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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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은퇴한 후에도 잘 나가던 과거에서 못 벗어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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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26 ㅣ No.312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36)

 

 

질문) 은퇴한 후에도 ‘잘 나가던’ 과거에서 못 벗어나는 아버지

 

저희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볼 때 한 때 ‘잘 나갔던’ 분입니다. 그런데 은퇴하신지 벌써 10여 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최고라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질 못하십니다. 매일같이 본인이 ‘잘 나갈 때’의 무용담을 늘어놓으시고, 가족들의 듣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삐딱하면 불호령을 치십니다. 저도 나름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성실히 일하는 가장인데, 가족들 앞에서 ‘고작 그거냐’는 식의 말씀을 마구 해대십니다. 식당이나 어디 상점 등을 가도 주변 사람들을 그야말로 종 부리듯 하십니다. 다른 취미 등을 찾으시게 도와드리려 해도 대화가 안 됩니다. 저는 아버지가 상담을 좀 받으셨으면 하는데, 도통 가족들 말을 듣질 않으시네요.

 

 

답변) 가족 위해 희생한 아버지 존경 표하며 먼저 다가가길

 

이미 느끼셨겠지만 아버지는 아직 10년 전의 은퇴 시점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신 분입니다. 아버지로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사회적 지위를 은퇴라는 방식으로 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충격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신 것이지요. 직업에서의 성공에서만 오로지 인생의 의미를 찾으신 분들은 일을 하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송두리째 없어져 버린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가 가족의 행복과 안일이었는데, 막상 일을 할 수 없는 시점이 되면서 가족들이 자신의 희생에 대해 별로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는 것에 매우 실망할 수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는 가장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족은 반대로 자신의 욕심과 허세 때문에 가족을 소홀히 한 것이라 믿을 수 있습니다. 물론 양 쪽의 입장이 모두 다 조금씩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은퇴 이후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면 본인이나 가족들 모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어합니다. 함께 나눈 추억도 없고 가사일을 분담한 기억도 없기 때문에 가장은 겉돌 수밖에 없고, 나머지 식구들은 갑자기 집안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은퇴한 가장들의 존재감 때문에 답답해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상황에 닥쳐도 아버지, 남편이 갖고 있는 권위를 가족 구성원들이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지만, 점점 더 그런 전통은 없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살고 있는 젊은 세대나, 이제는 여성들도 목소리를 내고 살아야 한다는 진보적인 주부들이 무조건 아버지나 남편의 비위를 맞추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장들은 점점 더 화가 나고, 한 편으로는 불안해지기도 해서 더욱 권위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또 그나마 자신이 그동안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은 것은 돈을 벌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느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가족들은 한편으로 아버지에 대한 아무런 애착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이런 아버지의 속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아버지에게 취미나 종교 생활을 하라는 식의 조언은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제 자식이나 아내에게 명령이나 받는 힘없는 노인네가 되었다는 생각에 밖으로는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나머지 가족들로서는 이런 아버지가 답답하겠지만, 일단은 아버지의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표현을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랑을 꺼내며 듣는 시간보다 아마 먼저 아버지의 과거를 먼저 자랑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식당 등에서 다른 사람들을 종부리듯 하려 하기 전에, 먼저 아버지를 아주 많이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제스처를 한다면 그런 어색한 순간도 미리 예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하는 식으로 먼저 선수를 친다면 다른 가족들은 역시 아들이 겸손하고 아버지를 잘 위한다고 귀하를 더욱 칭찬할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있으면서 아버지를 비난하고 꺼려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아마 다른 모든 관계에서도 아주 큰 자신감이 생기실 것입니다.

 

※ 질문 보내실 곳 : <우편> 04707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학로 16(홍익동)   sangdam@catimes.kr

 

[가톨릭신문, 2016년 4월 24일, 이나미(리드비나 ·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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