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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악마를 무찌르는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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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38

[성미술 이야기] 악마를 무찌르는 미카엘

 

 

- '대천사 미카엘’, 파치노 디 보나 귀이다가, 1430년경, 43.8x32.2㎝, 브리티시 도서관, 런던.


- ‘악룡을 무찌르는 미카엘’, 노르망디 대가의 작품으로 추정, 1320년경, 30.7x2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빛이 어둠을, 선이 악을 이기다”

 

 

악마와 천사

 

악마는 어떻게 생겼을까? 실제로 악마를 본 사람은 없지만 화가들은 털북숭이에다 이마에 뿔이 나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꼬리에 뾰족한 독침을 달거나 눈동자가 고양이처럼 갈라진 악마도 있다. 이런 악마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괴물들과 비슷한 데가 많다.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요정들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판과 사티로스, 걸핏하면 싸움을 일삼는 켄타우로스, 달콤한 노래로 뱃꾼들을 유혹하는 시레네,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스핑크스들이 모두 사람과 짐승의 특징을 섞어놓은 중간적 존재들인데, 하나같이 위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천사는 어떤 존재일까? 천사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겔로스는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천사들도 여러 품계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느님을 시중하면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성서에도 천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천사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베풀까? 「좋은 위로의 말을 해주고」(즈가리야 1, 13 우리말 성서에는 하느님이 천사에게 말한 것처럼 번역되었으나 천사가 즈가리야에게 말한 것으로 읽어야 옳다), 「가는 길마다 지켜」(시편 91, 11) 주는 수호자와 안내자의 역할 말고도, 토비아스를 동행했던 라파엘,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고했던 가브리엘, 그리고 심판날 악룡을 무찌르는 미카엘이 대천사의 품계에 올라있다.

 

악마들도 처음에는 천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반란을 획책했다가 멀리 추방당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쫓겨난 거인족들이 땅속 깊숙한 틈새에 갇혀서 영원한 감옥살이를 하지만, 타락천사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어두운 공간에 유배된다. 이들을 땅속에다 가두지 않은 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었다고 한다. 어둠 속의 타락천사들이 위로는 밝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슬픔의 고통으로 가슴을 치고, 아래로는 땅을 굽어보면서 그곳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인간의 영혼들이 부러워 질투심에 몸부림치게 한다는 것이다.

 

또 타락 천사들은 어둠의 공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모기떼처럼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죄악을 퍼뜨리는 역할도 한다. 그러니 세상의 먼지만큼이나 많은 악마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성 오리게네스는 우리가 선행을 추구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만큼 악마의 극성스러운 군대가 감소한다고 보았다.

 

 

누가 이길까?

 

만약에 천사와 악마가 맞붙으면 어느 쪽이 우세할까? 악마 가운데 으뜸 수괴는 단연 루시퍼다. 그러나 대천사 미카엘이 나서면 맥을 못 춘다. 미카엘은 악마 전문 사냥꾼이다. 어떤 악마라도 미카엘이 팔을 걷어 부쳤다 하면 최소한 사망이다. 미카엘의 이름을 풀면 「하느님과 같은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둠을 내쫓고 빛의 깃발을 휘두르며 심판의 날에 우렁찬 목소리로 잠든 영혼을 일깨우는 천사다운 이름이다. 「황금전설」에 보면 역병을 풀어서 이집트인들을 기겁하게 하고, 홍해 바닷길을 열고,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에 인도한 것도 미카엘이었다고 한다.

 

하느님이 태초에 세상을 지으실 때 『빛이 생겨라』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갈랐는데, 이때 어둠이 빛으로부터 떨어져나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일을 선으로부터 악을 떼어내신 것으로 해석하고 타락천사들의 추방사건과 연결시킨다(신국 XI, 9,32). 이때도 미카엘이 앞장섰겠지만, 본때 있게 악마를 퇴치한 것은 최후의 심판 날이었다.

 

『그때 하늘에는 큰 전쟁이 터졌습니다. 천사 미카엘이 자기 부하 천사들을 거느리고 그 용과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 용은 자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맞서 싸웠지만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는 그들이 발붙일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그 큰 용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인데, 이제 그놈은 땅으로 떨어졌고 그 부하들도 함께 떨어졌습니다』(요한 묵시록 12,7~9).

 

노르망디 수사본에 등장하는 대천사 미카엘은 중세시대 십자군처럼 긴 창과 방패를 들고 있다. 구름자락 위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 있는 모습이 꼭 평지처럼 익숙해 보인다. 루시퍼는 뿔 달린 털북숭이 악마 대신에 악룡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미카엘은 악룡을 대적하면서 하나도 힘이 안 드는 모양이다. 긴 창을 익숙하게 놀리는 품새가 마치 머리수건을 질끈 동여맨 청소 아줌마가 대걸레를 가지고 지저분한 얼룩을 박박 문질러 지우는 자세처럼 보인다. 한편, 창날이 아가리에 박힌 악룡은 꼬치에 제대로 꿰인 뱀장어처럼 몸통을 뒤채지만 승산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싸움이 싱겁게 끝날 모양이다.

 

 

도덕적 교훈

 

천상의 기사 미카엘이 악룡을 무찌르는 주제는 빛과 어둠, 선과 악, 구원과 타락에 관한 도덕적 교훈을 시각화하는 도상으로 미술의 역사에서 자주 재현되었다. 나아가서 악룡을 제압하는 소재가 인간에게 내재한 동물적 욕망을 누른다는 의미로 해석되자, 사자나 괴물을 발아래 밟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도상과 인기를 다투기도 한다. 대천사 미카엘과 악룡의 대결 장면이 미술에 처음 등장한 것은 9~10세기부터이다. 그러나 그 싸움이 중세 수사본의 그림처럼 쉽사리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빛과 어둠이 우리의 삶과 함께 동거하는 동안에는.

 

[가톨릭신문, 2003년 10월 12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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