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교육ㅣ심리ㅣ상담

[교육] 명동 사순절 특강1: 십자가, 수난의 신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30 ㅣ No.118

[명동주교좌본당 사순특강] (1) 십자가! 수난의 신비


십자가와 여정, 주님과 일치의 길

 

 

사순절을 맞아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 사순절 특강을 4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주는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민병덕 신부의 '십자가! 수난의 신비'이다. △ 14일자 거룩함의 추구(송봉모 신부, 예수회) △ 21일자 예수님을 따르는 나눔의 삶(곽승룡 신부, 대전가톨릭대 대학원장) △ 28일자 사순절과 진정한 휴식(김진태 신부, 가톨릭교리신학원장)으로 이어진다.

 

 

예수님께서 못 박혀 돌아가신 십자가를 구원의 신비라고 말한다. 구원의 신비를 이해하려면 우선 '구원'과 '신비'의 의미에 대해 알아야 한다.

 

신비(mystery)는 희랍어 뮈스테리온(musterion)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이는 작전이라는 뜻이다. 전쟁 중에는 작전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모든 상황이 끝나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알 수 있는 것이 신비다. 즉 신비는 모든 것이 다 이뤄졌을 때 명명백백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라틴어 레뎀시오(redemtio)에서 유래한 구원(redemption)은 '다시 일으켜 세우다' '원상복귀'라는 의미다. 원상복귀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인간은 창조됐을 때부터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 완전하기에 천지창조는 이미 그때 완성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며 속죄하셨기에 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었다.

 

구원의 신비를 설명하려면 '이미'와 '아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천지창조 때 인간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세상을 사는 우리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기에 아직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을 떠난 이에게는 구원이 이미 이뤄졌지만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는 아직 구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십자가 구원의 신비다.

 

십자가 신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천지창조와 십자가 사이의 관련성이다. 인간의 원죄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이뤄진 같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넘치는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시며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 아담의 원죄로 인해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아담)이 "당신이 짝지어주신 여인이 저를 죄짓게 했다" 며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을 만들어준 하느님께 돌렸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이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거리가 생기게 됐다.

 

이 사건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연결된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졌던 관계를 십자가로 이어놓으셨다. 이것을 화해성사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통교(通交)가 이뤄졌고 관계가 새롭게 정립됐다.

 

신망애(信望愛)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향주삼덕(向主三德)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일치가 이뤄진다.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 하느님 없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 한다면 이는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이며 원죄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하느님 뜻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원죄의 속성이다.

 

순명, 청빈, 정결을 복음적권고라고 한다. 정결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어드리는 것이며 순명은 자신을 비우고 양보하는 것이다. 순명과 정결은 자기중심 삶에서 하느님중심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나를 내어놓기에 일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된 일치의 여정은 십자가와 함께 하는 여정이다. 일치는 서로의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이뤄질 수 있으며 차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일치를 위한 과정이다. 하느님께 온전한 신앙과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 삶이 십자가의 길이며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삶, 차이를 받아들이고 함께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님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십자가에 매달렸 듯 우리 삶에도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기도한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완성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고통도 주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다. 고통이야 말로 구원의 신비라고 할 수 있으며 고통을 받아들이는 삶이 사순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7일, 민병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정리=임영선 기자]



2,74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