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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세상을 위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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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20 ㅣ No.305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세상을 위한 말씀


이사야서 55장 10-11절의 말씀입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이 말씀을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주님의 말씀」의 제1부와 제2부,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제3부와 비교해 본다면,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하느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 당신 말씀을 보내시는 것을 뜻하니까 제1부인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 비가 땅을 적시는 것은 우리가 그 말씀을 듣는 것, 곧 제2부인 “교회 안의 말씀”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 다음이 제3부 “세상을 위한 말씀”입니다.

제3부의 라틴어 제목인 ‘Verbum mundo’는 ‘세상을 위한 말씀’ 또는 ‘세상을 향한 말씀’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 복음 서문에서 말하듯이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시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우리 가운데에, 교회에 머무르시는 것은 온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일이 없는데 외아드님이신 그분께서 이 세상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요한 1,18 참조). 강생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 들어와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기도 하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생명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씀께서 오실 때에 그 말씀의 수신자인 동시에 선포자가 되어 세상을 향해 가는 것이 바로 교회이기에, 제3부는 교회의 사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008년에 있었던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제가 “교회의 삶과 사명에서” 하느님 말씀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1월호에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의 말씀」은 그 회의의 후속 문서였습니다. 이 문헌에서, 대략 말해서 “교회 안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제2부가 “교회의 삶에서” 주님의 말씀의 위치를 다루었다면 이제 “세상을 위한 말씀”이라는 제목의 제3부는 교회의 사명 안에서 하느님 말씀의 위치에 관련된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에 말씀을 선포하고 투신하는 교회

「주님의 말씀」에서는 그러한 교회의 사명을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그 첫째는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고, 둘째는 세상에 투신하는 것입니다. 이번 달에는 먼저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는 사명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하고 말하는 바오로 사도는 선교 사명에서 교회의 모범이 됩니다. 바리사이 출신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는 사람이었다가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다른 누구보다도 열렬한 복음의 전파자,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오로 사도에게 하느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요? 그 말씀 안에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거기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여 하느님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가고 의로움에 이르며 구원을 얻으려 했던 그는, 그가 애써 찾던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었음을 발견하고는 다른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여겨 내버렸습니다(필리 3,7-9 참조). 그 말씀이 바로 그에게 구원의 원천, 생명의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는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온 세상을 다니며 말씀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사람의 구원이 사람이 되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 사막을 건너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물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살 수 있도록 그 물을 나누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물이 생명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내가 안다면 나는 그 물을 나누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말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간절하게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그분이고 그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말씀과 교회의 관계를 놓고 볼 때에, 말씀을 받아들인 교회는 선교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께로부터 파견된 말씀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고, 교회의 사명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하시던 일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모든 신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성사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는 데에서 유래하는 책임”(94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교리책에 나오는 정의를 말하자면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의 보이는 표지”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일곱 가지 성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는데 외아드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요한 1,18 참조).

그렇다면 육화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성사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는 사도들이, 교회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선교 사명입니다. 그래서 성직자들, 수도자들, 평신도들 모두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 사명이라는 것을 너무 제한된 의미로 받아들일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하느님에 대해 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하느님의 말씀을 아직까지 들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니면 오래 전부터 들어왔지만 신앙이 식어버렸거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는”(히브 4,12) 말씀으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셨는지를 기억해 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문장들을 들려주시거나 하늘에서 책 한 권을 내려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요한 1,14) 우리 가운데 사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느님이신 그분을 알려주셨습니다”(요한 1,18).

이제 교회가 그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로 하느님을 증언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 동시에, 교회의 삶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삶으로 말씀의 힘을 드러내야

이 단락의 앞부분에서 교황님께서 언급하신 한 구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주제를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세상은 희망을 목말라합니다. 우리는 희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지닌 희망은 우리 마음 안에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나와야 하고, 그 희망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공공연한 무신론자였던 니체는, “성경에서 말하는 기쁜 소식이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 쓰여있다면 왜 그 책의 권위를 믿어야 하는지 그렇게 힘들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말씀을 듣고 신앙을 지닌 사람의 삶이 말씀의 힘을 드러내 보일 때, 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희망과 기쁨이 우리 삶 안에서 넘쳐흐를 때 사람들은 우리가 지닌 “말씀”에 대해 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의 질문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답을, 주님의 말씀이라는 답을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생명이 넘쳐 흐르기를 바란다면 말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1년 11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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