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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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역기능적 가정과 상처 입은 내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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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79

역기능적 가정과 상처 입은 내담자 (1)

 

 

1. 심리학적 인간 이해를 위한 철학적 인간 성찰

 

1)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 

 

독일 현대 철학의 거장 니콜라이 하르트만(N. Hartmann)은 그의 인간학적 성찰에서 “인간은 ‘소위’ 자유롭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인간의 위대함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것을 통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인간적 상식에 다소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신학적 인간학에 대한 실존론적 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하느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인 ‘윤리적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도 위대한 존재가 된다. 단순한 동물적 본능이 아닌 윤리적 자유의지로 인간은 ‘인간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삶의 상황에서 인간은 선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악을 택할 것인지를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여 의지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윤리적인 존재가 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 하느님께 인간이 윤리적인 판단과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며 바로 이러한 선을 향한 자유의지가 (단순히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존재론적인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의 신학적 존엄성을 보증해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하르트만은 이러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존엄성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는 인간이 겉으로는 모든 사고와 감정 그리고 행동의 자유를 온전히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출생 자체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그 어떤 자유와 책임도 지니지 못한 채 이 세상에 던져진(被投])존재다. 삶의 첫 순간부터 자신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삶을 살도록 종용(慫慂)당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출생, 성(性), 생김새, 성격, 기질, 체질 등과 같은 자신의 본질적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시대, 출생 국가, 부모, 형제, 그리고 구체적인 가정 상황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한다. 또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면서도 이것이냐 아니면 저것이냐 하는 선택적 상황에 직면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소위 자유로운 존재인 것이다. 

 

예를 들면 대입 수험생이 자신이 여러 대학들 가운데 어떤 대학을 선택해서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지원 자체를 포기할 것인가 등등의 진로문제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자유를 가지고는 있지만 수험생에게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이러한 선택의 상황 자체를 자유롭게 선택할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곧 우리는 모든 삶의 상황에서 늘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선택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만 사실은 그러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그 상황 자체는 선택할 자유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철학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스스로의 환경과 삶을 사실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삶에 적응해야만 하는 ‘던져진’ 존재이고, 그러한 주어진 삶의 환경 안에서 인간은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한해서만 ‘소위’ 자유로운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인 실존적 인간이해는 심리학적 인간관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심리학적 인간관 안에서의 인간은 유아기 때부터 이미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존재이며, 그러한 환경으로부터의 영향력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한 개인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심리상태나 행동유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어릴 때의 이러한 영향력은 자체로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자신의 모든 인간적 행위에 책임을 지어야 할 성인들에게조차 자신의 자유의지력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인간의 현재의 감정과 심리 상태, 그리고 사고 유형과 행동 기질 등은, 성인기에 이르러서야 온전한 의미로 인정될 수 있는 선택적 자유의지가 발휘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거나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심리학적으로도 인간은 ‘소위’ 자유로운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적 통찰을 기반으로 둔 사목 상담자는 내담자의 구체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더 근원적인 문제를 살펴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고 어떤 문제해결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과정 안에서 더 이상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근원적인 해결에 초점을 맞추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2) 과거 상처로부터 치유될 수 있는 인간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인간은 과거의 상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과거 상처는 반드시 치유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죽음에서 부활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은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어떤 사람이 현재의 부적응 성격이나 심리적 고통, 불안한 정서상태 등과 같은 내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호소할 때 왜 상담자는 그 내담자의 어릴 적 환경과 사건을 다시 들추어내고 그것을 내담자가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기억하도록 배려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 우리는 훌륭한 가정환경에서 정서적으로 사랑을 충만히 받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되게 자라온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그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그들도 나름대로 과거의 상처 때문에 한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내적 문제로 시름을 겪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어릴 적 환경 특히 가정환경에 대한 이해는 현재 내적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며 그 상처로 여러 가지 부적응 상황을 체험하고 그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과거의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가정을 흔히 문제 가정 또는 역기능적 가정이라 부르는데, 우리는 이러한 가정에서부터 개인의 내적 상처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곧 어떤 내담자가 과거가 아닌 현재의 구체적인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사건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농담을 걸어오는 사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러한 사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과를 받아야만 하는 중대한 인격모독이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객관적으로 똑같은 하나의 사건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때문에 느끼게 되는 감정은 주관적으로 큰 차이를 낳게 된다. 이것은 타고난 개인적 기질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타고난 천성은 바뀔 수 없다는 가정을 염두에 둘 때 사목 상담적 치유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적 차이가 과거에 역기능적 가정이나 어린 시절의 부정적 체험으로 생긴 후천적 성격형성에 근거한다면 치유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피력할 수 있을 것이다.

 

 

2. 역기능적 가정과 상처

 

사목 상담자가, 인간은 과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 과거의 부정적 체험 때문에 생긴 내적인 상처는 성령의 힘으로 반드시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담 상황에 따른 기획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상황 1 - 내담자의 상처가 과거 사건에 기반을 두고(예: 어릴 적 부모에게 차별 대우를 받았다거나 심한 학대를 당했다.) 그 때문에 생긴 욕구가 본질적이며(예: 이해받고 사랑을 느끼고 싶다.) 현재의 모든 삶의 영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경우(예: 자식들에게 특별한 애정이 없다. 자식들은 귀찮은 존재이다. 또는 애를 낳고 싶지 않다 등)이다.

