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공소10: 춘천교구 샘밭본당 발산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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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3-22 ㅣ No.935

[공소(公所)] (10) 춘천교구 샘밭본당 발산공소


1866년 병인박해 피해 숨어든 ‘옹기점말’

 

 

춘천교구 샘밭본당 발산공소는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들어온 신자들이 옹기를 굽고 교우촌을 이루며 생활하면서 시작됐다. 발산공소 전경.

 

 

춘천이 맥국의 중심지였음은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와 삼국유사는 춘천을 ‘우수주(牛首州)’, ‘우두주(牛頭州)’, ‘삭주(朔州)’, ‘춘주(春州)’라 한다. 한자음 우수주, 우두주는 우리말로 ‘소머리 고을’이다. 소머리는 쇠머리, 솟을모이, 솟을 뫼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머리는 마리ㆍ마니와 같은 말뿌리에서 나왔다. 소머리는 ‘으뜸’을 뜻한다. 백두산을 머리산, 두악(頭嶽)이라 하고, 마니산을 머리산이라 불렀던 것도 같은 연유다. 삭주 또한 시작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아울러 고려 시대 때부터 부른 춘주는 우리말 ‘봄 고을’로 봄은 계절의 으뜸이다. 춘천은 조선 태종 13년 때부터 불린 이름이다.

 

 

돌이 된 며느리와 롯의 아내

 

춘천시 신북읍 발산1리에 맥국의 도읍지가 있었다고 한다. 발산1리 마을 한가운데로 뻗어있는 양지바른 산이 있는데 바리처럼 생겼다 해서 ‘발산’(鉢山)이라 한다. 발산은 밝산에서 유래한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밝은 산이라는 뜻이다. 이 산 아래에 맥국 왕궁이 있었다 해서 ‘맥국산’, ‘왕대산’(王臺山)이라고도 한다.

 

- 발산공소는 고조선에서 떨어져 나와 건국한 맥국의 왕궁이 있던 바리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제대와 독경대, 십자가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는 발산공소 제단.

 

 

발산에는 누구나 한번은 들었을법한 ‘아침 못’ 전설이 내려온다. 발산 버들개(柳浦果)에 한 부자가 살았다. 이 부자는 아주 인색했다. 어느 날 고승이 이 집에 시주를 왔다. 고약하기로 소문난 부자는 곡식은커녕 쇠똥을 퍼서 시주 자루에 붓고 스님을 내쫓았다. 이 광경을 본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고 고승에게 용서를 빌었다. 고승은 며느리에게 “시주님은 아무 소리 마시고 저를 따라오시오. 지금 하늘이 시아버지를 벌주려 하니 시주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저를 따라오시오”라고 말했다. 얼마 후 폭우가 쏟아져 부잣집은 간데없고 그 자리에 큰 못이 생겼다. 며느리는 두고 온 시아버지가 걱정되어 뒤돌아 보자 그 즉시 돌이 되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부잣집이 하루아침에 못이 되었다 해서 ‘아침 못’, 한자로 ‘조연’(朝淵)이라 불렀다고 한다. 창세기 노아의 방주와 롯의 아내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 발산공소 신자들은 성직자를 2명이나 배출할 만큼 열성적이다. 공소 입구에 둔 전례복들과 기도서, 지난해 부활초가 정겹다.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는 공소

 

맥국의 도읍지 터, 춘천시 신북읍 맥국길 346-12 현지에 춘천교구 샘밭본당 발산공소가 있다. 이곳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해진 것은 1866년 병인박해 때이다.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신자들이 옹기를 구워 팔면서 교우촌을 일구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발산 교우촌을 ‘옹기점말’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김유용(필립보) 신부가 1920년 10월 20일 뮈텔 주교에게 쓴 「춘천 지역 전체 보고서」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해 9월 18일 사제품을 받은 김 신부는 풍수원본당 보좌로 임명된 후 곧바로 춘천 지방을 분할 받아 곰실공소에서 사목을 시작했다. 김 신부는 뮈텔 주교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춘천ㆍ홍천ㆍ화천ㆍ양구ㆍ인제ㆍ가평 6개 군에 16개 공소가 있고 신자 수는 1000여 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신부는 “성당에 잘 나오고 교리공부를 착실히 하는 착한 신자들이 많고, 구교우 수는 많지 않지만, 열정적이고 순수하다”고 보고했다. 

 

1920년대 신자들은 염정필(시몬) 회장 집에서 공소 예절을 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다 산삼을 캐서 땅을 구입해 부자가 된 원 로렌조씨가 지금 공소에서 100~200m 뒤쪽의 땅을 기증해 공소를 지어 봉헌했다. 이 공소는 6ㆍ25 전쟁 때 안타깝게도 소실됐다. 당시 김성문(시몬) 공소 회장이 지금의 공소 땅을 마련해 미군들이 지원한 건축자재로 신자들이 공소를 지었다고 한다.

 

“착하고 열정적이고 순수하다”는 평가처럼 발산공소 신자들은 한결같이 열심이다. 정성 어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공소를 가꾸고 있다. 발산공소는 춘천교구 맹석철(바오로, 성사전담) 신부와 고 허동선(마태오) 신부를 배출했다.

 

지금 공소는 패널식 건물로 새단장했다. 외벽에 돌붙임해 신앙의 굳건함을 표현할 뿐 아니라 공소 건물의 중량감과 견고함, 안정감을 더했다. 내부는 공기가 상큼할 정도로 깔끔하다. 신자들의 각자 자리가 있는지 마치 수도원과 신학교 성당처럼 자리마다 기도서와 책들이 놓여있다. 제단에는 제대와 십자가, 독경대가 설치돼 있고, 십자가 양옆으로 예수 성심상과 파티마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발산공소는 누구나 찾아와서 기도하고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열려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3월 19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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