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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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죄짓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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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80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51) 죄짓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요?

 

 

Q. 수도원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가진 새내기 신자입니다. 제가 아는 수도자분들이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세례를 받았고 수도자가 되는 꿈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늘 같은 죄를 고백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수도원은커녕 제가 과연 신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죄를 끊어버리고 주님 뜻에 맞갖게 살 수 있을까요?

 

 

A. 우리는 세례 때 주례 사제가 “죄를 끊어버립니까?” 하는 물음에 “죄를 끊어버립니다” 하고 답 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 서약대로 단칼에 죄를 끊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만일 죄를 끊는다는 것이 가능했다면 고해소가 필요 없고 교회도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인생살이 가운데 늘 병이 따라다녀서 병원이 필요하듯, 죄 역시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고, 고해성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죄는 끊어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성향을 감소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려면 기존의 방법, 죄를 끊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는 방법과는 반대로 죄를 짓고 살아야만 하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끊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심리적 상처와 병적 콤플렉스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본당에 열심한 신자가 상담을 청해왔습니다. 이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잘하는데 왜 그런지 자신보다 어린 새 단원이 들어와 일을 잘하면 그렇게 미운 마음이 솟아올라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매님 왜 그러느냐”고 다른 사람들이 물으면 그 신자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고해성사를 봐도 미움이 가시지를 않는다는 이 자매님은 마음의 상처가 깊은 분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어린 시절 더 어리고 예쁘고 착한 동생을 편애했습니다. 그는 부모에게 “너는 언니가 돼서 왜 그 모양이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 안에 깊은 상처와 병적 콤플렉스가 생겼던 것입니다. 결국 그분은 분노 해소 치료를 받으며 간신히 마음의 편안함을 되찾았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미워해서 고해성사를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저 사람만 없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 마음 안에서 문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이 또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또 고해성사를 지속적으로 보면 될 거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피상적 고백만 하면 겉 증상은 일시적으로 치유가 된 듯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은 문제가 생깁니다. 뿌리를 치유한 것이 아니기에 ‘완전강박증’이나 ‘세심증’ 혹은 ‘심한 종교적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큽니다. 따라서 이분들은 심리상담을 겸한 고해성사를 받아야 치유가 가능하고, 죄를 짓는 성향도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죄가 욕망과 결부돼 있어 끊기가 어렵습니다. 욕망이란 인간 생존과 직결된 관계를 갖는 기제입니다. 이 생존기제는 가장 원초적인 것으로 이성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젊은 신부가 나이 지긋한 신부에게 상담을 청했습니다.

 

“성당에서 예쁜 자매님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할머니들은 예쁜 자매님들을 ‘마귀들’이라고 하는데, 왜 저는 마음이 흔들리는 걸까요?”

 

그러자 노인 신부가 말했습니다. “예쁜 여인들이 자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안 흔들릴 텐데, 하느님보다 더 마음이 끌리니까 흔들리는 것이지. 하느님은 연세가 많으시니, 자네가 젊고 예쁜 여인을 보고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야.”

 

그 말에 젊은 신부는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없을까요?” 하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노인 신부는 “내 경험으로 보건대 그건 불가능해. 나도 이 나이가 돼도 흔들리는 걸. 그렇게 흔들리며 사는 게 인생이야” 하고 말씀하시더랍니다.

 

욕망과 결부된 죄를 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죄를 통제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버려둔 채 사는 게 낫지 않느냐, 어차피 죄짓고 사는 게 인생인데” 하는 분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사에 아주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밭에 잡초를 아무리 뽑아도 잡초가 다시 난다고 해서 그냥 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나중에는 밭 그림자도 구경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 마음 역시 밭과 같아서 늘 갈고 뽑고 해야 하는데, 무리해서 하면 지치고, 방치하면 마음의 상태가 형편없어지니 매일 밭을 일구는 농부 심정으로 자기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평화신문, 2012년 5월 13일,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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