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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47: 그리스도 사랑 실천한 신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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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20 ㅣ No.652

[사유하는 커피] (47) 그리스도 사랑 실천한 ‘신의 도구’


커피에 어린 신의 은총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는 가히 ‘신이 내린 축복’이다. 고단함을 순식간에 날려주는 데 이만한 게 없고, 향기만으로도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다. 맛을 따져가며 즐기는 경지에 다가가면 커피와 함께 깊은 명상에 빠져들 수도 있으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악마의 음료’라는 말까지 듣고, 괴테에게 음흉한 물질을 숨기고 있다는 질책까지 받았던 커피. 게다가 유럽 열강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식민지에서 강제노역으로 커피를 통해 막대한 부를 챙기면서 ‘착취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런 탓에 커피는 은총과는 거리가 멀다는 눈총을 받지만 반전도 있다.

 

예수회 수사들이 식민지배로 인해 굶주림과 공포에 떨던 사람을 오지까지 찾아가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던 것은 커피가 있어 가능했다. 언뜻 커피의 전파 경로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침략 루트인 것처럼 보이지만 잘 헤아려 보면, 커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신의 도구’였다.

 

콜롬비아는 커피로 먹고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 초 에스파냐의 식민 지배를 받던 콜롬비아 원주민들에게 희망을 준 인물이 예수회 소속의 프란치스코 로메로 신부이다. 커피는 원주민들에게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여윳돈을 만들어 줄 ‘희망의 작목’이었다. 하지만 씨앗을 심어 상업적으로 판매할 수 있을 정도까지 4년이 걸리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커피 농사를 꺼렸다. 4년간 굶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 탓이다.

 

로메로 신부는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물량 부족으로 커피 가격이 폭등한 현장을 보았기 때문에 커피 농사가 고달픈 원주민들의 삶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고해성사를 활용하기로 묘안을 짜냈다. 죄를 고백하는 원주민에게 보속으로 커피 묘목을 심도록 했다. 세례를 받은 원주민을 중심으로 커피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자, 대주교는 다른 지역의 신부들에게도 이를 권하면서 예수회 차원에서 커피나무 심기가 운동처럼 번져 나갔다. 콜롬비아를 커피대국으로 성장케 한 원동력은 ‘가톨릭의 신앙심’이었다. 이 덕분에 콜롬비아 커피에는 ‘신이 빚어낸 커피’라는 수사가 따른다.

 

하와이 코나는 미국 선교사 사무엘 러글스가 아니었으면 세계 최고의 커피산지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파도를 헤쳐 오아후 섬을 수십 차례 오가면서 꺾꽂이로 코나 커피나무를 키워냈다. 1750년 과테말라에도 커피 씨앗을 처음 들고 들어간 인물들이 예수회 선교사들이었고, 미얀마 최대의 커피 산지인 핀울린 산속을 찾아가 손수 아라비카 품종 재배법을 가르쳐 준 스승이 가톨릭 선교사들이었다.

 

조선에는 철종 때에 커피가 선교의 도구로 활용됐을 단서가 나왔다. 제4대 조선대목구장을 지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시메온 프랑수아 베르뇌 주교가 1860년 3월 6일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가 있던 홍콩의 리부아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 “커피 20㎏(생두로 추정)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베르뇌 주교는 이듬해 9월에도 커피 25㎏을 보내 달라고 편지를 썼고, 1863년 11월에는 요구량이 50㎏으로 늘어났다. 혼자 마시기에는 많은 양이기 때문에 커피를 마신 최초의 조선인은 고종이 아니라 철종 시대에 베르뇌 주교를 돕던 천주교 신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연간 353잔으로, 세계 평균(132잔)의 2.7배에 달한다. 우리의 유별난 커피 사랑의 기저에 신의 따스한 사랑이 감돌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4월 18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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