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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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말씀을 만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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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303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말씀을 만나는 자리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라고 했습니다. 체험한 일이 있으신지요? 그걸 체험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말씀을 만나는 첫 번째 자리

 

말씀께서 머무시는 집인 교회 안에서, 말씀을 만나는 첫 번째 자리는 전례입니다. 지난달에 설명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전례 때의 말씀은 2천 년, 3천 년 전의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선포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사 때의 독서와 강론, 화해의 성사와 병자 도유, 시간전례와 축복예식 등의 여러 순간들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독서와 복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미사 때에 독서와 복음을 읽고 나서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읽은 그 말씀이 독서자의 말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자리에서 말씀하신 것임을 밝혀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그 말씀을 하신 분을 향하여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라고 환호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미사 때에 독서자를 보면 독서 전후에 읽을 말씀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특별한 미사 때에는 복음서에 분향을 하는 것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독서대 위의 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독서자의 목소리에도 현존하십니다. 그러니 독서자의 영예는 얼마나 큰 것이며 얼마나 정성껏 그 말씀을 읽어야 하는지 명백하지요. 그러기에 독서자는 성경과 전례를 공부하고 기술적으로도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58항). 하느님의 말씀이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듣는 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강론입니다. 교황님은 강론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데(59항), 사실 그것은 신자들이 더 잘 압니다. 살아있는 말씀인지 냉동되고 박제된 말씀인지, 듣는 이들은 직감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강론자 안에 살아있는 것이고 그는 말씀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배우들이 수녀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 제가 보면 - 너무나 어색하지요. 꼭 수도복을 잘못 만들어서만은 아닙니다. 진짜가 아니고, 자신이 그 신분에 동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살아있지 않다면 그 강론은 강론 ‘흉내’이고 ‘연기’입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듯이, “설교자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강론의 중심이 되셔야 하는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임이 신자들에게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미사 이외의 전례

 

미사 이외의 다른 전례들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만납니다. 화해성사의 경우, 하느님의 말씀은 성사를 준비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적인 윤리 규범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사판 서기관이 요시야 임금 앞에서 율법서를 읽을 때에 임금은 옷을 찢었고(2열왕 22장), 에즈라가 유배에서 돌아온 백성들 앞에서 율법을 읽어주었을 때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습니다”(느헤 8장). 자신들이 그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때로 복음의 말씀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복음의 요구는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자신이 범한 죄 앞에서 좌절하여 무너지지 않고 하느님께 그 죄를 고백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심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루카 15장).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고 화해를 바라시는 분이 하느님 아버지이심을 말씀 안에서 발견할 수 있기에 그 말씀이 사람을 회개시키는 힘을 지니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교황님보다 말이 더 많아서, ‘주님의 말씀’을 읽으신 분들은 “이런 얘기 없었는데….”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황님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침들을 많이 말씀하시는데 해설에서는 그런 부분은 생략하고 기본 바탕을 더 깔고 있는 것인데, 교황님은 이걸 다 전제하고 쓰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맞지요, 교황님?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시간전례(성무일도)입니다. 시간전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또한 시편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무일도를 바칠 때,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하느님께 끊임없이 찬미의 제사를 바친다. … 이 기도는 참으로 신랑에게 이야기하는 신부의 목소리이며, 또한 자기 몸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이다”(성무일도 총지침).

 

 

교회의 삶

 

이제는 전례만이 아니라 교회의 삶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만나는 자리를 생각해 봅니다. 물론 첫째는 각자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인 계시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없이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교회의 사목활동도 성경으로 감도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다른 사목 형태들과 병립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사목 전체를 감도하게 하는 ‘성경사목’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말은 “성경사목”보다 “성서적인 사목, 성경에 기초한 사목”이라고 번역했으면 더 좋았겠네요.(번역자인 제 탓입니다.)

 

성서학과 신학이 따로 있고 신학 중에 성서신학도 있지만 성경 연구가 “신학 연구의 영혼”(계시헌장, 24항)이고 모든 신학의 원천이 되듯이, 교회의 사목활동이 교회가 하느님을 만나고 복음적 가치를 살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성경에 기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리교육에서 성경의 인물들과 사건들, 주요 구절들에 친숙해지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서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만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말씀에 대한 체험

 

글 첫머리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라는 것을 체험해 보셨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핵심은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학생으로 처음 구약 입문을 배울 때 첫 시간에 신부님께서 시편 34편의 앞부분을 읽어주시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9절, 최민순 신부님 번역)에서 멈추시고는,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것이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를 보고 맛들이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제가 구약 입문 강의를 시작할 때에 똑같이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그때 그 신부님의 말씀도 다시 학생 분들에게 전해줍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례에서, 사목에서, 개인적으로, 교리교육에서 성경을 읽는 것은 모두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들이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강론자, 사목자, 교리교육자, 성서사도직에 종사하는 이들 안에 말씀의 생명력을 만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이들 안에서 그 말씀이 용처럼 살아서 꿈틀거리고 다니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백이면 백, 그것은 먼저 그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 말씀이 저를 뒤집어 놓는 체험이 있었을 때입니다.

 

또한 이와 함께, 말씀이 살아있는 것은 우리 삶 안에서이기에, 말씀을 듣는 이들과 삶의 체험을 공유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이 참 어렵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준비가 될 때에 듣는 이들도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들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께서 살아계시기를 바랍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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