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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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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9-30 ㅣ No.64

[성미술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사악

 

 

-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렘브란트. 1635년. 193.5×32.8cm.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 페테르부르크.

 

 

렘브란트는 「유럽의 왕관」으로 일컬었던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미술의 기적을 일구었던 화가이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들은 잘 나가는 무역도시의 눈부신 햇살 대신에 인간의 영혼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응달에 집중한다. 칼뱅주의가 판치던 네덜란드에서 민감한 종교 주제를 다루기란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그림 한 점 때문에 교회의 반목을 사는 일도 빈번했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은 렘브란트의 그림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골치 아픈 작품이다.

 

이 주제는 원래 르네상스 이후 병아리 화가들의 입시시험에 단골 출제되던 문제였다고 한다. 우선 등장인물들을 꼽으면 할아버지와 알몸의 어린이, 천사와 수양이 고루 나온다. 또 풍경화까지 배경에 깔린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 죽이는 살벌한 줄거리 설정에다 하늘에서 날아온 천사까지 개입하는 극적인 반전까지 드라마틱하게 재현하려니 병아리 화가 지망생들은 머릿기름깨나 짰을 것이다. 그러나 렘브란트가 활동했던 시대에는 약간 사정이 달라져서 정치적인 색깔이 하나 덧붙는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가톨릭 종교개혁의 관점에서는 아브라함을 가톨릭교회 그리고 이사악을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보고, 죽이려다 살려준다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프로테스탄트의 재개종을 권유하는 교화수단으로 삼았다. 그런 이유에서 네덜란드에서는 이 주제가 화가들이 결코 다루어서 안 될 「위험 주제」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그런 안팎의 사정들을 감안하면 『그런 거, 난 몰라』 하고 뚝심대로 밀어붙이는 렘브란트의 배포가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아브라함과 이사악 이야기는 모리야라는 곳의 산행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모리야가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다. 성서를 통틀어서 딱 한 차례 더 나오는데, 둘이 같은 지명인지도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다. 『솔로몬은 선왕 다윗이 환상으로 본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야훼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역대기 하 3, 1).

 

모리야가 보이는 곳에서 하인들과 나귀를 멀찌감치 떼놓고,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에게 장작을 지게 한다. 불씨와 칼은 직접 챙겼다. 불씨는 작은 단지에 따로 보관했을 텐데, 위험한 물건을 아들에게 맡기지 않는 아브라함의 부성을 엿볼 수 있다. 창세기 22장의 기록을 보면 이사악이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아브라함에게 장작과 불씨는 있는데 왜 제물이 없는지 묻는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한다.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느님께서 직접 마련하신단다』

 

참으로 지혜로운 대답이다. 나잇값을 제대로 한달까, 연륜이 곰삭아서 묻어나오는 이런 대답을 들으면, 우리는 아브라함을 도저히 미워할 수 없다. 여기서 잠시 창세기를 읽는 기분이 좀 이상해진다. 이사악은 지금 영문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아들에게 진실도 거짓말도 말할 수 없는 아브라함의 딱한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무서운 비밀을 공유한 공범이 되어버린 심정이다.

 

아브라함은 이윽고 제단을 짓고 장작을 쌓는다. 그리고 아들을 찌르기 위해 팔을 뻗어 칼을 쥐었다(extenditque ma num et arripuit gladium ut immolaret filium 공동번역 성서에는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라고 옮겼다). 바로 그때 천사가 출현한다. 정확히 말하면 하늘에서 천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장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사악은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야기가 끝마무리된다.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천사와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한 몸처럼 연결되어서 큰 S 형태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 한 몸을 이루는 삼위일체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또 이사악이 알몸이 아니고 허릿수건을 두르고 있는 것도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모티브이다. 렘브란트는 이사악을 혹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같은 운명이라고 해석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한 가지, 천사가 칼을 쥐었던 아브라함의 손목을 잡아채는 것처럼 그린 것은 약간 과장된 표현이다. 성서에는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두 차례 소리쳐 부르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극적인 구성에 양념을 치느라 한 걸음 더 나간 것 같다.

 

여기서 이사악의 운명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연결 지어서 생각한 것은 렘브란트가 처음이 아니다. 사실 알고 보면 꽤 오랜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초기 교부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바르나바 서신(기원후 1세기)에 이미 이사악을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의 맥락에 두고 있는데, 이사악이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을 그리스도가 완성한다는 논리이다. 이사악은 번제물(victima holoca usti)로 바쳐졌으나 실제로는 고통을 겪지 않았는데,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고통을 다 겪고 또 그것을 넘어섰다는 식이다. 제사가 행해졌던 모리야도 예루살렘과 동일시된다. 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215년)는 「파이다고구스」에서 나무 장작을 진 이사악이 나무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의 모습과 닮았으니, 이사악은 그리스도의 예형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교부 오리게네스(~254년)는 한 술 더 떠서 「창세기 주해」에서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면서 장차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미스터리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시원시원하게 넘겨짚는다. 히브리서 11장을 근거로, 하느님은 죽은 사람까지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아들을 제물로 바쳤으니, 아브라함이 부활을 확신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오리게네스의 답안지를 독일 고전문헌학자 니체가 읽었으면 F 학점을 매겨서 낙제를 시키지 않았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한편, 바른생활 사나이로 유명한 베로나의 제노(~371/372년)는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그럴 듯한 설명을 덧붙인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죽여야 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기는커녕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는 것이다(Abraham nec dolor patrilacry mas persuasit sed exultat et gaudet).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또 실행할 수 있으니, 아브라함은 마치 선생님이 시키는 심부름을 즐겁게 해치우는 초등학생처럼 순수한 영혼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제노는 이사악도 스스로 제물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좋아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점이 그리스도와 닮았다는 것이다.

 

『이사악의 인격에는 그리스도의 경축할만한 탄생이 예시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주님이시고 또 천상의 태생이지만, 인간의 씨앗에서 비롯되지 않았기에 유다인들이 그리스도에 적대하며 몹쓸 계획을 실행하였다. 한편, 이사악은 제단으로 끌려갔으나 죽음의 운명을 여의었다. 그러나 몹쓸 인간들은 기어이 그리스도를 끌고 갔다. 그리스도는 죄인취급을 받고도 아무 말씀이 없었고, 다만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슬퍼하셨을 뿐이었다』

 

제노의 설교는 이어진다.

 

『이사악을 대신하여 수양이 죽임을 당했다. 대신 죽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담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고통을 짊어지셨다. 남의 죄를 대속하신 것이다』

 

「영의 전쟁」(Psychomachia)을 쓴 프루덴티우스도 아브라함을 참된 믿음의 본보기로 삼을만하다고 부각시킨다.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자는 모름지기 아브라함처럼 가장 귀한 것, 가장 사랑하는 것, 자신의 아들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당시에 팬 카페가 있었다면, 기꺼이 카페지기로 나섰을 것이다.

 

교부 아우구스티노(~430년)는 그의 책 「신국」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히브리서 11장과 연관시켜서 설명한다. 아들을 장작에 살라서 번제물로 바치더라도 하느님이 언제든 되살려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이다. 놀이기구 바이킹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엄마가 옆에 앉아서 손을 잡아주면 조금도 겁을 내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는 논리이다.

 

물론, 렘브란트가 교부들의 수많은 기록들을 시시콜콜 다 찾아서 읽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영혼의 가장 깊은 구석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진 화가에게 성서의 숨은 구절들이 결코 읽어내기 힘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11월 28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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