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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선교와 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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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8 ㅣ No.61

선교와 소공동체

 

 

1. 선교의 개념 이해

 

우리는 흔히 선교의 의미를 좁은 의미로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예비신자 입교와 신자 수 증가를 선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가운데 하나인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만민에게?가 발표된 이후 수많은 교회 문헌에 따르면, 선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파견하신다는 근본적 신론에 근거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사업을 제자들에게 맡기셨고 온 세상의 모든 백성을 구원의 역사에 초대하셨다. 교회는 바로 구원의 성사로서 제자들의 선교활동을 그 근본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의 모든 성사적 신비와 사목은 선교라는 커다란 신적 본질에 속해있다. 

 

선교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과거의 선교에 대한 교회의 반성이 내재하는 방법이다. 곧 과거 남미 역사에서 무리하게 진행되었던 일부 선교활동과 근대의 외적 선교 틀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시작한다. 이는 바로 ‘신앙의 증거(Testimonianza della fede)’라는 개념이다. 곧 비그리스도인에게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적 사랑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는 지극히 거룩한 예수님의 삶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선교의 첩경임을 제시한다. 이것을 통해, 믿지 않는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참구원이 살아 숨쉬며 진리를 담고 있는 종교로 각인하여 아직 적극적 입교는 하지 않더라도 심성적 입교의 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둘째, 타문화와 타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그리스도교가 이타적 문화와 종교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곧 선교지의 문화와 종교로 친근감을 드러내어 문화적 뿌리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문화와 종교가 그 지역의 지켜야 할 제도와 관습으로 뿌리내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불교와 유교는 한국의 종교가 아니었으나 역사적 시간과 문화적 수용을 통해서 이 종교들은 우리의 사상과 전통이 되었다. 그리스도교도 이와 같이 한국 문화와 종교로 이해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토착화는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그리스도교의 핵심적 교리와 전통적 사상과 문화, 관습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고, 선교지의 문화와 관습 역시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학문적 접근과 함께 실천적 접근 역시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교와 전통문화를 분리하면서 생활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교를 우리의 문화이며 관습으로 인식하고 있는지의 차이이다. 토착화는 바로 후자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토착화를 위해 학문적, 전례적, 실천적 노력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 

 

셋째, 교회 내에서의 구체적 선교방법이다. ‘신앙의 증거’와 ‘토착화’를 통해서 이루어낸 ‘선교 환경’을 교회가 입교성사와 사목을 통해 실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예비신자 교리와 그 방법, 강론과 전례 그리고 더 나아가 사목이라는 커다란 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① 예비신자를 효과적으로 교육하고 신앙의 진리에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시키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② 사목자의 강론을 통해 말씀과 전통의 진리를 신자들에게 투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삶과 진리의 관계를 선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 전례는 신비의 구체적 이해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이는 성사적 표징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신자들은 전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와 그 사랑을 결정적으로 만나야 한다. ④ 마지막으로 교회의 직무, 곧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을 통하여 평신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이룩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넷째, 백성들의 삶의 자리에 대한 검토이다. 곧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대한 집중적 탐구를 통해서 가난과 억압 그리고 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교의 한 방법이 된다. ‘인간 개발 증진(Promozione umana)’은 특별히 가난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대륙에 필요한 과제이다. 사회적 환경의 개선, 인간 복지 개발과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과 배려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정의를 실천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한 민중의 인식이 한층 고조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구체적 입교로 이어지는 데 한몫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1970년과 1980년대의 신자 수가 증가한 원인은 바로 복음의 사회적 측면의 실현에 있었다. 

 

결론적으로 선교는 인간 구원을 위한 교회의 모든 활동이라고 보면 타당하다. 인간과 함께 숨쉬면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교회의 내외적 움직임이 바로 선교이다.

 

 

2. 소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세계 각 지역의 특징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는 소공동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특별히 대도시의 교회 공동체들이 교회 생활에 참여하고 교회의 가르침에서 힘을 얻으며 사목자들과 일치함으로써 육성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집단화되고 익명화되어 있는 대도시에서 얻을 수 없는 인간적 상호 유대와 하느님 공경과 믿음에 대한 깊은 연구, 형제적 사랑의 실천, 기도생활, 종교적, 영성적인 문제에 관하여 ‘소공동체’와 ‘기초 공동체’가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제시한다. 

 

또한 유럽과 북미에서 시작된 ‘원초적 공동체(Communitates primordiales)’라고 일컬어지는 공동체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 공동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위해 조직된 공동체로서 교회의 제도를 거부하고 복음에 따라서만 사는 카리스마적 공동체로서 교회에 대립적 자세를 취한다. 이것은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소공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소공동체가 갖는 사목적 체험의 긍정성을 확인한다. 곧 복음화와 양성의 도구, 그리고 사회 안에 복음의 세포처럼 침투하여 활동하기에 교회 핵심의 표징이라고 여기면서 선교방법 중에 이 소공동체를 강조한다. 