 

상담 목표 - 현재의 그러한 마음이 왜, 그리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도록 도와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어릴 때의 상처 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며 그것은 반드시 치유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과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내담자는 과거 가정의 구성원들, 외적 환경, 그리고 과거의 자기 자신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용서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 상처가 부정적 영향을 미친 현실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 상황 2 - 내담자의 상처가 현재적 사건에 기반을 두고(예: 강간, 배신, 폭력, 이혼, 사기 등) 그 때문에 생긴 욕구가 구체적이며(예: 복수하겠다는 마음이나 자살하고 싶은 충동 등) 현재 모든 삶의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예: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자존감 저하, 자기비하, 시기와 질투심, 증오, 불안, 불면, 거식증, 신경증 등)이다. 

 

상담 목표 - 구체적인 사건을 최대한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인지적 재구성을 도와준다. 어쩔 수 없이 한번 당한 정신적 상처는 기억에서 지워질 수 없는 상흔으로 남지만 다행히도 그 상처로 인한 고통은 치유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이것의 핵심은 절대적으로 용서에 있음을 인식시킨다. 이때의 용서는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하고 용서에 대한 의지를 가지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상처 치유의 원천은 하느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신앙 안으로 다시 돌아와 종교적 위안을 받도록 사목적으로 배려한다. 

 

이처럼 치유받아야 할 상처는 크게 두 가지, 곧 과거로부터 대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근원적인 상처와 현재의 삶 안에서 체험되고 의식되는 구체적인 내적 상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먼저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의 삶에 부적응 현상을 경험하거나 내적인 고통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사목 상담과 사목적 배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재의 인격적 성격적 문제들은 과거 어린시절, 곧 가정환경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문제 가정, 곧 역기능적 가정의 특징을 먼저 살펴보고 그러한 가정의 구성원이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다. 마지막으로는 그러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어떻게 과거의 부정적인 체험과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사목 상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역기능적 가정의 특징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정 가운데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모든 가정은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대로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가정을 문제 가정 또는 역기능적 가정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한 가정 안에 어느 정도의 문제점들은 오히려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다시 힘을 모으고 결속하게 하는 긍정적 모습으로 승화될 수 있으며 더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기회로 여겨질 수도 있다. 게다가 그러한 문제점들이 주변인들에게 공개되고 함께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양성화된다면 훨씬 더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이런 분위기 안에서 자란 가족들은 가정의 문제를 자신의 가정 안에서만 숨기고 살아가는 가정과 비교해 훨씬 더 긍정적인 차원에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해 나갈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상처도 극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 안에 문제점들이 정상적으로 극복되거나 긍정적 의미로 승화될 수 없도록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정이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가정을 역기능적 가정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역기능적 가정은 사실 겉으로 볼 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역기능적 가정 중에는 사실 주변인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문제가 노출된 가정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이웃이나 친지들이 그러한 문제가 있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가정 안에서의 문제의 정도와 심각성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심각하다거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성질의 것이라면 더욱더 가정 구성원들이 감추고 위장하기 때문에 주변인이 알아차릴 수 없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겉으로 볼 땐 아무 문제점이 없어 보이고 가족들이 모두 지나치게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가정일수록 그 이면에 숨겨진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는 의심을 일단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개념을 염두에 두고 역기능적 가정의 특징들을 알아보자.

 

① 역기능적 가정 안에는 분명 심리적, 정서적, 또는 육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며 다른 가족들은 그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누구 하나가 성격장애(반사회적 성격, 회피적 성격, 경계선 인격장애, 의존적 성격, 연극성 성격, 자기애성 성격, 편집적 성격, 폐쇄적 성격, 강박적 성격, 정신분열적 성격)를 앓고 있다면 다른 가족들은 그 사람의 감정 변화와 행동 반응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특히 많은 가정이 이러한 성격장애 가운데 강박적 성격을 가진 아버지나 어머니 때문에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강박적 성격장애에는 ‘중독성’을 가진 모든 비정상 행위들이 포함된다. 곧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상습적 분노, 거식 또는 폭식증, 소비 중독, 도박 중독, 일 중독, 섹스 중독, 그리고 종교 중독(종교의식이나 기도 또는 종교행위에 대한 강박적 고착) 등과 같은 행동들이 있다. 만일 어떤 가정에 이러한 강박성 성격을 가진 구성원이 있다면(술 중독에 빠진 아버지,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어머니, 카드 빚이 불어나는데도 쇼핑에 중독된 자녀 등) 다른 가족들은 그 사람에게 온통 정신적으로 예속되게 된다.

 

② 역기능적 가정의 가족들은 자신의 감정 표현이 제한된다. 특히 문제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부모의 감정과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것에 온갖 관심과 초점을 맞추게 된다. 따라서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명오(明悟)가 열리기 전부터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빨리 알아차려 스스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방어하는 눈치가 재빠른 이른바 ‘애어른(Adult Children)’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늘 기회주의적으로 상황을 살피며 자신의 피해를 최대한 억제하려는 보호본능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어릴 때부터 저지당하면 성장해서 분명히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렇게 자신의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며 가족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기대를 받지 않은 애어른은 자신의 가정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기능주위적 관점에서 자신을 가정에 맞추어 나간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가정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무조건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아이는 성격에도 안 맞는 애교나 귀여움을 떨어서 긴장된 가족의 분위기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강박적 귀염둥이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는 상처받은 가족들의 위로자 또는 상담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③ 아이들은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가족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인간은 양육되는 것이지 사육되는 것이 아니다. 양육이란 정서적,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영적인 모든 영역에서 균형 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충분한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피는 것을 말한다. 역기능적 가정에서는 이러한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통한 보살핌을 자녀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이런 결과로 아이들은 너무 일찍 세상의 일과 가족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책임감 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미성숙한 아이들이 어려서 이러한 막중한 삶의 무게를 지게 되면 성인이 되어 여러 가지 내적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

