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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마음이 머무는 피정: 제주 성 이시돌 피정의 집 - 자연 기도와 순례 쉼 하느님과 하나 됨, 성 이시돌 자연 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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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21 ㅣ No.834

[마음이 머무는 피정 - 제주 성 이시돌 피정의 집] 자연 기도와 순례 쉼 하느님과 하나 됨


성 이시돌 자연 피정

 

 

200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제주도는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자연을 가진 섬”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제주는 한때 유배지였고 가난과 절망의 땅이었으며, 제주도민 3만여 명이 희생된 4·3 당시에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깊은 아픔을 간직한 채 통곡하며 70년 세월을 보냈다.

 

원초적이고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는 아픈 기억과 슬픔을 보듬어 제주를 감성의 땅으로 만들었다. 2002년 생물권 보전 지역 지정, 2007년 세계 자연 유산 등재, 2010년 세계 지질 공원 인증, 2011년 세계 7대 자연 경관 선정 등으로 제주는 해마다 1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그 가운데 5000여 명이 성 이시돌 피정의 집의 ‘자연 피정’에 참여한다.

 

 

관광과 피정을 함께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산록남로 53, 성 이시돌 피정의 집은 한라산의 서쪽 중산간, 광활한 목초지가 있는 성 이시돌 목장 안에 있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자연 안에 머물며 기도할 수 있는 곳이다.

 

피정의 집에서는 세파에 시달린 이들이 하느님의 선물인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충분히 휴식하며 신앙을 추스를 수 있는 자연 피정을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2박 3일 또는 3박 4일 동안 낮에는 제주의 자연과 성지를 두루 살피고, 저녁에는 기도와 미사,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는 피정이다.

 

“제주도가 갈수록 관광지화되면서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데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피정을 생각했어요. 관광하고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자연도 보고 성지도 순례하며 미사도 봉헌하고 강의도 듣는 피정, 신앙이 깊지 않은 이도 부담이 없는 피정 말이지요.” 성 이시돌 공동체(재단법인 이시돌 농촌산업개발협회)이사장 이어돈 마이클 신부의 말이다.

 

자연 피정은 1년에 40여 차례 진행된다. 때때로 연말연시 피정이나 성지 순례 피정도 하고, 이해인 수녀와 함께 ‘시와 노래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는 눈꽃 피정’도 한다. 지난해에는 ‘바람의 딸 한비야와 함께 걷는 제주 한라산 둘레길 피정’도 진행했다.

 

지난 4월 2일부터 4일까지 진행한 자연 피정에는 부산(당감본당 바오로 성경 대학)과 광주(신정본당 모니카회), 서울은 물론 대구와 경기, 강원도에서 가족, 부부, 친구 또는 개인과 단체로 온 이들 114명이 함께했다.

 

 

첫날,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다

 

“제주가 지난 세월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참된 평화의 섬이 되게 하여 주소서!” ‘제주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기도문’을 함께 바치고, 사람 크기의 예술 작품으로 재현한 새미 은총의 동산에서 예수님의 삶을 묵상한다. 말의 밥그릇에서 태어나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 우리는 예수님의 몸으로 영적인 힘을 얻고 부모의 헌신으로 육적인 힘을 얻는다.

 

그러고 보니 이번 피정에는 유독 어르신이 많았다. 마지막 제주 여행이 될 수도 있는 이들은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며 미사마다 고이 접은 돈을 정성스레 봉투에 넣어 봉헌했다. 이들의 모습에서 제주의 해녀를 생각했다. 하늘과 바다의 상황이 어떠하든 날마다 먼 바다로 더 깊이 물질하는 그들을 지탱하는 힘은 가족이 아니었을까?

 

제주에서의 첫날 밤, 50여 개의 초가 밝히는 기도실에 모여 떼제 성가를 부른다. 주님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하느님과 화해하는 기도가 간절하다. “저희 부부를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죽는 날까지 주님을 섬기며 살게 하소서.” “홀로 주님을 믿고 살았습니다. 성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작은 밀알이 되고 싶습니다. 회개하는 시간을 허락하소서.” 말로 표현한 마음속의 기도는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기도가 되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시간이 된다.

