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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성경을 읽는 교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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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22 ㅣ No.299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성경을 읽는 교회 공동체

 

 

여러 해 전에, 요한 묵시록을 40년 동안 가르치시고 정년퇴임을 하시던 신부님께서 마지막으로 학생들과 함께 드린 미사에서 강론 때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로마에서 교수신부님들 정년은 75세이고 학생들은 보통 30대였으니, 신부님 보시기에는 아직도 한참 ‘어렸을’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가장 작은 부분 하나하나라도 있는 힘을 다 들여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를 거라고, 그러나 나중에는 알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로 평생을 보내신 분의 말씀이었기에 그만큼 더 진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번 달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

 

지난해에 “주님의 말씀”을 처음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 “하느님의 말씀” 사용되었던 표현이지만, 유난히 많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문헌 전체에서는, 교회의 신앙 안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교회의 신앙을 전제하지 않고도 성경을 읽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은 성경의 고대 히브리어를 알려고 오직 그 언어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역사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성경을 글자 그대로 역사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옛 시대의 자료를 얻으려고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성경은 고대의 다른 문헌들과 특별히 구분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읽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사실 성경에서 어떤 책들은 문학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그 책을 ‘성경’으로서, 곧 거룩한 경전으로서 읽는 것은 아닙니다. 경전이 무엇인지 사전적으로 정의한다면 우리의 신앙에 기준이 되는 책들이지요. 앞에서 말한 여러 방법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그때에 성경은 신앙의 규범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경전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 책들이 경전이 되고 신앙의 기준이 되는 것은 3월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것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신앙으로

 

그렇다면 성경을 성경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올바로 읽고 알아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전제해야 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신앙입니다. 성경은 신앙의 책이고 신앙 안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서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 편에서는 때로 의구심을 품기도 합니다. 신앙을 전제한다면 성경을 객관적으로 해석해 낼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자 여러분은 그런 경우를 별로 접해보지 않으셨을 수 있겠지만, 더 좁게 말해서 주석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신학적’이라는 말조차 비학문적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와 같은 학년이었던 한 학생이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쓰겠다고 했더니, 지도교수가 “그건 좀 신학적이지?”라고 말했답니다. 부적절하다는 뜻이지요. 지금 교황님은 이러한 경향을 염두에 두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성경 해석이 교회의 신앙을 전제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이 처음 생겨난 것부터가 교회의 신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생겨나려면 먼저 하느님 편에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셔야 했는데, 이것부터가 인간과 사귀려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역사에서 비롯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회의 첫 순간이 기록된 것은 신앙 안에서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어떤 사건들이 있었다고 할 때,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성령의 비추심에 따라 그 사건들을 하느님의 계시로 알아보고 그 신앙 안에서 그것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록 안에는 신앙이 녹아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그에 대한 신앙, 인간적인 요소들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계시가 서로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성경을 신앙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고 해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교황님은 “하느님의 말씀” 12항을 인용하시면서,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며, 주석가들, 신학자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전체는 사실 그대로 인간의 말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에 다가가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인용하신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문장을 “하느님의 말씀”에서 처음 읽었던 때에 그 말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성령은 성경을 썼던 저자들에게만 작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성경을 읽는 우리를 비추어주시는 것도 성령이시고, 그 성령이 없이는 성경은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방식으로 성경을 들여다보고 찔러보고 한다 해도 말입니다.

 

교황님은 계속해서, “하느님의 말씀”에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경 해석을 위하여 제시했던 세 가지 원칙을 상기시키십니다. 그것은 첫째, 성경 전체의 일체성을 고려하면서 본문을 해석할 것, 둘째, 전체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을 고려할 것, 셋째, 신앙의 유비를 고려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의 세 가지 원칙

 

이 세 가지 원칙 가운데 “전체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을 고려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이란 바로 교회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의 일체성”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려면, 성경의 한 구절을 문맥에서 떼어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주 단적으로 말해서, 이단으로 빠지는 지름길이지요.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할 때에도, 앞뒤 이야기를 듣지 않고 한 마디만 가지고 오해를 하면 바로 싸움이 나지요. 같은 원리이겠습니다.

 

사실 성 이레네오가 “신앙의 유비”라는 원칙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습니다. “성경 전체의 일체성”이라는 것이 성경의 한 부분을 해석할 때에 성경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면, “신앙의 유비”라는 것은 성경 해석이 벗어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기준 내지 범위를 한정해 주는 것이 교회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를 들어 성경의 한 구절을 알아들으려면, 먼저 바로 앞뒤의 문맥을 고려해야 하고 다음으로 동심원처럼 점점 범위를 넓혀가게 됩니다. 그 책 전체의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서, 창세기 등) 문맥을 고려해야 하며, 구약과 신약 전체를, 또 교회의 전승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가장 넓은 범위가 교회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신앙이 성경에 규범을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신앙이 성경의 계시를 따라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못 해석할 위험이 없지 않다고 한다면 여기에 울타리를 쳐줄 수 있는 것이 교회의 신앙입니다. 성 이레네오는 영지주의자들에 맞서서 이러한 원칙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성경의 몇몇 단락만을 떼어내어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사적인 신앙이 아니고, 성령도 내 안에서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신앙이라는 강 속에서 층층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 성경이라면, 그 안에서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을 가장 깊이 이해하기 위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1년 5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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