 

④ 가족 안에서 드러나는 문제에 대해 가족들은 공개적인 대화를 꺼린다. 만일 가족 안에 드러난 문제들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면 문제 가정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역기능적 가정은 대부분 가정 안에 존재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이것은 수치심에 근거한 가족 심리의 영향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가족들은 자신의 가정 안에 그러한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문제화함으로써 드러나게 되는 수치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묵시적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가 밤새 아내와 자녀들을 괴롭혀 집안이 온통 시끄러웠어도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학교 갈 준비를 하며 보통의 일상생활을 시작한다. 누구도 어젯밤 사건을 공개적인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극단적인 예로 강한 수치심을 유발하는 성(性)적인 문제가 가족 안에 존재한다면 이것은 더욱더 철저히 의식적인 회피와 억압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⑤ 역기능적 가정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역기능적 가정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이러한 가정환경을 절대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다. 곧 가정 안에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비밀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을 집안에 초대하는 것을 꺼릴 뿐 아니라 혹시나 타인이 방문할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그러한 가정의 비밀을 눈치 채지 않도록 상당히 노력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결핍된 가정을 비밀리에 보호하는 법을 나름대로 체득하면서 가정을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까지도 함께 묻어버리는 탈자아(脫自我) 현상을 체험하기도 한다.

 

다음에는 이러한 역기능적 가정의 부정적 결과로 생기는 상처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러한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한다. [사목, 2004년 5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본지 주간 · 신부)]

 

 

역기능적 가정과 상처 입은 내담자 (2)

 

 

1. 역기능적 가정으로부터의 상처

 

지난 호에서는 역기능적 가정의 특징을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상처를 이해하고자 다시 한번 그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역기능적 가정 안에는 분명 심리적, 정서적 또는 육체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존재하며, 다른 가족들은 그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② 이러한 가정의 가족들은 자신의 감정 표현을 제한받게 된다.

③ 아이들은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가족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④ 가족 안에서 드러나는 문제에 대해 가족들은 서로 공개적인 대화를 꺼린다.

⑤ 역기능적 가정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이러한 역기능적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는데, 이러한 일반적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세부적인 정서적 행동적 부적응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1) 아이들은 수치심에 기반을 둔 자아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부정적인 부모의 모습은 곧바로 자녀들에게 전이되어 아이들은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아이들은 부모가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자신의 존재 자체 또는 잘못된 행동 때문이라는 자책감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러한 자책감은 부모가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을 때 더욱 심각해진다. 

 

2) 아이들의 낮은 자존감 때문에 건전한 인간관계가 어렵게 된다.

 

가족과 자신에 대한 이러한 수치심은 아이들에게 낮은 자존감을 형성시키며, 열등감을 증가시킨다. 또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게 인정되지 않는 가정 안에서 결국 자신의 감정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식이 싹트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 이성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가정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인간의 정이 바탕이 되는 관계가 아닌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 안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생존적 의미로서의 대인관계를 유지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은 가정 안에서 따뜻한 돌봄을 받아보지 못하고 어떻게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며 살아남으려고 했던 과거의 체험이 만들어놓은 소산이다. 곧 인생은 즐기는 곳이 아닌 생존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마음 깊이 내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생존의식은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따뜻한 배려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지를 빼앗아간다. 성인이 되어 이러한 대인관계 안에서의 정서적인 문제를 늘 경험하게 되는 역기능적 가정의 자녀들은 결국 자신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운명론을 받아들인다.

 

3) 아이들은 과도한 죄의식에 괴로워하거나 완전주의 또는 결벽주의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자라온 가정 그리고 부모에 대한 수치심은 아이들의 건전한 자아정체감을 훼손하기 때문에 그 결과 아이들은 과도한 죄의식에 고통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죄의식을 모면하고자 완벽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이러한 죄의식과 완벽주의는 인생을 즐기는 것에 과도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4)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므로 여러 정서적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당한다.

 

역기능적 가정은 자녀들의 감정을 제한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살기보다는 문제 있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감정에 따라 사는 법을 배워왔다. 따라서 성장하여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억누르게 된다. 이러한 억압을 통한 마음속의 감추어진 감정은 곧바로 마음과 육신의 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의 많은 질병 가운데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 역기능적 가정의 상처 치유

 

사목 상담자는 위와 같은 일반적인 역기능적 가정의 부정적 결과를 염두에 두고 과거의 가정환경이 어떻게 현재의 내담자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이러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여러 접근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무의식을 점검하며 자기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정신분석적 방법이라든가,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과거의 상황을 다시 재현하고 역할 연기를 이용하여 그때의 감정에 다시 직면하도록 내담자를 도와줌으로써 당시에 표출하지 못했던 감정을 현재에 모두 해소시키는 방법이 있다. 