 

 

둘째 날, 제주의 자연을 거닐다

 

“제주 하면 자연이잖아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거닐며 하느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는 시간이지요. 그 길에서 만나는 돌담과 동백꽃, 유채꽃은 자연스레 피정으로 이끌어 성찰하게 하죠. 저희는 꾸미지 않고 편안하게 잘 지내다 갈 수 있도록 준비만 해요. 바다, 하늘, 숲, 바람, 흙, 돌멩이 등 제주의 자연이 상처를 위로해 줄 거예요.” 자연 피정에 대한 피정의 집 원장 이 비르지니아 수녀의 설명이다.

 

자연 피정에서는 관광지를 가더라도 자연이 더 많이 보존된 곳을 찾아간다. 한라산 남쪽의 산록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내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상효원 수목원. 북쪽으로는 한라산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는 서귀포 바다를 향해 완만한 경사를 이룬 해발 300-400미터의 산록에 자리 잡고 있다. ‘25년간 준비해 온 제주 자연 그대로의 자생 식물 보고 곶자왈’이라는 소개에 걸맞게 제주 토종의 한란, 새우난과 같은 식물의 원생지일 뿐 아니라 수령 100년 이상 된 노거수와 상록 거목들이 밀집해 자란다.

 

섭지코지는 코지(곶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비죽 튀어나온 지형이다. 해안을 끼고 걷는 1.5km의 구간은 해안 절경과 흐드러지게 피어난 유채꽃이 어우러져 제주의 빼놓을 수 없는 풍광이 된다. 만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자라는 천연기념물 374호인 비자림은 단일 수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숲. 500년이 넘은 나무에만 부여하는 번호가 2870번이다. 1번 나무는 800년이 넘었다.

 

 

마지막 날, 제주의 성지를 순례하다

 

제주에는 모두 일곱 곳의 성지가 있다. 피정 중에는 정난주 마리아의 묘소인 대정 성지와, 김대건 신부가 귀국길에 탔던 라파엘호가 표착한 용수성지를 순례한다.

 

정난주 마리아는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장녀로 백서를 쓴 황사영의 부인이다. 1801년 박해 때 백서를 쓴 황사영이 체포되어 순교한 뒤 제주로 유배를 가 모슬포에서 37년 동안 신앙을 지키며 노비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김대건길(빛의 길)은 고산성당에서 시작해 세계 지질 공원인 수월봉과 용수성지를 거쳐 신창성당에 이르는 길이다. 기암절벽이 있는 한적한 해안을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피정을 마무리하는 파견 미사는 이시돌 목장 안 봉쇄 수녀원인 성 클라라 수도회 성당에서 수녀들과 같이 봉헌한다. 2층 성가대에서 울리는 맑고 투명한 성가 소리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피정은 늘 예기치 않은 선물을 줘요. 이번 피정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름과 넓은 목장, 한가하게 노니는 동물들, 가슴을 활짝 펴고 깊은숨을 들여 마실 수 있는 맑은 공기, 자연을 찬미하며 자비를 구하는 기도는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엠마오를 떠나는 제자들의 마음처럼 들뜨고 기쁜 피정이었습니다. 구름 모자를 쓴 한라산과 제주의 자연 풍광을 보며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신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소감을 나누는 이들의 표정이 밝다.

 

돌아가는 시간, 버스가 피정의 집을 떠날 때마다 직원들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것이 피정의 집의 전통이라더니 아쉬운 작별 인사가 길다. 목장에서 생산된 유기농 우유와 보리빵을 간식으로 받고 피정의 집을 떠난다. 맑은 자연과 온전한 평화가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기도하며….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휴가를 내 성 이시돌 피정의 집에 한번 가 보라. 그러면 거기 “ᄒᆞᆫ저옵서예!”(어서 오세요!) 하며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과 자연이 있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창조주 하느님의 오묘한 손길을 느끼며 일상에 지친 영육에 참된 쉼을 맛보게 해 주는 성 이시돌 피정의 집. 그곳에서 들려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자.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문의 : ☎064-796-4181 성 이시돌 피정의 집(www.isidore.or.kr)

 

[경향잡지, 2018년 5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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