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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나의 산티아고 - 왜 그 길을 걷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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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1-15 ㅣ No.1278

[영화칼럼] 영화 ‘나의 산티아고’ - 2016년 감독 줄리아 폰 하인츠


왜 그 길을 걷는가?

 

 

길은 시간이고 역사입니다. 누군가가 지나가고, 또 지나가야만 생깁니다. 길에는 그곳을 지나간 수많은 생명들의 삶과 시간이 스며있습니다. 길은 거기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길은 길로 이어져 가다 보면 다른 길과 만나고, 어디쯤에서는 작은 길이 큰길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런 ‘길 위의 날들’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길을 걷는 목적이 오로지 이동이라면, 걷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일지 모릅니다. 인간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힘인 두 다리보다는 얼마든지 효율적인 다른 수단이 있습니다. 편안히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갈증과 허기,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며 험한 산길을 걸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걸었습니다. <나의 산티아고>의 독일 인기 코미디언 하페는 800㎞의 산티아고 고행에 나섰고, <와일드>의 주인공인 미국 여성 작가 셰릴은 장장 4,285㎞의 아메리카 산악길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혼자 걸었습니다. 그들뿐만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었고, 또 걷고 있습니다.

 

과로로 쓰러진 하페에게 그것은 휴식도, 여행도 아닙니다. 순례자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세상의 어느 길을 선택하든 길은 걷는 자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하페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흘린 땀과 눈물, 환희와 절망이 만들고 지킨 멀고 험한 산티아고 길에서 그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발자취가 남은 성스러운 길은 어떤 약속도 하지 않은 채 가진 것부터 모두 버리라고 말합니다. 배낭에 들어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듯 욕심을 버리고, 생각을 버리고, 시간까지 버리라고. 앞서 그 길을 걸었던 브라질 소설가 코엘류도 “늘 우리를 이끌어주는 손이 있음을 믿고 매 순간 우리 시간을 온전히 내맡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회의와 고통과 눈물의 여정이 육체의 한계를 넘어 조금씩 믿음과 기쁨과 깨달음으로 변해갈 때 길은 나에게 살아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 순간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듯 하페는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는 그것을 “신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도 그와 같은 속도로 걷고, 헉헉대고, 쓰러지면서 하루하루를 함께 합니다. 빨강머리의 영국 여자 앤, 마음이 넉넉한 뉴질랜드 중년 여성 쉴라도 함께 만납니다. 영화가 이따금 담아낸 감탄을 자아낼만한 풍경 역시 눈이 아닌 마음에 담습니다.

 

길은 사유와 자유를 이어줍니다. 샛길을 어슬렁거려도, 가다가 멈춰서도, 가던 길을 되돌아와도, 길을 잃고 헤매도, 거기에는 성찰과 사색과 주님과의 대화가 있습니다. 영화와 책이 아무리 느리게 걷더라도 그것들을 오롯이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영상으로 지나가는 길, 글로 걷는 길보다는 느리고 힘들지만 직접 그 길을 걸으려 하는지 모릅니다. 저마다 인생이 다르듯 그 걸음 또한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의 버킷리스트에도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당연히 누릴 수 있다고 여겼던 것들조차 멀어지면서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후회는 늘 머뭇거림에서 오나 봅니다.

 

[2022년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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