 

또한 집단 상담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나름대로 가지고 살아왔던 내담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서로가 상처를 치유해 주는 지지자 역할을 하며 치유의 시간을 갖는 방법도 있다. 특히 사목 상담자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을 상담할 때 치유의 은사를 청하는 전례적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 과거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신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러한 전례적 치유 상담 프로그램의 개발은 사목 상담자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례적 집단 치유 프로그램 안에 들어갈 요소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사목 상담자는 이러한 요소들을 자신의 고유한 프로그램에 접목시켜 효과적인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3. 상처 치유를 위한 전례적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위한 요소들

 

1) 역기능적 가정의 특징과 그 부정적인 결과들에 대한 인식

 

역기능적 가정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이 그러한 가정에서 자라왔다면, 그 가정의 부정적인 결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에서 받은 나의 상처는 어떤 것인지를 다음의 질문을 통해 생각하고 그룹 대화를 유도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사용할 수 있다.

 

① 당신은 스스로 역기능적 가정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부정적인 체험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② 당신의 가족 구성원 가운데 특정한 한 사람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는 않았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당신 가족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될 정도였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어떤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까?

 

③ 당신의 감정이 제한되어 표출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허락된 감정은 무엇이었고, 그렇지 못한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나누어서 표현해 주십시오.

 

④ 당신은 가정에서 부모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받고 자랐습니까?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⑤ 당신의 가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열려있었습니까? 아니면 숨겨야 할 것들이 많아 폐쇄적이었습니까? 외부 사람들에 대한 당신 가정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2) 자존감의 인식

 

현재 자신의 자존감에 대해 이해하고 나서, 만일 자존감이 낮다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올바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① 다음의 질문지를 통해 현재 나의 자존감의 상태는 어떠한지 스스로 살펴보십시오.

 

자존감 증진을 위한 첫 단계는 당신이 어느 부분에서 약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각 질문에서 ‘항상 그렇다’이면 3점을, ‘가끔 그렇다’이면 2점을, ‘그렇지 않다’이면 1점을 표기한다. 이 조사표는 7개의 자존감의 기본 요소들로 나뉘어있으며 각 요소들은 다시 5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섯 개의 질문 모두에 3점을 맞으면 15점이 된다. 따라서 각 요소당 15점에서 부족한 점수만큼 자존감을 높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단 그 누구도 완벽한 점수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수는 항상 변하므로 앞으로 제시하는 여러 노력들을 기울인 다음, 몇 주 뒤에 다시 실시해 본다면 변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② 현재의 자신의 자존감에 대해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려보십시오. 자신의 현 모습에 만족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중요한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십니까?

 

③ 당신의 가정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은 사건들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까?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거나 모멸적인 언행을 통해 스스로 나는 못난 사람이란 생각이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게 된 것은 아닙니까?

 

④ 당신은 부모나 가족에 대해 수치심을 느낍니까? 그렇다면 어떤 수치심입니까? 또한 그 수치심 때문에 자신도 낮은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⑤ 과거의 상처와 부정적 경험 때문에 훼손된 자존감을 다시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자존감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끝났다면 사목 상담자는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제시해 줄 수 있다. 다음은 사목 상담자가 참고할 수 있는, 자존감 향상을 위한 10가지 조언이다.

 

(1) 자신을 명확하고 정직하게 바라보기(Take a Clear and Honest Look at Yourself)

 

강한 자존감은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바라보지 않음을 뜻하지 않는다. 자존감은 당신의 장점들과 함께 약점과 단점 또한 수용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은 자기를 수용하는 가장 중요한 첫 단계이다. 자신의 긍정적인 가치들과 부정적인 부분들을 자기 자신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면 자존감의 성장과 향상은 한층 더 쉬워진다. 따라서 자신을 더 낫게 발전시키려면 자기 자신을 확실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의 긍정적인 가치들과 바꾸고 싶은 나의 면모들을 노트에 적어보라. 긍정적인 가치들에는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나의 모든 부분을 적는다(예를 들면, 외적인 모습, 개인적인 능력, 좋은 인간관계 등). 만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면 이 긍정적인 가치들을 찾아내는 것이 무척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때는 자신을 잘 아는 친구나 가족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라.

 

내가 바꾸고 싶은 나의 면모들에는 “나는 내 자녀들에게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고 싶다.”, “나는 좀 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는 “나는 몇 킬로 정도를 더 다이어트 하고 싶다.” 등등의 표현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이 향상시키고 싶은 모든 것을 적는다. 여기에는 옳거나 그른 표현들이 있을 수 없다. 이 작업은 단지 자기 자신을 단순하게 기술하기 위한 작업이지, 절대 비평하거나 평가하고 테스트해 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잠시 자기가 쓴 문장을 바라본다. 자신의 장점이 이렇게 많은 것에 대해 놀라고 있는지, 당신이 변하고 싶은 것을 이루고자 첫 번째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2) 긍정적인 자기 대화(Use Positive Self-Talk)

 

우리는 항상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언행에 대해 평가하는 내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이 목소리는 거의 조용하게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무의식’ 속에서 들려온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지 못해도 항상 이 목소리는 내면에 존재한다.

 

만일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이 내면의 목소리가 아마도 매우 거칠고 비평적일 것이다. 아마 그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도 적용시키지 않은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자기를 비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비평’은 어린 시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어렸을 때 심하게 꾸지람을 당한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 자신을 심하게 다루게 된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듣게 될 때 그 비평을 믿거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또는 그 비평을 부정하고 멀리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전히 평안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럴 때는 이 내부 비평을 일일이 기록해 보라. 어떤 것은 사실이고 어떤 것은 과장되거나 거짓일 것이다. 이때 사실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받아들이고 과장된 것이나 거짓된 것은 과감히 부정하라. 그리고 날마다, 아니면 일주일에 한두 번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긍정적인 자기 메시지를 낭독해 보라. 자신만의 긍정적인 자기 대화를 만드는 것이 좋다.

