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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교회, 말씀께서 머무시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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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3 ㅣ No.302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교회, 말씀께서 머무시는 집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집니다. 누가 넘겨드렸는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초점은 두루마리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두루마리를 받으신 예수님은 그 두루마리를 펴시고 하느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당신을 보내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십니다. 그러고는 두루마리를 말아 다시 돌려주시고 그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십니다.

 

그 후에 두루마리는 말린 채로 다시 보관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어느 순간에라도 다시 펼쳐질 것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기쁜 소식은 이미 이루어진 말씀으로 다시 선포될 것입니다. 그 말씀 안에, 계시의 충만이시며 예언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말씀

 

이제 우리는 “주님의 말씀” 제2부를 읽기 시작합니다. 제1부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었고 우리는 거기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며 말을 걸어오시는지, 그 말씀에 인간은 어떻게 응답하고 그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제2부의 제목은 “교회 안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오신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계속해서 머물러 계시고, 그 말씀이 머무시는 집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그 ‘말씀’을 받아들인 이들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되었습니다(요한 복음 서문). 이들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이들이고 다시 하느님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들의 모습 안에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교황님은, “교회의 참 얼굴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 사이에 천막을 치러 오신(요한 1,14 참조)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수용으로 규정되는 실재”(50항)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있듯이, 주님의 말씀으로 태어난 교회는 그 말씀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이제는 교회가 그 말씀을 살아내야 하고 말씀의 현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유다교에서 크게 중시하는 ‘셔키나’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데(50항), ‘셔키나’라는 말은 본래 히브리어로 ‘머물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 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에 머무시는 그 현존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생각한다면 천막 성소 또는 성전에 하느님의 영광이 머무시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탈출기에서는 이집트를 떠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천막 성소를 지었다는 것이 나오고, 그 마지막에 주님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으며 이스라엘 자손들은 구름으로 신비롭게 표현되는 그 영광, 주님의 현존에 따라 나아가고 멈춰서고 했다고 말합니다. 백성이 있는 그곳에 주님께서 머무르십니다. 백성이 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셔키나는 그곳에 함께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천막을 치심”(요한 1,14)으로써, 그리고 그 말씀이교회 안에 머물러 계심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인용하신 구절은 아니지만 에제 37,27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으나, 당신 말씀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고 머무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됩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나야

 

말씀께서 머무시는 집인 교회에게는 세상 안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은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하고 물으며 온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을 재촉합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은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 안에 살아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안에서 이러한 증인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은 교회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계시헌장 첫머리의 표현을 빌리면 “하느님의 말씀을 경건히 듣고 신실하게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는 여러 가지 일이 주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주님의 성령을 받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일을 지속하는 것으로서 모두 소중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정확히 말해서 말씀 안에서 살아계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그 모든 선포와 증거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도 알지 못할뿐더러 그것을 행할 동기나 힘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주님을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되어가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그 말씀을 지니고 세상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례, 말씀을 만나는 첫 번째 장소

 

교회가 자신의 주님의 말씀을 만나는 첫번째 장소가 전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기 위하여, 우리는 오히려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현존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성체 현존 역시 인간의 말로 형언할 수 없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신비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주님의 말씀 안에 주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은 쉽게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교황님께서 인용하신 예로니모 성인의 말대로(56항), 우리는 성체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하고 - 그리고 물론, 절대로 버려지지 않게 하고 - 그 한 조각이라도 소중히 여기는데, 전례 때에 성경을 읽는다 해도 그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경우는 흔합니다. 그 자리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 돌아가셨지만 성체성사를 통해서 지금도 그 유일한 제사를 재현하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말씀이 전례 안에서 선포될 때에 그것은 단순히 과거에 한 번 하신 말씀을 다시 인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구절은 이사야서,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기원전 5세기의 제3이사야에게 속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은 2천 년 전 나자렛의 회당에서만 벌어졌던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그 시대에만 의미가 있는 일회적인 말씀으로 들어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전례 때에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말씀의 성사적 성격을 보고 그 말씀이 “오늘” 이루어짐을 알아본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읽고 풀이해 주신 방식을 충실히 따르는”(52항)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당신에게서 성취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 성경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의 한 시대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오늘”의 말씀으로 선포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 해석을 다룰 때에 계속 강조해 온 바이지만, 성경의 말씀을 과거 한 순간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그 말씀을 죽이는 행위, 살아있는 말씀을 냉동시키고 박제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성경을 읽으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례 때에 선포되는 말씀이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말씀하시는 바를 이루시는 말씀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다음 달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현존을 만나는 여러 길들을 따라가 볼 것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1년 8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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