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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 사순특강3: 세 번째 선택, 최고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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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5 ㅣ No.136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 사순특강 (3) 세 번째 선택, 최고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 사랑, 최고의 사랑

 

 

사랑에는 세 가지가 있다. 빨간 하트 모양 같은 남녀 간의 이성적 사랑과 그냥 마음이 가는 우리의 정(情) 같은 사랑,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고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사랑'이라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성경은 예수님 사랑 전체를 '아가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특수한 용어를 한국말로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은 그 예수님 사랑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자.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고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사셨다. 그러한 예수님 사랑을 설명하는 데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잔을 부딪치며 외치는 '위하여'가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로마서 14장 8절을 보면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는 구절이 있다.

 

참 묘한 말씀이다. 누구를 위해 살라는 말씀인지 헷갈린다. 내 삶이 주님의 삶이라니, 날 위해 죽지도, 살지도 말라니 참 이상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바오로 사도 말씀인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코린 3,16)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당신의 최고 사랑을 잘 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위해, 하느님 영이 함께하는 이웃을 위해 사신 분이다. 고달픈 상황에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늘 기도드리며 자유롭게, 정의롭게, 지혜롭게 사신 분이다.

 

다음 성경 구절은 예수님의 이러한 삶을 가장 잘 보여준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7).

 

목숨은 숨을 쉬는 행동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그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늘 양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베푸는 삶을 사셨다. 바로 예수님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고, 아무도 예수님 목숨을 빼앗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 이웃을 위해 목숨마저 바치신 예수님 사랑이 바로 최고 사랑이다. 그럼 우리도 그런 삶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나 반문해보자. 우리라고 하면 성직자, 수도자뿐 아니라 모든 신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려면 물론 용기가 필요하다. 믿음이 없는 이들 기준에서 삶의 우선순위는 '자신'이다. 내가 소유하고, 인정받고, 자신이 세상 중심이 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살아도 인간 욕심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이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유다.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도 이기적인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한숨을 쉬며 "당신 때문에 죽겠다"고 말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이들이 불행해 지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누구 것인지 다시 살펴보자. 우리는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을 때 "두 손으로 받고 고맙다고 말씀드려라"하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축복이기에 고마워하며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느님 것인데 우리가 마치 주인인 양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받은 삶이라는 선물을 내어주며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한다. 그럼 '내가 너무 손해 보는 거 아닌가? 바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맞다, 우리는 바보가 돼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스티커를 기억할 것이다. 김 추기경님도 그런 삶을 사셨기에 스스로를 '바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남의 눈에는 그냥 바보겠지만, 사실은 주님을 닮은 바보, 지혜로운 바보인 셈이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 건 중요하지 않다.

 

여기 초 한자루가 있다. 이 초는 나의 삶이고 초에 붙은 불은 바로 주님의 빛이다. 촛불을 이웃에게 전한다고 내가 손해를 보겠는가? 내 촛불은 여전히 밝고 옆 촛불이 더해져 주변이 더 밝아진다. 하느님 빛을 전하면 전할수록 우리 삶은 더 환한 기쁨을 얻게 된다.

 

하느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살도록 하자. 우리는 바로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받은 그리스도인이다. 주님을 따라 사는 삶, 그것이 최고로 멋지게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평화신문, 2011년 4월 10일, 두봉 주교, 정리=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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