 

“나는 유일무이한 인격체이며, 독특한 개성과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성과 능력들은 나만의 유일한 것이며, 나는 이것을 기쁘게 사용하며 즐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원한다면 나의 이러한 개성과 능력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3) 책임감 받아들이기(Accept Responsibility)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종종 자기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하는 ‘피해 언어(victim language)’를 사용한다. 그들은 남을 변화시키거나 책망하기에 무력한 자신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면, “난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체중을 줄일 수 없어. 난 그것 말고도 너무도 할 일이 많단 말이야.” 또는 “아이들이 괴롭히는 바람에 난 이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었어.”, “엄마가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나는 정말 친정에 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해.”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은 ‘선택(choice)’과 ‘결정(decision)’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면서 자신의 능력과 자기 존중감을 향상시킨다. “나는 운동을 해서 체중을 줄이려고 일주일에 세 번 30분 먼저 일어나기로 결정했다.”, “나는 보고서 쓰는 일을 잠시 중단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면 밤에 내 작업을 끝마치기로 결정했다.”, “친정을 방문하는 것은 내게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친정에 가기로 선택했다. 왜냐하면 엄마가 나를 보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한 번만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4) 함께 어울리기(Get Involved with Others)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끼고자 ‘함께함’을 필요로 한다. 종종 가족이나 이웃사람들이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교회나 성당, 지역사회 센터, 각종 동아리나 동우회 등 긍정적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교의 기회들이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함께할 사람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자신의 영성을 개발하라(Develop Your Spirituality)

 

영성이란 단어는 매우 정의하기 어렵고 개인적인 개념이지만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다음은 종교인뿐 아니라 비신앙인이라도 영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이다.

 

- 미사와 전례에 참여하기: 신앙인이라면 종교예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 국한된 삶을 넘어서 하느님과 이웃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자연 감상하기: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바닷가에 앉아있거나 나무 사이를 산책하고, 밤하늘에 별들을 바라보는 일 등은 자신을 ‘영적 존재로서의 나’로 인식하게 해준다.

- 명상과 기도: 성체조배를 하거나 조용한 곳을 찾아 잠시 자기 안에 머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영성생활에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다.

- 독서: 특히 영적 독서나 철학과 삶에 관계된 책들을 읽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라.

- 영성강좌에 참여하기: 종교적 영성과 철학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강의나 프로그램 또는 공개강좌 등에 참여하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영성적 삶을 이해하게 해준다.

 

(6) 헌신 · 봉사하기(Make a Contribution) 

 

어떤 방법으로든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은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삶의 의미를 북돋아주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어떤 것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구촌 문제들에 대해 자신은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헌신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헌신과 봉사는 - 그것이 위대한 일이든 대수롭지 않은 일이든 간에 - 세상을 변화시킨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해 보라.

 

- 바로 지금 나 자신을 넘어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내가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일을 위해 내가 현재 고려해야 할 일들은 무엇이며, 그 방법은 어떠한가?

 

(7) 신체 관리하기(Take Care of Your Body) 

 

멋있게 보일수록 자존감은 더욱 향상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몸(내적인 건강과 외적인 외모를 모두 포함해서)을 관리한다.

 

- 내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보호하고자 현재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너무 마르거나 비대해지지 않으려고 음식이나 운동에 늘 신경을 쓰고 있으며, 스트레스 관리를 하고 있는가?

- 현재 내 모습에 대해 만족하고 즐거운가?

- 만일 불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운 모습이 될 것인가?

 

(8) 긍정적 · 상보적(相補的) 인간관계 만들기(Develop Positive, Supportive Relationship)

 

우리는 사람을 사귈 때에 가끔 친밀감에만 바탕을 둔다. 이 말은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둘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사람을 사귈 때에 서로에게 좋은 만남이 되고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데 서로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하고 자존감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 이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가?

- 내 주변에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있는가?

- 내가 좀 더 잘 지내고 싶고, 깊이 있게 사귀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부류인가?

 

한편, 인간관계를 향상시키는 데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분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letting go: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서로 상처 입고 배신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해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마음에 두는 것은 나 자신에게 좋은 느낌을 갖지 못하게 한다. 분노는 일시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나름대로 해결하는 힘인 양 보이지만, 이 감정이 지속되면 삶의 원기는 고갈되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은 오히려 방해를 받게 된다. 과거의 상처를 넘어서는 진정한 힘은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는 데서 생긴다.

 

분노의 감정을 놓아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 자체가 ‘선택할 수 있는 힘(power to choose)’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아마 좀 더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방류는, 쓰리고 아픈 마음과 분노의 감정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데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9) 당신의 일을 즐겨라(Enjoy Your Work)

 

만일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면, 이미 자존감을 위한 최고의 원천을 얻은 것이다. 일을 스트레스로 여기지 않고 진정 즐길 수 있을 때 자존감은 높아진다. 다음의 질문에 답을 해보며 일에 대한 자기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본다.

 

- 나는 내 일에 만족하는가?

- 이 일에는 어떤 능력과 기술이 필요한가?

- 나의 능력과 기술들이 내가 하는 일에서 충분히 발휘되는가?

- 그렇지 않다면 내 능력과 기술을 어떻게 더 발휘할 수 있겠는가? 

