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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ㅣ구역반

소공동체 운동 10년, 새로운 10년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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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18

소공동체 운동 10년, 새로운 10년을 향하여

 

 

1. 소공동체를 찾아서 - 구리본당 15구역 3반

 

태풍의 영향으로 전날부터 비가 이어졌다. 의정부교구 구리본당(주임신부 서춘배 아우구스티노) 15구역 3반(반장 장혜림 수산나)의 소공동체 모임을 취재하러 나서면서 비도 많이 오는 데에다 토요일 저녁 모임이라 참석자가 적을 것이라는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이미 거실을 가득 메운 남녀 신자들이 서울대교구에서 발행하는 『길잡이』를 따라 복음 나누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37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공동체는 3분 1 정도가 모임에 참석하고, 3분 1은 주일미사나 신심단체 활동은 하지만 여기에는 참석하지 않으며, 그 나머지는 쉬는 교우들이라고 한다. 지난 7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저녁 8시에 평균 13-15명의 인원이 끊이지 않고 모임을 꾸려온 이 공동체의 저력은 잠시나마 이 모임을 참관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공식 모임 일정에 이어진 간단한 다과 시간에 참석자들은 그동안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변화하고 느낀 점들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서로 자주 대하면서 깊은 이야기까지 하다 보니까 친교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토요일마다 모이는 것을 처음에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공동체 안에 들어서면서 이런 모임 자체가 안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밖으로만 나가는 성향이 강했는데 소공동체에 참여하면서 안에 들어와 있는 것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미사 때 강론을 들어도 마음에 잘 안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소공동체 모임을 가지면서부터는 복음 말씀이 쏙쏙 박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생활하는 눈으로 복음을 보니 그렇겠지요.”

 

“저는 예전에 주일미사에도 잘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아내가 반장이 되면서부터 지난 7개월 동안 이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여태껏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좋았던 적은 없었던 같습니다. 예전에는 서너 번 연락 오면 한 번 정도 구역 모임에 나가곤 했는데, 지난 7개월 동안 이런 생활을 해왔다는 게 제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아직은 사실 소공동체의 정확한 밑그림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는 것과 신앙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고, 요즘엔 주말이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동체가 처음부터 오늘과 같이 잘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녀 신자가 각각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가졌다. 남성 신자들의 경우 남성 사도모임을 가졌는데 남자들만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 자체가 좀 엄숙해서 처음 온 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또 참석했다고 해도 모임 뒤에는 늘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로 갈리곤 했다. 그러던 것이 부부 중심의 모임으로 전환하고 또 토요일마다 모임이 이루어지면서 공동체로서의 기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서춘배 주임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공동체가 잘되려면 다른 많은 요소들이 충족되어야겠지만 우선적으로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매주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어쩌다 한 번,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하는 것으로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동체라면 어느 정도 자기 시간을 희생하면서 시간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둘째, 남녀노소가 함께 모여야 합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적어도 부부끼리는 함께 만나야 합니다. 이제 교회의 중심을 본당이 아니라 가정에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구리본당 15구역 3반 공동체가 지금처럼 성공적인 공동체상을 향해 나아가게 된 데에는 지난 5월에 열렸던 구역 바자회가 기폭제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바자회라고 하면 본당 차원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구역에서 바자회의 모든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았던 벽이 많이 무너졌던 것이다. 바자회에서 나온 수익금으로는 먼저 ‘본당 30년사’를 발행하는 데 후원하였고, 구역의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피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 공동체의 정착에는 본당 자체가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체제로 전환한 것도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본당에서는 각 구역장들이 사목협의회를 구성하고, 예비신자 교리 역시 소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했다. 앞으로는 청(소)년 소공동체의 활성화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역별 사목에 중점을 두어 구역장(사목위원)은 반장들과 역할 담당자들과 월 1회 사목모임을 가져 사목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도록 하였다. 또한 본당 홈페이지의 구역별 게시판을 이용하여 온라인에서도 원활한 나눔이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2. 전문가들이 보는 소공동체 운동 10년의 공과와 전망

 

