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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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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9 ㅣ No.296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말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계시 헌장을 읽으면 꼭 성탄 구유가 떠오릅니다. 사실, 친구처럼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이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때는 바로 성탄 밤입니다. 계시헌장에서도 말하듯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완성이고 절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님의 말씀” 서론의 끝부분(5항)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말씀의 육화를 선포하는 요한 복음 서문을 이 문헌 전체의 기본 틀로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 서문에서 요한 복음서의 본문만이 아니라 그 복음을 쓴 제자, 바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도 주목한다는 점은 의미가 깊습니다. “말씀”이라는 것을 넓은 의미로 이해할 때 거기에는 성경에 글로 적힌 말씀만이 아니라 주님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모든 체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그분과의 만남과 사귐이 모두 포함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은 그분의 사랑을 체험했고 그 체험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 사람이며,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말”만이 아니라 그 친교를 전달해 주고 우리가 그 친교를 함께 누리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됩니다.

 

 

말씀으로 신호를 보내시는 하느님

 

문헌의 제1부는 “하느님의 말씀(Verbum Dei)”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습니다. 계시 헌장의 본래 제목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Verbum Dei)”이었지요. 사실 문헌 제1부는 많은 부분에서 계시헌장을 따르면서 여러 측면에서 더 깊이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계시헌장이나 그 이전의 신학에서처럼 계시라는 추상적 단어에서 시작해서 자연적 계시와 초자연적 계시 등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말씀”, “대화”라는 인격적인 개념들에서 시작하고 또한 영원으로부터 계신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제1부는 처음부터 계시헌장을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고 말하는 계시헌장 2항은, 계시에 대해 말할 때에 언제나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번역문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원문의 첫 단어는 하느님께서 “…하기를 원하셨다, …하고 싶으셨다.”는 것인데,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 한 단어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의무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원의에 따라, 당신의 선하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으셨습니다. 아주 인간적으로 표현해서, 우리와 사귀고 싶으셔서 우리가 당신을 알아챌 때까지 계속 우리를 향해서 신호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 모든 신호를 말씀이라고 한다면, “말씀”이라는 표현은 근본적으로는 공통된 의미를 지니면서도 여러 가지로 사용된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7항에서는 이를 지칭하여, “하느님 말씀”이라는 표현이 유비적으로 사용된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2008년에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마치면서 회의 참석자들이 발표한 메시지를 참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메시지는 모두 4장으로 구성되는데, 자세한 내용을 지금 다루지는 않겠지만 각 장의 제목만 보아도 여기에서 “말씀”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메시지 1장 제목은 “말씀의 소리 : 계시”이고, 2장은 “말씀의 얼굴 : 예수 그리스도”, 3장은 “말씀의 집 : 교회”, 4장은 “말씀의 길 : 선교”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이렇게 넓은 의미로 이해할 때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넓은 의미의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신다는 점입니다. 요한 복음서의 서문에서 말하듯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한처음부터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은 이 세상 만물을 지탱하는 기초

 

먼저는 “자연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시편 19,2)라는 시편 구절이 떠오르지요. 작은 기계 하나도 사람이 잘 고안해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어떤 목적에 맞게 작동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전체가 하느님의 계획 없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별들이 일정하게 하늘을 도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지혜가 새겨져 있음을 알아봅니다.

 

이 세상의 만물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기에, 온 우주에는 하느님의 자취가 깃들어 있고 우리는 이성적인 능력으로도 그것을 알아보고 적어도 어느 정도는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서 13장에서는,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웅대함을 보면서도 그것을 만드신 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지탄합니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지혜 13,9)

 

인간 역시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더구나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만들어졌기에 이성과 자유를 지니고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선물을 주셨다는 것을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으나,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업적을 알아보고 또한 하느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새겨주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창조 안에서 유일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로 시작된 하느님과 세상의 사귐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어집니다.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면서 인간에게 끊임없이 구원의 손길을 보내시며, 또한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게 하심으로써 인간을 이끄십니다.

 

결국, 말씀은 바로 이 세상의 만물을 지탱하는 기초입니다. 세상 만물과 인간이, 그리고 그 인간의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말씀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튼튼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이 됩니다. 말씀에 귀를 막고 이 세상의 온갖 것들로 자기 자신을 가득 채우려고 할 때 인간은 결국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선로를 벗어난 기차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듯이, 말씀으로 창조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벗어나서는 제 길을 갈 수 없고 완성에 이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하느님의 말씀”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안에 축약됩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이제 말씀은 목소리만이 아니라 얼굴을 지니신 분이 되십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이미 시간과 공간의 제한된 조건 안에 사는 인간과 사귀려고, 그 인간에게 맞추어 당신 자신을 낮추셨던 영원하신 하느님은, 이제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분(1요한 1,1-4), 우리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작은 아기가 되시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좀 더 숙고가 필요한 부분은, “말씀”의 이러한 다양하고 유비적인 의미를 요한 복음서 서문과 연결시켜 볼 때, 한편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과거에 다른 방식들로 우리에게 계시되어 오다가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계시되었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처음부터 계신 아버지의 말씀이셨다는 것의 연관,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는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에 대한 이해입니다.

 

문헌에서는 말씀의 그리스도론적 차원을 이전보다 더 강하게 부각시키려고 하는데, 현대에 이르러 구약과 신약의 관계, 예언과 성취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이러한 주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 대학교와 가톨릭 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 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1년 2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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