- 이 일 말고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 현재의 내 일을 더 기쁘고 만족스럽게 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0) 남을 받아들이기(Celebrate Others)

 

모든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가끔 우리는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반대하거나 싫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이에 대한 관용을 배우는 것은 자존감을 증진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 명심할 것은 남의 생각이나 행위를 조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내가 받아들이기 곤란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정해 주고, 나는 나의 고유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자신의 기본 원칙들과 선입관들을 적어보라. 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생각하고 있는가? 나와 다른 인종, 종교, 문화, 또는 성(sex)에 대한 ‘신뢰(truths)’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

-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배우기: 독서, 문화행사 참여, 여행 등 다른 문화와 삶의 형태를 배우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안목을 변화시킨다.

-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만일 “그 사람은 ~하다. (예: 바보같다, 게으르다, 무례하다, 못생겼다, 무기력하다, 잘못됐다 등)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기 때문이다. (예: 외국인이기 때문, ~종교인이기 때문, ~문화에서 살기 때문, 여자?남자이기 때문, 장애인이기 때문 등)”라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위와 같은 하나의 기준으로 나의 전체를 평가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라. 역지사지(易地思之)는 타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된다.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이러한 도움들 가운데 사목 상담자는 다섯 번째 부분인 영성적 부분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더욱 깊이 연구해야 한다. 특히 전례와 성사를 통한 영적 돌봄의 시간을 상담 회기마다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목, 2004년 6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본지 주간 · 신부)]

 

 

역기능적 가정과 상처 입은 내담자 (3)



3) 자신의 부정적 감정 인식

 

문제가 있는 역기능적 가정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존중되지 못하고 늘 부모나 문제가 있는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하나에게 모든 가족의 관심이 쏠려있는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목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 감정을 직접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데에 다음과 같은 요소를 주지시킬 수 있다.

 

* 당신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살아왔다고 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따라 사는 법을 배우고, 그 삶에 더 적응하면서 살아왔을 수 있습니다.

* 당신이 자라온 가정이 당신의 감정표현을 억압하였을 수 있습니다.

* 당신은 어떤 감정이 생긴다 하더라도 일단 그 감정들을 억압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의 의식과 무의식 안에는 어떤 감정은 표현해도 무방하지만 어떤 감정은 절대 표현해서는 안 되고 숨겨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원칙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담자가 이러한 자기 성찰의 시간에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이러한 감정 억압의 생활이었음을 인정하고 고백한다면, 그러한 감정 억압이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고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게 되는 방식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사용될 수 있다. 내담자는 이러한 요소들 가운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압해 왔는지를 생각하고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는 데 사용되어 온 방법들

 

①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요시함 : 자신이 만일 감정보다는 이성이 더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이나 신념을 바탕으로 살아왔다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대화를 할 때에도 상대방의 감정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 대화의 내용, 곧 사실이냐 아니냐 또는 옳은 이야기냐 틀린 이야기냐 등의 이성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성적인 사고와 대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삶은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 안에서 이해될 때만이 고려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감정은 대부분 이성의 논리로 파악되는 영역이 아니기에 비이성적인 감정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② 과거 사건의 의미를 축소함 : 자신이 기억조차 하기 싫은 과거의 상처나 체험들을 나름대로 별것 아닌 사건으로 의미를 축소하면서 그 경험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애써 억제하려 한다. 

 

예를 들면 “우리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서 큰소리를 치고 물건을 부수며 어머니랑 싸우셨지만 적어도 우리 자식들을 때리지는 않았다. 더구나 세상에는 자식들을 버리는 수많은 부모들이 있는데 적어도 아버지는 우리 가정이 해체되게 만들지는 않으셨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집은 그리 불행한 가정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가볍게 취급하면서 그 기억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억제하려하는 의도가 무의식 안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③ 감정을 부인함 : 이것은 “그런 사실은 없다.”라고 말을 하며, 아예 과거의 그 사건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돌이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이다.

 

④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타인의 감정에 집착함 : 자신의 감정 때문에 자신이 피해당할까 두려워 더욱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며 다른 사람의 문제 해결에만 몰두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한다.

 

⑤ 감정을 삭혀버림 : 말 그대로 슬프거나 괴롭거나 분노를 느낄 때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을 삼켜버리고 다른 육체적인 일에 전념한다. 이 태도는 분명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는 듯이 보이나 사실은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누적으로 여러 병리적인 현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사목자는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억압되고 회피되는지에 대해 돌아다본 이러한 내담자들이 구체적으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며,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잃어버렸던 자신의 정서를 찾는 것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우선 치유의 첫 과정은 잃었던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이 작업은 같은 처지에서 살아왔던 다른 내담자들과 솔직한 대화를 하면서 이루어지는데, 상담자는 집단 안의 내담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제공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신뢰가 바탕이 되면 내담자들은 점차로 숨겨왔던 과거의 사건들과 그 때문에 생긴 감정들을 다른 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고백하게 된다. 이때 내담자들은 숨기고 싶었던 과거의 일이 그토록 수치스러운 체험은 아니라는 것을 서로서로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이 겪은 아픔을 상대방도 똑같이 체험했음을 깨달으면서부터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할 뿐 아니라 이러한 상대를 향한 이해와 위로는 곧바로 자신을 향한 이해와 위안이 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숨겨왔던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고통은 자신만의 독특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과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내적인 치유는 시작된다.