 

소공동체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륙별로 발전하였다. 특히 남미에서는 ‘인간 개발 증진’, 기도와 복음화에 몰두하면서 기초 공동체가 태동하였다. 거대화되는 본당을 지역과 공동체 중심으로 분산하여, 익명의 신자가 없도록 친교의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와 모든 형제와 함께 공동체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공동체의 지도자, 교리교사, 선교사 등등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대두된다. 성소 부족과 가난과 부정의(不正義) 현상은 교회와 사회에서 평신도에게 많은 책임감을 갖게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로서 ‘개발과 발전’을 도모하며, 복음화의 세포이며 신자간의 일치와 친교의 장으로서 복음에 접근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직된 공동체가 바로 남미에서 수행되고 있는 ‘기초 공동체’, ‘소공동체’의 핵심이다. 

 

아프리카 대륙 역시 남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국의 공소처럼 평신도 지도자가 교회의 여러 직무를 수행한 것에서 출발했다. 마을과 부족(il clan)을 바탕으로 날마다 그들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하느님 말씀을 배우며, 기도를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사회적 문제와 인간 개발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본당과 항상 연결된 이 그룹은 아프리카 가족 공동체의 모델 안에 작용하는 일치와 상호 연대 정신에 영향을 받는다. 특별히 신흥 종교와 ‘독립 교회(chiese indipendenti)’의 확산을 막고 평신도의 지도를 받아 신앙을 증진하고 신자들을 양성하는 장소로 규정된다. 한마디로 신앙과 삶 사이의 통합과 그리스도교가 아프리카화하는 것을 이끌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아시아 대륙에는 세계의 유수 종교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비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복음 선포와 증거, 가톨릭 신자와 타종교인들과의 대화와 토착화 그리고 영성적 탐구 등이 사목적 지표로 인식된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아시아에서는 바로 소공동체를 제시한다. 

 

먼저 일본에서는 신앙의 유지를 위해 넓은 지역 안에 퍼져있는 신자들을 작은 그룹에 일치 시키려는 목적에 따라서, 친목, 기도, 양성, 사도적 동기를 그들의 삶에 맞춘다. 따라서 본당 사목자와 일치하는 평신도를 통해서 가정 방문과 예비신자에 대한 배려, 사도직의 동기를 풍성히 하며 가난한 가족 돕기를 조직화한다. 

 

둘째, 파키스탄의 노력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소수인 가톨릭은 촌락에 넓게 퍼져있는 신자들의 만남과 접촉을 가능하게 하고 영성적 지지를 주며 다양한 봉사와 평신도 직무를 발전시키면서 이슬람과 대화의 동기를 유발시킨다.

 

셋째, 필리핀에서 공동체의 중심은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거기에는 성령의 은사의 활용, 기도 성찬례가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함께 하느님 말씀을 듣고 매일 그들의 삶 안에서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타인에게도 똑같이 선포하려 한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의 『아시아 교회의 삶』이라는 문헌 안에서는 대화의 장소이며, 아시아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장소로서 소공동체가 강조된다.

 

 

3. 소공동체에서 구현된 선교

 

우리는 이제 소공동체 개념 안에서 선교적 틀을 조명해 보자. 선교적 지평 안에서 소공동체는 최우선적으로 그리스도께 회개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증거의 삶, 말씀 선포, 예비신자, 마지막으로 세례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 신자와 공동체는 그리스도 신앙의 성숙과 그리스도교적 삶을 심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전례적 의미로서 기도와 성가, 전례 봉사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에 따른 평신도 양성이 필요하다. 

 

영적 성숙의 도구로서 인간적 문제점을 같이 나누며, 영혼과 마음의 일치를 이루는 장소로서 성숙하여 모든 분열, 곧 사회적 차별과 인종주의,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하며 일치의 교회를 체험하게 한다. 또한 공동체의 외적인 복음화의 상황으로서 복음을 각 문화 안에 육화시키는 것이다. 곧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심화하며 그리스도교로 흡수할 수 있는 실천적 접근과, 나와 이웃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정의에 바탕을 둔 변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실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데 그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리하여 하느님 현존이 모든 공동체 구성원과 믿지 않는 자에게도 체험되어 모든 백성을 그리스도교에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 

 

선교의 큰 틀 안에서의 사목적 개념 중에서 우리는 첫째, 초대교회의 원초적 사목의 틀을 소공동체에서 발견한다. 곧 본당과 지역교회 안에 사목자와 일치하여 형제적 사랑, 공동체 기도, 하느님 말씀의 경청을 통하여 교회 최초의 세포조직으로서 역할을 한다. 이것은 이기적 고립과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하지만 각 공동체와 상호 일치와 사목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 소공동체는 교회의 살아있는 체험을 느끼게 한다. 주님의 말씀을 함께 듣고 기도하며 성체를 나누고 생생한 일치의 체험을 하면서 평신도 직무와 다양한 봉사의 증진과 각 개인을 통해 교회에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셋째, 소공동체는 평생 그리스도인 양성의 장소이다. 신자들의 만남 안에서 매일의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여 주님의 생생한 체험을 구체화하고 묵상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와 연대, 협동, 학습, 참여를 실현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도적 역할을 사회와 교회 안에 실천한다. 

