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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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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30 ㅣ No.297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영감’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던 제자들보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알아듣지요?” 작년 이맘때 제가 구약입문 수업시간에 했던 질문입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학생들이 멀뚱멀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요한 16,12-13)라고 하셨는데, 성령께서 오셔서 2천 년 동안이나 일하셨잖아요.” 이것이 설명이었습니다.

 

성령께서 헛수고를 하셨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분명 제자들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알아들을 것입니다. 그럴 것 같지요?

 

앞으로 여러 달 동안 우리는 이렇게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단계로, 성령의 작용으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또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이 생겨나기에 이른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성령의 ‘영감’

 

지난달에 우리는 창조질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던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통하여 그분 안에 집약되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육화가 바로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

 

그리고 인간적인 계획에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삶은 성령에 의하여 인도됩니다. 세례 때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밝혀주신 분이 성령이시고, 예수님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시면서 약속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고,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부어주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께서 제자들을, 교회를 인도하시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의 첫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두려워서 문을 닫아걸고 있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는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2,4)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느님은, 이제 성령의 힘으로 제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교회 안에 머무르게 되고, 마침내는 그 성령께서 말씀이 기록되도록 성경 저자들을 감도하시기에 이릅니다.

 

여기에서 작용하는 것이 성령의 ‘영감’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영감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설명해 본다면, 인간의 언어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표현되도록 하시는 성령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좀 더 쉽게 말한다면, 인간의 언어는 껍데기고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은 알맹이입니다.

 

사람이 그냥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고 또 자기 생각대로 기록을 하면, 그 말이라는 ‘껍데기’ 안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담기겠지요. 그런데 인간이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그 안에 하느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담기도록 작용하는 것이 성령의 영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껍데기’라는 말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껍데기는 소중한 알맹이를 담고 있기에 소중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도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껍데기 속에서 알맹이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

 

동화책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읽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겠지요. 자연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우리는 토끼가 거북이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분명 진리를 담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알아듣습니다.

 

성경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에게 작용하신 성령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시는 것을 표현하고자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전달하려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듯이 말입니다.

 

이와 연관된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성경이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은 정말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요. 그런데 갈릴레이 시대에 성경 말씀을 근거로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하늘이 움직여야 한다고 여겼던 이들은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껍데기’ 속에서 ‘알맹이’를 올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동화책에서 “토끼가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라고 말할 때에, 이 안에 진리가 들어있다고 해서 토끼가 거북이에게 실제로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윤리를 가르치고 철학을 가르치기 이전에 동물들이 나오는 동화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그것이 어린아이가 알아듣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 한 줄로 줄인다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걸 알아듣게 하려고 창세기의 그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보게 하시고, 구약의 그 복잡한(?) 역사를 보게 하십니다. 알아듣게 한 줄로 말씀하시지 왜 이렇게 어렵게 말씀하시냐고요? 우리가 알아듣게 하려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어야

 

이렇게 해서 다시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로 돌아갑니다. 이번에는 말씀을 듣고 읽고 알아듣는 제자들을 떠올립니다. 말씀의 육화가, 또 말씀이 기록되는 것이 성령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그 말씀을 알아듣는 것 역시 제자들에게 부어진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지요.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요한 14,26 참조).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알아듣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의 전통과 아무런 관계가 없이, 마치 이 세상에서 최초로 성경 말씀을 읽는 사람처럼 성경을 읽는다면 그는 그 말씀을 많이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보다 많이 알아들을 수도 없을 것이고, 말씀을 잘못 알아들을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성령이 활동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보다 앞서 2천 년 동안 그 말씀을 보존하고 읽어온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은 외떨어져 존재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기록되게 하신 성령과 함께 교회 안에서 전수되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황님의 말씀이 아니라 제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다 보니, 하면 할수록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성령이 그렇듯이, 영감이 그렇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이 다 깨달아 알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없는 것임을 절감합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수고가 소중하게 보입니다. 누구 한 사람이 마치 구구단을 배우듯이 성경을 다 배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큰 신비의 한 조각이라도 조금 더 알아들으려는 노력이 더욱 값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 맡겨졌고 교회 안에서 전수됩니다. 그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성령께서 비추시고, 이를 통하여 그는 전승의 주체가 됩니다. 그 자신이, 교회 안에서 물려받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교회에 다시 전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성경을 펴고 읽을 때에 성령께서 나를 비추시어 그 말씀을 한 조각이나마 더 알아듣게 하신다면, 이를 통하여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어제보다 더 많이 알아듣고 주님을 조금 더 알게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은 이렇게 소중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시편 27,8-9).

 

* 안소근 실비아 -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1년 3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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