 

이때 사목자는 다른 그룹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담자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대화를 신뢰 수준에서 이루어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남의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회피하려고 하는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마음을 열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상담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상담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 성공적인 그룹 상담을 위한 상담자의 역할

 

① 내담자 대화를 경청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 그룹 안에서 한 사람이 발표할 때 단순히 이야기를 체험담으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뒤에 숨겨있는 뜻을 발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곧 그 이야기 속에 주인공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그룹원들이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도 주지시켜야 한다. 

 

② 내담자 대화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 내담자 자신도 자신의 이야기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체험 속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럴 때는 상담자가 “당신이 그 당시 체험했고, 또한 지금 그때를 회상하면서 동시에 드러나는 감정은 바로 ~입니다.”라고 명확하게 감정 표현을 정리하도록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감정에는 분노, 두려움, 고통, 슬픔, 외로움, 죄책감, 수치심 등이 있다. 

 

③ 발표자를 격려하도록 이끌어준다 : 발표하는 사람은 사실 드러내기 힘든 속마음 또는 치부를 용기 있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룹원들은 내담자의 발표 내용을 듣고 그 내용에 대한 반응을 그때그때 표현해 주는 것이 좋다. 이야기가 다 끝난 뒤 당신의 어려웠던 그 시절의 감정을 우리 모두는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진정한 피드백이 있을 수 있도록 사목자는 그룹원들을 잘 이끌어주어야 한다.

 

④ 발표를 두려워하는 내담자를 격려해 준다 : 내담자는 일생에서 숨기고 싶은 자신만의 체험을 이야기할 때 당연히 커다란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이는 그동안 자신의 가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부모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동시에 자신만 침묵하면 이러한 일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으므로 우리 가정을 위해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야만 한다는 자신의 불문율을 깨는 행위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사목자는 이처럼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자신의 가족을 비난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이며 정서적인 치유를 위한 한 과정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내담자는 타인을 여태껏 신뢰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룹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이 모임 자체가 어떤 강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억지로 하기 싫은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발표를 머뭇거리는 사람들도 다른 동료들이 그룹원들에게 진정한 신뢰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을 보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사목자는 내담자가 수치심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을 때까지 관대하게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내담자에게 절대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그룹에서 사목자가 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목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훨씬 더 영적으로 깊이 있는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영성상담을 통한 고해성사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과거를 꼭꼭 마음에 숨기고 그 때문에 생긴 감정을 억누르면서 내적인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이다. 일반적 그룹 상담 환경에서 이러한 감정의 표출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것도 효과적인 치유의 방법이지만 사제는 더욱 영적으로 확실한 치유의 보증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내담자들에게는 무엇보다 그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안전한 상대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사제를 통한 고해성사적 은총은 그 누구의 도움보다도 그 어떤 신뢰적 그룹의 지지보다도 훨씬 더 안전하고 확실한 위안처이다. 따라서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목 상담자는 그룹 상담에서 인지적 치료의 부분을 수행하고 개인적 고해성사와 전례적 미사 안에서는 구체적인 내적 치유를 도모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계획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성사적 전례적 프로그램은 여타의 심리치료사들이 한계를 느끼고 있는 영적인 치유 부분에서 사제만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인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⑤ 비밀을 유지하도록 한다 : 사목자는 내담자 그룹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질 때 그 모든 이야기가 비밀로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대화 전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이로써 그룹원들은 둥글게 모여앉아 오직 대화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며 필기를 한다거나 다른 행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4) 구체적인 부정적 감정으로부터의 해방

 

일단 내담자들이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체험과 그로 생긴 정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해를 하고 또한 그 감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으면 그 감정에서 탈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때 사목자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감정들이 생겨나게 된 원인을 낱낱이 파악하고 어떻게 긍정적인 해소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룹 구성원 서로가 도움을 주도록 이끈다. 

 

내 문제의 해결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그룹의 내담자들 가운데는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놀라울 만한 통찰력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사목자는 각각의 체험은 모두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공통적인 감정(예: 분노, 두려움, 고통, 슬픔, 외로움, 죄책감, 그리고 수치심)을 공유해 왔던 이 그룹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의 원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목자는 내담자들의 이러한 공통적인 감정들 가운데 특히 수치심에 대해서는 내담자들 자신 안의 그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치심이야말로 자신의 그릇된 정체감을 유도하고 부적응적인 자아를 만들어내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사목자가 참고할 수 있는 수치심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이다. 사목자는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내담자가 수치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룹 상담 상황에서 응용할 수 있다.

 

♠ 수치심에 관한 이해

 

① 수치심의 정의 : 수치심은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심은 가정 안에 알코올 중독, 정서적 학대, 인격모독, 성적인 학대와 같은 문제가 있을 경우, 그 학대로 피해자가 지니게 되는 감정으로서 절대 건강한 수치심이 아니다. 이 수치심은 자신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가장 큰 독소적 감정이다.

 

② 수치심의 발생 : 수치심은 부정적인 부모의 태도로 직접적으로 발생하여 자신에게 전이된다. 또한 이러한 부모와 가정에 대한 수치심은 곧바로 자신의 감정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숨기려 하는 폐쇄적 성격을 일으킨다.

