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님과 함께 나를 파견하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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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0-09 ㅣ No.895

[레지오 영성] 성모님과 함께 나를 파견하시는 하느님

 

 

우리 각자는 자신의 고유한 개인성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성소는 나 자신과 이웃의 구원, 모든 피조물을 위한 공동선을 지향하고 있으며, 나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더 깊은 인격적인 사랑과 일치로 이끌어줍니다.

 

일찍이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는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불러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도 이처럼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파견하십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명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때론 우리는 예언자 요나처럼 멀리 도망치고 싶고, 이사야 예언자처럼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또는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는 이렇게 한없이 약하고 부족하고 죄스러운 존재이지만 그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고자 하시며, 또한 우리 천상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든든한 조력자요 길잡이가 되어 주십니다. 과연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아드님께로 이끌어주시는 탁월한 안내자요 중개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대로 기꺼이 성모님과 함께 파견받고자 합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오 10,16)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면서 냉정한 현실과 직면하고,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 용기 있게 세상 속으로 나아갑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삶과 사도직은 탄탄대로의 무난한 여정이 아닙니다. 거친 파도를 타고 넘어야 하며, 험난한 산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모험과 도전의 여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나의 삶이 무사안일하게 흘러가고 있다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한번 냉철하게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선포하기보다는 자신을 선포하는 일이 없도록 깨어 있어야

 

사도 바오로는 우리를 위하여 참 좋고 의미 깊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2코린토 3,5-10 참조)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선교사의 모범이신 바오로를 본받아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본당에서 종종 봉사자들 간에 생겨나는 알력들을 살펴보면, 다들 봉사하고자 하는 열성은 강하지만 위의 정체성이 불안정하여 쉽게 주객이 전도되고, 따라서 봉사를 하되 자신의 방식대로 자기 뜻을 관철하고자 하여 서로 충돌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진실로 레지오 단원들은 주님을 선포하기보다는 자신을 선포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겸손하게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주시려는 것”이라고 하시며 우리 인간의 약함과 강함을 함께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이 질그릇에 담긴 보물의 이미지는 비참하면서도 위대한 인간의 양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서지기 쉬운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엄청난 힘이 담겨 있으므로 니카라과의 혁명 시인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님은 “한 인간의 영혼은 온 우주보다도 위대하다.”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저도 한 사제로서 고백소에서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며 참회하는 한 교우를 만날 때에 그 영혼 안에 어떤 강함이 서려 있음을 느끼곤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인간의 이 엄청난 힘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강조하시면서 역설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그분으로 인하여 더욱 강해진 우리의 모습을 힘차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자신을 비우고 비워 오로지 하느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인 예수님과 더욱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기억하고(2티모테오 2,8), 예수님을 바라보면서(히브리 12,2 참조)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 개개인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은 다름 아닌 우리가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로마 8,29)이 되는 것이며, 모두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페소 4,13)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도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의 도구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의 꿈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며, 아버지와 당신 안에서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3) 우리가 모두 하나로서 당신과 일치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레위기에서(19,2)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고, 이제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해주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오 5,48)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참으로 놀라운 초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소중한 “하느님의 작품”(에페소 2,10)이며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토 2,15)

 

우리는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이렇게 놀라운 우리의 정체성을 살아내며 증거하도록 파견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수행하는 비결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선언한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자신을 비우고 겸손하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지금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를 물어야 하며, 레지오 단원들은 이에 더하여 ‘이 순간 성모님이라면 무엇을 하셨을까?’를 계속 물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의 마니피캇은 단순한 기쁨의 노래가 아닙니다. 한 여인의 마음속 깊이 잉태한 희망의 노래이며, 가난하고 굶주리고 약한 이들을 위한 복음의 노래이며,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경륜을 찬송하는 예언의 노래입니다. 성모님과 함께하는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성령으로 충만한 기쁨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0월호, 안정호 이시도르 신부(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이웃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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