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회]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각자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0-30 ㅣ No.304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각자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저희 수도회가 우리나라에서 그리 크지 않다 보니 모든 수녀님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또 대부분의 수녀님들은 한 번은 같이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늘 엇갈리게 서로 다른 집에 살았던 수녀님들을 새로 만나 함께 살게 되면서, 정말 뜻밖이다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또 제가 예상하는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당황하게 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만남이, 그 사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떤 생활 신분으로 살아가든 신앙인의 삶 안에서 주님의 말씀이 바탕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계시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보았듯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고 인간과 사귀시는 것이 바로 그 말씀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젖어야

 

이 기본 원칙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삶 안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실현됩니다.

 

문헌은 먼저 주교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매우 인상적인 것은 문헌에서 인용하고 있는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교는 마치 어머니의 태와 같은 말씀 ‘안에서’ 살고 말씀의 보호를 받으며 말씀에서 자양분을 얻어야 합니다.”

 

이 말씀의 앞 문맥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사실 이것은 주교들만이 아니라 모든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교회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주교들을 포함한 사제들에게 이 점이 강조되는 것은 교회의 교도권 행사에서 그들이 맡고 있는 역할 때문일 것입니다. 교도권, 곧 가르치는 직무는 새로운 가르침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 말씀을 듣지 않고는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성직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젖어야 한다는 것과 성서학자가 학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꼭 동일한 것은 아니지요. 물론 그 둘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성서학자가 목자들을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성서학자의 역할은 목자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제가 신부님들을 도와드릴 것 같지요?) 성서학자가 목자보다 숫자가 훨씬 적지요. 성서학자들이 신자들 모두에게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목자들은 성서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것도 공부해야합니다. (역전! 이제 제가 신부님들께 압력을 넣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런 공부가 없다면 계시를 전달해야 할 교도권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가르침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제가 강론을 들을 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근본적인 문제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강론이 학문적인 주석은 아니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저것은 정말 하느님의 말씀은 한 가닥 구실로 내세울 뿐 자기 상상을 말하고 있다고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의 본뜻을 너무 멀리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 상황에 따라서는 강론 중에 질문을 하시면 빗나가기 전에 일부러 얼른 대답을 하는데, 잘 안 들리시는 모양입니다 ….

 

 

성경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신학생 양성에 관련하여 문헌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공부는 기도와 함께 가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오늘도 또 제가 교황님보다 말이 많아지는 것 같은데, 그래도 신학생들에 대한 경험을 하나 들려드릴까요? 어느 날 1교시에 히브리어 수업을 하는데, 아침부터 마당을 쓸고 들어온 학생들이 모두 졸았습니다. 이건 히브리어 문법을 연계형이 어떻고 절대형이 어떻고 설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수업 시간이 20분 정도 남았을 때 제가 말을 멈추고, “예레미야서를 읽어줄까요, 아가를 읽어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웬일인지 모두들 한 목소리로 “아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약간은 뜻밖이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아가를 읽고 나서 썼던 편지 두 개를, 아가가 제 삶을 뒤집어놓았던 경험에 대한 남김 없는 고백을 학생들에게 읽어주었습니다. 졸던 학생들이 처음에는 ‘저 수녀가 무슨 소리를 하나?’ 하는 듯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무엇엔가 놀라고 있는 것이 보였고, 빨려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읽기를 마쳤을 때 학생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내가 제정신이었나 싶었습니다(경향잡지가 공적인 출판물이라 표현을 좀 삼가려고 했지만, 사실은 글자 그대로 내가 미쳤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너무 과감하게 제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아가, 사랑, 여성성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그것도 신학교에서. 제대로들 알아들었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이것이 바로 제가해야 할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이것, 말씀이 얼마나 강력하게 한 사람 안에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맛보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빚어지는 삶을 살아가기를 배워가기 바랍니다.

 

 

삶 전체로 말씀을 구현해야

 

다음으로 수도자들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결하시고 가난하시고 순종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은 하느님 말씀의 살아있는 주석이 됩니다.”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하여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그 말씀을 구현하는 것, 이것이 수도생활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수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수도자는 그것에 삶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평신도들의 삶 역시, 신자라는 신분을 살아내는 것은 여러 가지 가치관들 가운데에서 하느님 말씀에 따른 삶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기초를 둔 삶을 엮어가기 위한 방법들을 열거하시면서 교황님은 특별히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과 만나기 위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대해서 설명하시는데, 그 단계들을 보면 우리의 삶이 말씀에 의해 변모되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 성경 본문은 그 자체로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 질문이 없다면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막고 혼자서 말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인 묵상에서는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를 묻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것과도 연관됩니다. 죽은 글자로서 그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의 현재 안에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를 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단계인 기도에서는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무엇을 말씀드리는가?”를 묻습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는 분명 우리에게도 무엇인가 말씀드릴 것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인 관상에서는 “주님은 우리에게서 정신과 마음과 삶의 어떤 회개를 요구하시는가?”를 묻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전에 지니고 있던 인간적인 눈으로, 인간적인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각이 우리의 생각과 식별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독서는 행동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말씀 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났다면 그것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이라는 책을 알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알고, 그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빛을 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1년 10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



2,93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