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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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주님, 어디에서 당신을 찾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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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2-04 ㅣ No.294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해설


주님, 어디에서 당신을 찾아야 합니까?

 

 

엠마오를 향하여 힘없이 걸어가는 두 제자의 뒷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루카 24장). 그들은 나자렛 예수님을 믿었고 그분께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수석사제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리라고 믿었던 그분이, 실패하고 패배하고 이제는 안 계신 것 같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침통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천사들의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분께서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말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믿음이 약해서 살아계시는 그분을 알아뵙지 못하고 그분께서 함께 계심을, 바로 그들 곁에서 함께 그들의 길을 걸어가고 계심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길을 걷고 있는 이 제자들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을,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분께 희망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님을, 그분은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분이 아니심을, 오히려 이 세상 권력의 횡포에 말없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분이심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살아계시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엠마오의 제자들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 어디에서 당신을 찾아야 합니까?”

 

 

말씀과 성체, 교회를 지탱해 주는 양식

 

엠마오를 향해 가는 그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풀어주십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빵을 나누실 때에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뵙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바로 성경을 읽을 때에, 그리고 성찬의 빵을 뗄 때에 그들은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을 볼 수 있었고, 부재하신 듯했던 주님께서 어느새 그들에게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24,15)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엠마오의 이야기는 지상의 여정을 걸어가는 교회에게 한없는 힘과 위로를 줍니다. 지쳐서 누워있던 엘리야 예언자에게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했던 주님의 천사처럼(1열왕 19,8), 이 복음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듣고 믿었으나 날마다 그날 몫의 길을 걸어가는 데 끊임없이 새 힘을 필요로 하는 이 약한 여행자들에게 말씀과 성체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알아뵈옵고 그 힘으로 걸어가라고 일러주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체, 그것이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날까지 교회를 지탱해 주는 양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찬’을 주제로 했던 2005년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말씀’을 주제로 했던 2008년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주님의 말씀”, 3항). 두 번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주제를 상세히 말한다면 거기에서 또 다른 공통점들을 볼 수 있습니다. 2005년의 주제는 ‘교회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였고 2008년의 주제는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었다고 할 때, 여기에서는 ‘교회의 삶’과 ‘교회의 사명’이라는 두 가지 영역이 성찬과 하느님 말씀의 자리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의 ‘삶’과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사명이란 바로 교회가 이 세상 안에서 자신의 본질을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명 없는 삶 또는 삶 없는 사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성찬과 말씀은 교회가 그 자체 안에 생명을 유지해 가는 데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 안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데에서도 그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 교회 안의 말씀 · 세상을 위한 말씀

 

이러한 맥락에서, 2008년에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주제로 열렸던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결과들을 모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2010년 9월 30일, 위대한 성서학자이며 성서주석자들의 수호성인인 성 예로니모 축일에 발표한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은 전체가 하느님의 말씀, 교회 안의 말씀, 세상을 위한 말씀이라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부 하느님의 말씀(Verbum Dei)은 “하느님의 말씀”이 지니는 다양한 의미를 설명하고 그 넓은 지평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며, 계시헌장(“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2항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에게 친구처럼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성경 해석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서 제2부 교회 안의 말씀(Verbum in Ecclesia)에서는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늘 교회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말한 다음 구체적으로 전례와 사목, 교리교육, 그리고 신자들의 생활에서 하느님 말씀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말합니다.

 

마지막 제3부 세상을 위한 말씀(Verbum in mundo)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은 온 세상을 향하여, 온 세상을 위하여 주어진 것임을 역설하면서 바로 그 말씀을 선포하는 데에 교회의 사명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교회에게 이 세상을 향한 투신을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의 문화나 다른 종교들과 대화할 때에도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 사명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교회 공동체,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는 자리

 

각 부분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달부터 시작하여 한 해 동안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은 이 문헌의 서론에서 한두 가지 점만을 짚어두고자 합니다.

 

서론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하느님께서 영원하신 당신의 말씀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 바로 기쁜 소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사귀시고자(1요한 1,1-3 참조), 시간과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조건에 맞추어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는 때로 성경의 말씀이 알아듣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우리와 먼 나라의 문화를 전제하고 있으며,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들로 되어있고 때로는 우리말로 번역도 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읽을 수도 없는 히브리어 성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해도, 구유 앞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멀리 계신 하느님께서, 얼마나 가까이 오셨는지요!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가 떠오릅니다.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1열왕 8,27)

 

하느님께서 이렇게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와 사귀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당신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친구가 되자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 친교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교회이고, 온 세상이 그 친교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교회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는 체험이 되었고 이 세상 앞에서 그 친교를 증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하십니다.

 

이 교황권고의 서론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여러 측면에서 말씀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깊어진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계시헌장을 비롯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관한 이전의 교회 문헌들에 비하여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의 특징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는 자리가 교회 공동체의 친교라는 것, 그 친교가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태어나 그 말씀으로 살아가고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신앙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해석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천주교 주교회의 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1년 1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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