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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미얀마 젊은이들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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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20 ㅣ No.748

[허영엽 신부의 ‘나눔’] 미얀마 젊은이들과 만남

 

 

3월 둘째 주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님과 한 대학생을 아주 우연히(?) 만났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연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 신부님이 인사를 하면서 그 대학생이 미얀마에서 온 21세의 유학생이라 소개했어요. 지금 막 평화방송에서 뉴스 인터뷰를 했다고 했어요, 현재의 미얀마 사태에 관해서 직접 스튜디오에 나가서 설명을 했다고 전해주었어요.

 

홍 신부님은 미얀마 학생들을 염수정 추기경님께서 만나주시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마침 교구장님은 지난주에 이년 전 한국에 오셨던 미얀마의 챨스 마웅 보 추기경님께 위로서신과 함께 치료자 부상을 위해 5만 불을 보내라고 지시하셨어요. 3월18일 목요일 오전에 20대 초반의 미얀마 청년들 4명과 홍 신부님께서 교구장실로 방문하셨어요. 교구장님은 주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듣는데 집중하셨어요.

 

미얀마 유학생들이 자신의 나라에 관해 소식을 들려주었어요. 우리나라에 온지 1~2년밖에 안되었다는 학생들이 너무 한국말을 잘했어요. 외적인 모습도 한국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거리에 나가면 한국 사람들과 구별이 어려울 것 같았어요. 미얀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국에 있는 우리가 미얀마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추기경님을 뵙고 말씀드리려고 왔다고 했어요. 그들이 전하는 말은 충격적이었어요.

 

“지금 미얀마 군부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200명이 벌써 넘었다고 해요.”

 

“언론에는 거의 못나오고 있어요.”

 

“며칠 전부터 인터넷도 차단되고 계엄령 이후로 사망자를 다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우리 모두 부모님과도 연락이 닿지 않아 매우 불안한 상태예요.”

 

“학생들 대부분이 납치를 당하고, 4000여 명이 실종된 상태이고 학생들이 군부의 폭행으로 사망해 시신으로 돌아온대요.”

 

“밤중에도 개인집에 들이닥쳐 10대 소녀를 머리에 조준사격해서 죽었다고 해요.”

 

“며칠 전에는 시위하는 학생들을 숨겨준 임산부가 총살당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 염수정 추기경 미얀마 청년들 접견(2021.3.18) ⓒ천주교 서울대교구

 

 

예전 독재국가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린 학생들 시위 참여

 

염 추기경님은 학생들의 말을 듣고 한숨을 쉬시면서 쉽게 말씀을 못하시고 안타까워하셨어요. 곁에서 듣고 있는 나도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런데 내 옆에 앉은 미얀마의 한 대학생이 이야기를 했어요.

 

“미얀마에 있을 땐 인권이란 말도 이해 못했어요.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노동자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사람의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다른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거들었어요.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등 어린 아이들이 시위에 나가는 것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국가 지도에 나선 후 비로서 자유, 인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만약 군부가 다시 집권하게 되면 예전의 독재국가로 돌아가기에 그것을 가장 두려워해요.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것을 막아야하겠기에 어린학생들이 시위에 더 열심히 참여해요.”

 

곁에서 듣고 있던 내가 물었어요. “시위에 나가면 너무 위험해서 죽을 수도 있어서 부모님도 말릴 텐데요.” 그러자 어린 여학생이 나지막이 그러나 또박또박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한사람이 죽으면 그 다음에 세 사람이 나가기로 약속했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죽는 것이 무섭지만 동생들에게 자유와 인권이 없는 지옥 같은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잖아요. 시위에 참석하는 어린 학생들은 죽는 것이 무섭지만 피하지는 않아요. 그 만큼 가치 있는 죽음이기에 부모님도 못 말리고 있어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다가 그 학생에게서 눈을 돌렸어요. 자꾸 내 눈에 이슬이 맺히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당연히 우리가 대학 때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광주에서의 사건도 떠올랐어요.

 

염 추기경님은 학생들에게 이야기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기도로 함께 하겠어요. 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로 공감했어요.”

 

학생들은 교구장님께서 자신들을 만나주시고 말씀을 들어주신 것만 해도 너무 고맙고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하며 한국 분들이 미얀마 사태에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어요. 사실 미얀마(옛 이름은 버마)는 6.25 때 굶주리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쌀을 지원해주었던 고마운 나라이죠. 여행 중 여권을 잃어버려도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사람들이 착하고 온순한 곳이라 하네요.

 

 

착한 사람들이 더 피를 흘리지 않도록 기도 청해

 

교구장님이 미얀마 학생들을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강대의 한 교수 신부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 학생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그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그 신부님 자신도 미얀마에서 몇 년간 생활했기에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셨어요. 홍성남 신부님은 만남 이후에도 계속 미얀마의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그 이후에 한국의 미얀마 학생들로부터 전해진 소식은 더욱 참담했어요. 일반 언론에서 나오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미안먀 군부가 시위를 진압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시민들과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몇 장의 사진을 보냈는데 모두 총상으로 머리가 없는 비참한 학생들의 사진이었어요, 너무 참혹해서 공개를 할 수 없는 사진들이었어요.

 

미얀마 사태는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의 사악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요.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지 두 달이 다 돼 가는 지난 성지주일에는 주말에만 120명이 넘는 시민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시위진압에서 시작된 유혈사태는 이제 반민주적인, 반문명적인 테러로 바뀌고 있다고 했어요.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대책도 한계가 있어 너무 아쉬운 일이죠.

착하고 온순한 사람들이 더 피를 흘리지 않도록 많은 분들의 기도를 청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5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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