 부족으로 마침내 항복하게 된다. 도시가 점령되자 시민들은 영국군에게 학살당할 위기에 놓인다. 이때 항복사절은 시민들을 살려줄 것을 간청한다. 이에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시민들의 생명을 보장하는 대신 지도층 인사 6명의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시민들은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지를 놓고 번민에 빠진다. 그 와중에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내가 가겠소.” 하고 외쳤다. 그는 칼레에서 가장 재력가로 알려진 에스타쉬 드 생피에르였다. 그러자 그의 뒤를 이어 5명의 인사가 앞다퉈 자청하고 나섰다.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 칼레의 시민을 구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당시 임신 중이었던 영국 왕비가 왕에게 곧 태어날 왕자의 태교를 위해 살려주자고 설득하는 바람에 형 집행 직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들의 의연한 행동과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은 프랑스 국민의 가슴에 감동으로 각인되었고, 그 뒤 로댕의 작품으로 남아 지금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로 기억되고 있다.

영국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이다. 영국의 왕실은 나라가 위기에 놓이면 어김없이 국난타개의 선봉에서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에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제2차 세계대전에 수송병으로 참전하였으며, 차남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손자 해리 왕자는 아프간 전쟁에 참가한 바 있다.

영국 최고의 사립고등학교로 손꼽히는 이튼 칼리지는 20여 명의 총리를 배출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지만, 학교 전체가 ‘거대한 무덤’이라는 사실로도 이름이 높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전사한 수천 명의 졸업생 명단이 학교 내의 교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기부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유럽에서 시작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신흥국가인 미국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처음부터 봉건적 계급제도 없이 만인이 평등한 민주국가로 시작한 미국에는 유럽과 같은 귀족 계급이 없었다. 이런 여건 때문인지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특정 계급의 책무가 아니라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기부문화로 만들어진다.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역사가 꽃피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가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등장하게 되고, 그들은 기부문화의 전통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 기부문화의 시발점에는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가 있다. 카네기는 65세가 되던 1900년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엄청난 수익을 내던 자신의 철강회사를 5억 달러에 처분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자금으로 자선활동을 시작하여 여생을 ‘위대한 기부자’로 보내게 된다. 카네기 이후 존 록펠러, 헨리 포드 등이 이어서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해 재단을 설립했고,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테드 터너 등에게 면면히 계승된다. 현재는 10만여 개의 크고 작은 재단들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부자들은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경쟁적이다. 세계 최고의 부호이며 최대의 기부자인 빌 게이츠는 “부의 사회 환원은 부자의 의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선행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 이제 미국인들은 기부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움을 받아야 할 극빈층을 제외한 미국인 대다수가 어떤 형태로든지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개인들의 기부가 총기부액의 80%에 이른다는 최근의 통계가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준다.

카네기 이후 한 세기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기부의 전통이, 부자들의 미덕에서 미국사회 전체의 힘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미국의 부자들이 나눔의 실천을 통해 과거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를 새로운 형태로 정착시킨 것이다.

지난날 부시 정부가 추진한 바 있는 상속세 폐지 시도에 대해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같은 거부들이 “상속세 폐지는 혐오스러운 일”이므로 “유산보다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다. 이들이 ‘책임 있는 부자’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기부의 진정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문화는 미국사회의 갈등을 봉합하고 국민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역사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의 역사는 면면히 흐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수난 자취에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온몸을 던진 훌륭한 선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등장한다. 그들의 애국심과 의기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설명하는 서구 노블레스들의 강력한 도덕적 권위의 원천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근대사에서만도 그런 인물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① 경주 최 부자 가문의 사회공헌

사회에 공헌한 부자로는 경주 최 부자 집안을 꼽을 수 있다. 이 가문은 무려 10대의 300년에 걸쳐 만석꾼의 재산을 유지하면서 수많은 선행과 독립운동의 후원자 역할을 통해 부자로서는 드물게 존경과 칭송을 받는 집안이다. 최 부자 집안은 권력을 멀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했으며,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검소하게 살며 자선을 베풀었다. 그들은 항일운동과 교육사업에 전 재산을 바치는 것으로 기나긴 부의 세습을 마무리하였다.

