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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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화] 토착화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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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109

토착화란 무엇인가?

 

 

이끔말

 

'토착화'란 용어를 살펴보고 토착화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아가 구약성서에서 선교의 토착화 흔적과 미래 토착화의 방향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토착화'의 의미

 

토착화(土着化)는 "어떤 제도나 풍습 따위가 완전히 뿌리를 내려 그곳에 맞게 동화됨, 또는 동화되게 함"(1994년도 개정판 동아 새 국어사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동화되는 수동적인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동화되도록 하는 능동적 현상'입니다. 전자의 경우로 동물의 몸 빛깔이 그 주변의 자연적 특성에 맞게 변화되는 현상 즉 '보호색'(保護色)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먹이사슬의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보호받기 위한 변화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토착화는 수동적 의미 보다는 능동적 측면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교 신학이나 전례생활 등을 우리 전통과 문화의 특성에 맞도록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가자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토착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만날 때 충돌하여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겠고 한 편이 다른 편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은 앞으로 나아가게 마련입니다. 바람직한 토착화 작업은 그와 같이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2. 토착화의 바탕

 

그리스도교의 경우 모든 토착화의 출발점과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육화(肉化,Incarnatio)는 그리스도 신학의 원리이기에 그리스도교 토착화의 바탕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외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그 신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자신의 뿌리이며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쪽으로 발전해간다면 또한 그런 방향으로 토착화된다면 이는 올바른 의미의 토착화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하느님을 캐는데서 출발합니다. 하느님은 근본적으로 신비의 존재입니다. 믿음 또한 신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마치 우리가 미사(Missa) 절정에 이르러 '신앙의 신비여!' 하고 외치듯이 인간의 머리와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해 낼 수는 없는 신비의 세계에 속하는 하느님을 믿고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논리적으로 묘사하고 선포하는 일을 해냅니다. 아마도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끝까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하느님이기에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유다땅, 유대인의 문화에 속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토착화 작업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과 문화에 예속되어 오셨음을 전제하고 볼 때, 그분은 어떤 특수한 전통과 문화를 가진 한 민족에게 새롭게 등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 한 민족에게는 우리네 전통과 문화에 걸맞도록 선포되고 뿌리내려야 합니다. 그러한 작업은 누가 합니까?

 

 

3. 토착화의 주체

 

토착화 작업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곧 그리스도교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토착화의 주체는 교회 지도자와 신자들입니다. 토착화는 신학자, 공동체 지도자는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의 과제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우리 민족 안에 깊이 뿌리내려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도록 할 사명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있습니다. 토착화가 신학자나 공동체 지도자를 중심으로 시작될 수도 있으며 평신도를 중심으로 시작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토착화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가 바로 그 좋은 예이겠습니다. 우리 보다 경제적 사정이 훨씬 어려운 필리핀이나 인도와 같은 나라의 경우도 질적으로나 양적을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연구소와 교육기관들이 있음을 감안할 때 보다 분발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4. 유대교 구원관 및 신앙의 토착화 측면

 

유대교는 긴 세월을 거쳐 형성되고 발전되어왔습니다. 유대교 구원관 역시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한 예로 예언자 발람은 이방인이었기에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야훼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이었습니다. (민수 22-24장; 여호 13,22; 신명 23,5-6). 이와 같은 현상은 신약성서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베드 2,15-16; 묵시 2,12-14). 특히 유대교의 경우 이방인 구원 문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250-150년 사이에 히브리말로 된 구약성서가 그리스말로 번역됩니다. 이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에집트 등지에 흩어져 사는 '디이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외국인들까지도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겠습니다. 그때는 이미 구약 후기이므로 그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구약의 야훼신앙이 정착되는 데는 긴 역사적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유일신 야웨신앙이 토착화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페니키아 여인을 왕비로 맞이한 아합왕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페니키아 여인 이세벨은 고향으로부터 잡신숭배 사상과 신앙행위까지 이스라엘에 유입해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예언자 엘리아가 등장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엘리야는 까르멜 산위에서 250명의 바알신 예언자를 죽여버립니다. (1열왕 17,19장). 이스라엘에 유일신 야웨신앙이 정착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투쟁이 거듭되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5. 성서의 토착화

 

성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inspiratio) 기록된 책임을 교회는 밝히고 있습니다. 성서 저자들의 특성과 능력을 다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른 저술로 보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토착화'라는 말 아래 저는 크게 '성서본문'과 '번역작업' 등 두 가지 측면을 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약성서는 물론 신약성서 역시 단숨에 이루어진 작품이 아닙니다. 신약성서만해도 기원후 50년경부터 120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원본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원래 저자가 처음에 썼던 원본 자체는 전혀 전해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베껴쓴 사본들입니다. 이들 사본들을 모으고 비교하여 어떤 것이 본래의 원문에 가까운 것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번역작업은 각 나라언어로 또 각 시대에 맞게 늘 새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마치 각 나라말 사전이 시대에 따라 새롭게 편찬되듯이 성서번역 또한 그렇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를 저는 성서번역의 토착화라 칭하고 싶습니다.

 

 

6. 맺음말 : 한국 가톨릭의 토착화 방향

 

한편으로는 지고(至高)의 하느님을 인간에게 깨우쳐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앞서야 할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지속적으로 세상에 전파하는 일은 교회의 근본 사명입니다. 이는 우리 문화와 전통에 걸맞게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한맺힌 민족'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역사를 볼 때 우리 못지않게 더욱 한맺힌 민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정도 차이는 있지만 위로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처지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무언가 깨어진 인간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토착화의 근본방향은 위로와 사랑, 치유와 일치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회보 뿌리내림, 1998년 12월호, 신교선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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