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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 기부 - 서로 형제애를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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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26 ㅣ No.1260

[경향 돋보기 -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 기부 : 서로 형제애를 느낄 수 있도록



카리타스의 역할

기부란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도우려고 돈이나 물건을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을 말한다. 기부문화 또는 나눔문화는 우리 사회가 ‘집단’이 아닌 ‘공동체’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활성화에 따라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드러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2013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34.6%가 기부를 한 경험이 있고, 48.4%가 앞으로 기부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형편이 어려워 기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도 60.9%나 되었다. 또한 응답자의 54.2%가 우리나라에서 기부문화가 확산되려면 사회 지도층과 부유층의 모범적 기부가 늘어나야 한다고 응답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나누려는 사람들보다 우리 사회와 세계 곳곳의 재해재난과 내전, 환경파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형제자매의 수가 더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법정 모금단체뿐만 아니라, 많은 비정부조직(NGO), 비영리단체(NPO), 시민사회단체, 복지기관 등이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대부분 각 분야의 사업을 수행하면서 자원봉사와 후원을 장려하고 교육하며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관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나, 어떠한 방법으로 후원자를 늘려가며 활동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기부자들 또한 어떤 태도로 기부를 생활화하여 어떠한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톨릭교회에는 인권, 환경, 국제개발, 생명 등의 분야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이 있다. 작게는 한 교구 안에, 크게는 교황청 기구로서 ‘카리타스’가 있다.

1897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독일 카리타스가 설립된 뒤, 유럽 각국에 카리타스가 설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선구호 사업을 하던 각국 카리타스는 교황청의 권고로 연합체를 형성하였으며, 회원 기구가 전세계적으로 사랑 실천과 사회정의 구현에 헌신하도록 ‘국제가톨릭자선협의회’를 출범하였다. 1957년에는 ‘국제 카리타스(Caritas Internationalis)’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165개국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인도적 긴급구호와 국제개발 사업, 각국의 사회사목을 수행하고 있다.

독일의 한 도시에서 시작된 카리타스가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의 관할기구가 되었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카리타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타내주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교회의 사랑 실천이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교회의 사명인 복음선포의 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마땅히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회칙에서 사랑 실천은 기부, 자원봉사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사랑 실천은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긴급한 요구와 특수한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무조건적 응답을 해야 한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일시적인 요구만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헌신하여 그들이 풍부한 인간애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16항, 31항 참조).

이 회칙은 카리타스가 기구로서 어떤 자세를 갖추고, 어떠한 역량을 키워야 하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사랑 실천은 좋은 일 그 이상의 것이며, 어느 누구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신자에게 강조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서울 카리타스)에는 여러 위원회들과 함께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있다. 운동본부는 1989년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면서 신앙 실천운동을 펼치려고 각 교구에 만들어졌다. 세계성체대회가 끝난 뒤, 운동본부는 교구 사정에 따라 지속되거나 없어졌다.

서울대교구 운동본부는 세계성체대회 때부터 펼쳐오던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지금도 생명운동(장기기증,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모집, 헌혈, 환우 지원)과 국제개발협력사업(인도적 지원, 개발, 지구 시민교육), 자살 예방사업, 그리고 나눔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운동과 사업을 하면서 경험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헌미헌금 운동

프랑스인으로 한국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보낸 자료와 다블뤼 안 주교의 비망록, 편지, 보고서 등을 중심으로 1874년에 「한국 천주교회사」를 출판한 달레 신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당시는 무역이 성행하지 못하고, 영농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기근이 들면 일반 백성들은 식량부족으로 부황증이 생기고 굶어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천주교 교우촌에서는 나눔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생활하였기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자 운동본부는 각 가정에서 식사를 준비할 때 신앙의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예수님의 몫과 가난한 이웃의 몫으로 일부를 나누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여러 본당이 5월과 9월에 실시하는 헌미헌금 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 나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모집

백혈병 환우들이 마지막 치료로 선택하는 조혈모세포(혈액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세포) 이식에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증자와 환우의 유전자가 일치해야 한다. 많은 백혈병 환우가 자신과 맞는 기증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를 모집하는 데 운동본부는 대학교의 가톨릭 동아리와 연계하여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기증 희망에 동참하는 이들과 많은 학우를 모으려는 동아리 봉사자들은 홍보가 끝난 뒤 자신의 작은 수고와 노력으로 한 생명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한다. 또한 생명의 가치와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생애 첫 기부