 

사실 소공동체의 모든 활동은 선교적이다. 이는 마치 교회가 선교적이라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소공동체는 교회 선교의 최초의 세포적 실현이며, 구체적 삶의 현장을 그리스도교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 한국적 상황 안에서 소공동체와 대안적 모델

 

한국교회는 10년 전부터 소공동체를 통해 비대해진 본당을 현장 안에서 살아 숨쉬게 하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가져왔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1)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다른 대륙과 나라들은 가족, 촌락 그리고 부족이라는 단위 개념의 공동체가 이미 형성된 상태에서 소공동체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후진국이라 일컬어지는 가난한 나라를 중심으로 소공동체가 태동하여 발전한 이유의 근저에는 그 사회의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경제적 불균형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자리한다. 또한 이러한 복음의 사회적 측면뿐만 아니라 영성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이 가족과 촌락이라는 친교적 틀 안에 녹아 내려간 것이 특징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사항은, 다른 나라와 대륙의 소공동체는 주로 몇몇 성직자와 신자들 중심으로 시작하여 확산된 반면에 우리나라의 소공동체는 교계에서부터 출발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가족과 친족 공동체가 핵가족과 개인 중심으로 변화되었다. 더욱이 자녀 교육과 경제적 이유로 가족간의 만남도 쉽지 않은 상황이고 보니, 가족이라는 친교 공동체의 개념이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또한 높은 이혼율로 가족의 개념까지 파괴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이 이 같은 시대적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 선진국의 역사적 발전 안에서 이미 예견된 현상이다. 계몽주의 이후부터는 인간 각 개인이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급격한 서구화를 이룬 한국이 이러한 사상적, 역사적 흐름을 쉽게 수용했으리라는 것은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적 소공동체의 구조는 이를 수입한 대륙, 곧 남미나 아프리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 인식 안에서, 기존의 단체 중심의 한국의 본당 구조는 다른 나라의 교회와는 달리 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한국적 상황에 맞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소공동체의 토착화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가족과 촌락 중심의 소공동체가 대안이 될 수 없으면, 인위적인 구역(반)과 같이 지역적으로 구획하지 말고 본당 안에 있는 수많은 단체를 소공동체로 엮어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본당 안에는 레지오 마리애, 울뜨레야, M.E., 기도 모임 등등 신자의 특성에 맞는 단체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단체들은 사실 각각 모임의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 최종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성원의 친교, 기도와 전례라면, 소공동체의 개념과 접목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각 단체의 특성을 살리면서 소공동체의 선교사목적 개념을 실현하면 가능하리라 본다. 

 

예를 들어, 레지오 마리애는 마리아를 중심에 놓고 묵주 기도와 활동을 그 목적으로 하는 신심단체이다. 우리나라 소공동체적 틀인 말씀을 듣고, 학습하며, 기도하고, 함께 전례에 참여하며, 이웃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그들의 활동사항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심화된 그들의 신앙을 바탕으로 복음화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 선포와 더 구체적인 예비신자 관리와 세례성사 그리고 그 이후의 관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면 성공하리라 본다. 본당의 모든 단체를 이렇게 소공동체화한다면 기존의 단체가 활성화되며 소공동체의 여러 특성들을 그 안에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구역(반) 모임은 소공동체의 지도자 모임뿐 아니라 교회의 또 다른 단체적 조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구역(반)의 구조 안에 소공동체를 영성적, 선교적 틀로 이해하면서 이것을 본당의 한 단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구역(반)장들이 소공동체 모임을 갖기 전에 그들 자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선교적 모델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레지오 마리애 주회처럼 구역장이 중심이 되어 반장들과 함께 말씀을 듣고,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말씀을 전파하고, 예비신자들과 함께 교리의 여정에 참여하며, 교회의 모든 사목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각 구역(반)원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단체적 조직처럼 운영하여 약 2주에 한 번씩,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씩 실천하는 것이다. 반원들은 단체에 입단하는 과정을 밟아 그 자격이 주어지고 소속감이 생겨 그리스도를 삶에서 체험하고, 복음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셋째, 한국사회는 빠르게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고, 공히 사이버 시대라고 칭할 정도로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개인의 여가생활을 공동으로 즐기는 모임, 곧 조기 축구회, 테니스회, 등산회 같은 동호회가 교회 안에서도 생기고 있다. 이러한 동호회를 소공동체의 특성을 살려 말씀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고, 사회적 상황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전례와 복음의 전령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맞게 온라인을 통한 소공동체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평신도 지도자가 ‘싸이 월드’에 하나의 방을 만들거나 홈페이지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들을 나누고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나가며 궁극적으로 복음화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제시하는 소공동체의 모델은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상황 안에 토착화되어 있는 본당의 구조 틀을 잘 활용한다면, 그 본질인 선교적 영성적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의 세포인 소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는 복음화의 산실이 되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구체적 삶에서 고백하면서 한국 사회와 문화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사목, 2005년 10월호, 양해룡(서울대교구 청담동본당 보좌신부,통합사목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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