 

③ 수치심에 기반을 둔 정체감 형성 :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이러한 성향은 곧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숨기는 것뿐 아니라, 자신을 진정 사람들이 알아보면 자신을 싫어하리라는 부정적 믿음과 함께 자폐증, 신경과민증, 대인 기피증, 경계선 인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또한 수치심은 “너는 너 자신이 될 자격이 없어. 네가 인정받으려면 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해.”라든지 또는 “너는 존재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며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늘 전달해 주는데, 이것이 자신의 정체감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④ 수치심에 따른 보상 심리 :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자아는 그 수치심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을 남보다 우월하게 보이려는 강한 보상 심리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남보다 두 배 세 배 열심히 일을 하는 열성을 보이게 되는데, 예를 들면 일중독에 걸려 생활하거나 종교생활 또는 봉사생활을 하는 데 지나치게 열심일 수 있고, 돈을 악착같이 모으는 데 혈안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열심한 생활의 보상 심리 안에는 분명 완벽주의가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수치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완벽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비판적이며, 칭찬은 인색하고 늘 남의 실수만 쳐다보게 된다. 이런 결과로 완벽주의자는 스스로를 타인에게서 소외시키며 자기 자신도 삶에 지치게 된다. 

 

5) 과거의 체험과 현재의 자신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

 

이것은 상담자 편에서 주로 요구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목 상담자는 내담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억압하고 회피했던 감정들을 인식하고 이해하였다면, 그 감정을 직시함으로써 그것이 현재 나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파악해서 해석해 줄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곧 사목자는 내담자의 과거 체험이 현재 어떤 부적응적 현상을 일으키고 있으며, 어떤 해결되지 못한 감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그 연관성을 명확히 짚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위한 목적 설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의 체험이 현재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 연결고리를 알지 못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사목자는 인지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과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구체적인 내담자 개개인이 어떻게 과거 사건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내담자의 문제가 지나간 과거를 부정적으로만 기억한다든가 아니면 선택적으로 안 좋았던 기억만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인지적 문제에 기인한다면 인지요법을 함께 병행하는 그룹 상담의 형태가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내담자의 문제가 단순한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인식습관 때문이라기보다 실제적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부정적 경험과 그 때문에 생긴 충격(trauma)에 더욱 큰 이유가 있다면 치유와 용서를 위한 공동체적이며 전례적인 상담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6) 치유를 위한 용서

 

사목자는 그룹 상담 상황에서 내담자들이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 때문에 생긴 현재의 감정 상호 간에 비논리적인 사고 유형과 비합리적인 신념을 보인다면 이를 바로잡아 주고자 인지적 상담기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과거 가정에서의 부정적인 체험과 학대와 같은 심한 내적 상처로 현재의 부적응 문제가 발생했다면 마음의 치유를 위한 고해성사와 화해의 미사 전례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사목자는 참회예절이나 고해성사 또는 화해의 미사를 어떻게 프로그램 안에서 유기능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진정한 마음의 치유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수십 년간 내적인 상처로 고통을 받아왔던 내담자들이 몇 번의 상담과 고해성사 그리고 단순한 미사 참례를 통해 완전한 치유를 얻는다는 것은 하느님 편에서의 은총이지 인간 편에서의 노력의 결과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은총을 믿음으로 갈구하면서도 사목자는 인간적 노력의 극대화를 통한 최대한의 치유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전례와 성사 안에서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적 노력의 핵심은 역시 내담자에게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 있다. 과거의 부모와 가정,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긴 내 자신의 부정적 인생에 대한 용서는 다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중요한 치유의 요소가 된다. 따라서 사목자는 내담자가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용서를 통해 내적인 자유와 치유를 얻을 수 있도록 그룹 상담 회기에 용서에 대한 심리학적이며 영성적인 측면의 이해를 충분히 주지시키고 거짓된 용서가 아닌 참 용서를 통해 참된 내적 치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렇게 내담자가 마음에서부터 용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에는 현재 용서를 심리치료의 중요한 방법의 하나로 인정하는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종교적인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용서가 개인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은, 용서가 종교적으로 마음이 내키든 그렇지 않든 으레 그래야만 하는 당위적 윤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용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종교적인 계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행하는 용서는 참된 용서가 아닐 뿐 아니라 그 때문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수도 없는 법이다. 따라서 용서를 통한 치유의 관건은 정말 용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내담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학적 도움에 기반을 둔 영성상담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금까지 역기능적 가정의 특징과 그 결과 그리고 그 가정에서 자라난 개인의 내적 치유를 위한 요소들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다. 요약해 보면, 내적인 과거의 상처를 통한 부적응 현상을 경험하는 내담자들은 일단 자신이 과거의 어떤 가정에서 자라왔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의 인격과 감정에 어떻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목 상담자는 개인적 상담을 통해서도 이러한 인식에 내담자를 직면하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치유의 효과는 개인 관계에서보다는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기에 집단 상담 프로그램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집단 프로그램 안에서 사목자는 개개인이 자신의 부정적인 과거의 사건과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도록 도와주며, 내담자는 일차적인 감정 순화와 집단 동료들의 지지로 서서히 치유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한편 자신의 감정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 때문에 생긴 현재의 문제와의 상관관계 안에서 내담자는 자신이 인지적 오류를 가지고 있다면 사목 상담자에게 인지적 재구성에 관한 도움을 받을 것이다. 동시에 마음속에 상처 때문에 풀어지지 않은 감정들은 점차로 동료들의 따뜻한 지지 그리고 전례와 성사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서서히 화해와 치유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용서’에 있다. 그러나 참된 용서는 단순히 인지적인 재구성이나 집단 상담적 지지만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사목자는 내담자가 참된 용서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이것은 용서에 대한 심리치료적 상담과 마지막으로는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는 성사와 전례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음 호에서는 용서의 심리학적 이해를 알아보고 사목자가 진정한 용서를 내담자 편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사목, 2004년 7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본지 주간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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