2008년 어느 날 운동본부에 할머니 한 분이 아픈 아이를 위해 사용해 달라며 손주의 돌잔치 때 받은 반지를 기부하였다. 이때부터 운동본부는 ‘생애 첫 기부’라는 이름으로 나눔운동을 펼쳤고, 해마다 조금씩 기부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부모가 앞으로 자신의 자녀들이 나누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하고 있다. 이 기금은 백혈병이나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에게 또는 지구촌 빈곤퇴치 사업에 지원하고 있다. 자신의 자녀가 병으로 고통 받고 있으면서 해마다 아이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부모도 있다. 이 부모의 소원은 자녀가 빨리 완쾌되어 운동본부에 직접 와서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나눔에 참여하는 이들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다. 이들은 나눔이라는 가치를 자신들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고 싶어 한다.


재능 기부(번역 봉사자)

최근 운동본부는 지구 시민교육 교재를 펴내려고 해외 자료를 많이 번역하였다. 많은 양의 자료를 번역하려고 재능 기부자들을 모집하여, 열 명의 봉사자들이 번역을 하여 완성하였다. 재능 기부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마련한 자리에서 갓난아이를 둔 봉사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번역 자료가 지구 시민교육 교재가 되어, 제 아이가 학교에서 이 교재로 교육받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설레었어요. 그래서 더 꼼꼼히 번역하게 되었죠.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참여하고 싶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한 나눔이면서 동시에 자녀세대를 위한 나눔임을 느꼈던 것이다.


모금, 가치, 교육

운동본부는 지난 5월, 아프리카 세 개 나라(케냐, 브룬디, 베냉)의 현장을 방문하였다. 그 가운데 베냉의 아보메 카리타스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영양상태를 개선하고자 빵 공장을 짓는데 운동본부가 지원하였고, 아보메 카리타스는 그곳을 목적에 맞게 운영하는 역할을 맡았다.

회의 중에 아보메 카리타스 담당신부는 운동본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물었다. 이에 운동본부는 많은 후원자들의 기부로 운영된다고 답하면서 ‘생애 첫 기부’를 좋은 사례로 대답하였다. 담당신부는 놀라움과 부러움을 드러내며 좋은 사례를 알려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곧바로 직원들에게 ‘생애 첫 기부’와 같은 프로그램을 시행하자고 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운동본부의 목표를 말씀드렸다. “기부금을 많이 모으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나눔에 대한 인식과 교육, 그리고 나눔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담당신부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을 실천하려면 많은 이들의 봉사와 기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행사적인 나눔은 금방 식어버린다. 지속적인 나눔이 되려면 그 일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며, 인간애, 곧 함께 살아가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기부자들은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내가 도와준 기관 또는 사업이 어떠한 과정에 있는지, 어떠한 가치 또는 성과를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의 기부와 희생, 사랑을 교회 또는 기관이 어떻게 전했는지 그래서 수혜자들과 그 주변 환경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교회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또한 더 크게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가치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와 모든 기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마음으로 기부하는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4년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를 통하여, 전 세계 모든 분야에 팽배해 가는 ‘무관심의 세계화’에서 벗어나려면 형제애를 증진시켜 사회적 유대를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형제애를 증진시키는 다른 형태가 ? 그럼으로써 빈곤을 물리치는 ? 남아있는데 이는 다른 모든 형태의 형제애 증진에 바탕이 된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여유가 있어도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며, 자신의 부를 나눔으로써 다른 이들과 형제적 친교를 이루려는 삶의 태도가 바로 ‘초연함’입니다. 이 초연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그리고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는데 기본이 됩니다”(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번역 참조).

교황님이 강조하셨듯이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기부하는지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눔의 출발점이 어디인지에 따라 우리는 풍성한 사랑의 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어가고 있다. 능력과 시간, 감정 등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있으며, 삶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영성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과 앞에서 짧게나마 소개한 운동본부의 나눔 이야기처럼, 많은 사람이 서로에게 인간애와 형제애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에 우리 교회는 사랑 실천의 영성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최형규 미카엘 - 서울대교구 신부. 2002년 사제품을 받고,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8월호, 최형규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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