지난 7월 12일부터 15일까지 충남 연기군에 있는 정하상 교육회관에서는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산하 소공동체 사목 전국협의회와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회 소공동체 심포지엄과 제3회 소공동체 전국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교회가 추진해 온 소공동체 사목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전망하는 자리였는데, 특히 교회 내 소공동체 전문가들의 소공동체 운동 10년에 대한 평가가 인상적이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먼저 소공동체 운동을 받아들였던 서울대교구의 소공동체 운동 10년의 성과에 대해 정월기 신부는 말씀 중심(복음나누기 7단계의 정착), 평신도 사도직 활성화, 삶의 현장(가정과 직장) 중심으로의 전환, 교회 개방성의 증대, 새로운 지도력의 창출 등을 꼽았다. 반면에, 소공동체에 대한 사목 비전, 본당 사목자들의 교구 사목 방향에 대한 불신이나 거부감,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사목 정책의 결여, 토착화된 소공동체 모델과 프로그램 마련의 미흡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수원교구 윤민구 신부는 대부분의 교구와 본당에서 현재 실시하고 있는 거주지 중심의 소공동체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모일 수 있는 ‘시간’보다 사는 ‘곳’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신자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현실은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윤 신부는 “구역과 반으로 나누어 소공동체를 구성하면 모든 신자가 소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허구”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일 수 있는 시간, 비슷한 환경과 관심사 등을 중심으로 소공동체를 자발적으로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거주지 중심의 구성은 그 뒤에 해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교적 관리에서도 현재와 같이 가족 중심으로 하지 말고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야 거주지 중심으로 자동적으로 소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산교구의 강윤철 신부는 소공동체와 본당 사목협의회와의 긴밀한 연관을 위한 사목협의회 구성 사례를 제시하였다. 이것은 이전과 같이 위에서 아래로 선임하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히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구성하는 방식이다. 우선 본당 12개 구역에서 각기 사목협의회에 참여할 사람을 추대한 가운데 총 11개 위원회 가운데 적어도 5개 위원회에서 일할 사람을 추대하게 하였다. 그리고 현 위원장이 추천하고 본당신부가 위촉한 사람들과 관련 단체장은 당연직이 되어 각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먼저 각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 위원들이 위원장을 선출하여 본당신부의 인준을 받았다. 사목회장은 각 위원회 위원 전원과 구역·반장, 단체장들이 모인 사목협의회 총회에서 선출해서 본당신부의 인준을 받는 절차를 거쳐 임명되었다. 

 

강 신부는 소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데에는 교회의 지도력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이전까지 사제가 갖고 있던 지도력을 수도자와 평신도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어야 하며, 평신도들도 이런 지도력의 공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지도력의 나눔은 권한의 나눔을 의미하는데 소공동체 안에서도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봉사자 직책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공동체와 사도직 단체들과의 관계에 대해 서울대교구의 강영옥 박사는 근본적으로는 “소공동체의 바탕 위에 사도직 단체들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한 제안 사항으로는 소공동체에 대한 사목자와 신자들의 비전 공유, 평신도의 자발성 증진, 소공동체와 단체들과의 관계 정립에서 성직자의 독단 제거 등을 열거하고 있다.

 

 

3. 새로운 10년을 향하여 

 

참석자들은 소공동체 전국모임 마지막 날에 발표한 최종 선언문을 통해 먼저 소공동체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와 아시아의 통합 사목적 접근(ASIPA)의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지향한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참가자들은 소공동체가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함께 책임을 나누는 지도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사도직 운동들을 포용함으로써 다양성 안의 일치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가 현재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은 모든 문제가 유기적으로 겹쳐져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통합 사목적 접근을 모색하는 소공동체야말로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근원적인 대안”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또한, 소공동체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을 기본 구성원으로 하므로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가족들이 함께 소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매주 모여 복음 나누기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최종 선언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소공동체 운동을 연결시켜 파악하면서 “이 땅에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소공동체를 더욱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선언문은 한국교회가 실천하는 소공동체의 이론적 근거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공동체 정신에 두며 거기서 자양분을 받을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선 본당 신자들에게 한국교회가 지난 10년 동안 소공동체 운동을 해왔다고 하면 무슨 말인지 의아해한다. 이는 교구 차원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추진해 왔던 기획자들의 인식과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요즘 활성화되고 있다는 소공동체들을 보면 이 운동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이내의 본당이 많다. 그리고 한때 활성화되던 공동체가 지금은 다시 침체되어 있는 경우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소공동체 운동이 앞으로 헤쳐가야 할 장애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실례로 한국교회의 지나친 사제 중심적인 공동체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잦은 사제 이동은 공동체의 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교회에서 소공동체는 이미 이루어진 현실이 아니라 지향해 나가야 할 목표이다. 이미 현실화된 것을 위해 ‘운동’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에 완성될 공동체의 이상(理想)으로 지금 우리 공동체의 현실을 지나치게 비판하거나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과도하다. 또한 사목자의 뜻대로, 소공동체 지도자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조급해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소공동체의 추구가 하나의 ‘운동’이라면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자발성’을 최대로 끌어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앞서야 한다. 

 

우리는 지난 10년을 통해 많은 것을 함께 발견하고 있다. 그리하여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사목 형태야말로 참된 교회 정신의 구현이라고 믿는 신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소공동체 운동이 교회의 위기를 돌파하는 일시적 사목 전략에 그치지 않고 항구적으로 추진할 만한 어떤 가치 있는 모델이라는 데에도 많은 신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도 소공동체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의 미래상(像)에 대한 더욱 풍요로운 신학적 성찰과 실천들이 뒤따르기를 바란다. 

 

소공동체 운동은 우리에게 교회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 이 운동을 통해 신자들이 교회가 어떤 가시적인 성당 건물이나 위계적 교회 제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이미 교회임을 깨달았다면 이보다 더 큰 수확이 어디 있을까.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사목, 2004년 10월호, 엄재중(본지 기자), 사진 김민수(경향잡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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