최 부자 집안이 칭송받는 것은 부를 많이 축적하고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자선활동과 사회공헌으로 지도층의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가문의 모범은 한두 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집안의 전통으로 전해 내려온다는 점에서 더 가치가 있다.

② 우당 이회영 일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우당 이회영 가문 또한 우리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를 논하는 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집안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은 만주에다 무력항쟁 기지를 설립할 구상을 하고 재산을 모두 처분한 뒤 1910년 12월 추운 겨울날 60명에 달하는 대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떠났다. 그때 처분한 재산이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 원에 이르는 거금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때 만주로 간 우당 6형제는 그 자금으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의 중추기관으로 성장시켰다.

우당의 6형제 가운데 훗날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을 제외한 5명은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조국의 해방도 보지 못한 채 옥사하거나 고문 후유증, 굶주림으로 타국 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였다. 명문가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헌납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회영 일가의 일화는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③ 항일 특수 공작원과 참기업인을 넘나든 유일한

기업인으로서 본보기가 되는 인물은 유일한이 우뚝하다. 유일한만큼 인생의 편차가 큰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는 한 세기 전 불과 10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생에서 경영자로 성장하였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리고 고국에 돌아와 민족기업을 일으키고는 항일투쟁을 위해 미 육군 전략정보처(OSS)의 특수요원으로 변신하였다. 해방 뒤에는 제약업체를 크게 키우고 교육기관을 설립하였으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가운데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참된 기업가이자 기부문화의 선구자로 우리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가라 할 만한 인생을 살았다. 그에게 기업은 목적이 아니라 나눔을 위한 수단이었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다만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라는 그의 어록에서 남다른 기업관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나눔문화의 현주소

이러한 전통이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지난날에 존재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나눔의 철학으로 승화되어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재벌들이 사회공헌에 앞장서기도 하고 풀뿌리 기부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는 있으나,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 반열에 들고 있는 나라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라거나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있기에는, 우리 사회의 삶의 질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화되는 가운데 기부문화의 토양이 척박하기만 해 안쓰럽다.

최근 기부의 저변이 많이 넓어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 사회 기부의 주역은 김밥 할머니나 떡장수 할머니라는 사실이 그러한 현실을 잘 말해준다. 우리의 기부 현실은 개인기부보다 기업의 기부가 많고, 그 기업기부의 상당 부분은 준조세적 성격의 비자발적 기부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 기업가들의 기부는 아직도 많은 경우 회사의 자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개인재산을 자선사업에 쾌척하는 경우는 드물다. 비중이 낮은 개인기부조차 여전히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회적이고 충동적인 기부에 그치고 있다.


기부문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정착방안

우리 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힘입어 이제는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 서 있다. 그동안은 무엇보다도 급한 양적 성장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 이제는 우리도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소외계층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질적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기부는 정부의 개입영역이 아니거나 정부의 역할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문제의 해결에 이바지한다. 또 자선적 기부는 사회의 균형발전을 가능하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에 이바지한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자선적 기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의 기부문화도 바뀌어야 할 때이다. 우리도 이제 우리가 가진 행복을 조금씩 소외된 이웃과 나눌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건전한 기부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 기부문화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시대정신으로 벌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가 기업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일회성 기부에서 정기적인 기부로, 비자발적 기부에서 자발적 기부로, 다액 소수의 기부에서 소액 다수의 기부로 바람직하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기부문화가 조성되려면 먼저 사회 지도층의 모범적 기부가 많아져야 하며, 기부자를 영웅으로 대접하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기부에 대한 교육이 늘 이루어져야 하고, 기부를 장려할 수 있는 여건과 조세제도도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기부의 대상이 되는 비영리 조직들의 투명성과 신뢰성, 그리고 경영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비영리 조직들은 시민의 기부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 사회에 건전한 기부문화가 정착되어 자신의 행복을 소외된 이웃과 조금씩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 예종석 -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으로 나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와 루트임팩트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이며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장과 경영전문대학원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5년 8월호, 예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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