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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공동체 갈등 상담: 공간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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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5-25 ㅣ No.151

[공동체 갈등 상담] 공간의 영성


제가 지방에서 강의를 할 때 “사람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어떤 분이 “눈물의 씨앗입니다!”라고 답해서 좌중이 폭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오랜 철학적 물음입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답을 내어놓았고 아직도 그 답이 나오고 있는 현재진행형 물음입니다. 영성심리에서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존재’라고 합니다. 씨줄날줄의 교차점처럼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몇 시에 어디서 만날까’라는 말들을 하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 얼마나 자각하고 사는지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짓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간보다 시간에 더 많이 신경을 씁니다. ‘시간은 화살과 같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아껴 써라.’ 등등의 말이 있지요. 장례미사 강론에서 자주 언급하는 주제 역시 시간입니다. 성경에서도 시간의 중요함을 여러 곳에서 전하고 있고, 수도원에서는 아예 시간 전례라는 기도를 만들어서 시간의 중요성을 마음에 각인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에 반하여 공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들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간 인식은 일상생활이나 영성생활에서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가 공간에 대하여 가장 절실한 느낌을 가질 때는 언제일까요? 만원 버스나 사람이 꽉 들어찬 지하철을 탔을 때, 셋방살이 단칸방에서 여러 식구가 자야할 때, 만석인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에서 꼼짝도 못하고 몇 시간을 가야할 때, 우리는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낍니다. 이렇듯 공간이 중요하기에, 사람들은 돈을 벌기만 하면 더 넓은 집을 사고 더 큰 차를 삽니다.

그렇지만 공간의 영성은 이런 본능적 욕구와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좁은 공간 안에 두어야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살펴봅시다. 일각에서는 중세 가톨릭이 유럽 중세 암흑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러나 중세 유럽의 학문은 가톨릭 수도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수도원에서 배출되었고, 그들이 만든 대학들이 중세 유럽 지성인들을 산출하는 사회적 자궁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수도원에서 이렇게 걸출한 인물들이 나왔을까요? 수도자들은 자신을 좁은 공간 안에 가두어놓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훈련하는 시간을 평생토록 가졌기 때문입니다.

중세가 아닌 현대에 와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수도승처럼 살았다.”입니다. 불가의 성철스님이 10년 수행을 하실 때 철조망을 치신 것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당신 자신이 스스로를 좁은 공간 안에 가두고 수도에 정진하기 위한 방책으로 그리하기도 하신 것입니다. 가수 박진영 씨가 가수지망생들에게 “나는 지금도 고3수험생처럼 산다.”라고 한 말 역시, 성공을 얻으려면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프랑스에는 몽생미셸이라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넓은 갯벌에 생뚱맞게 솟아오른 바위산 위에 세워진 수도원.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곳은 처음에는 수도원이었다가 한때 감옥으로 쓰였고, 지금은 다시 수도원으로 사용하는 건물입니다. 이 수도원 안에서 돌 창문 틈새를 내다보면 넓은 갯벌이 보이는데, ‘창을 내다보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달랐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인생의 아이러니가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창을 통해 탈출하고 싶은 답답함을 느꼈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 창을 통해 내적 자유와 감사를 느꼈겠지요. 이런 상반된 장면이 연출된 곳이 바로 몽생미셸 수도원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꼭 이 수도원과 비슷합니다. 때로는 감옥 같고 때로는 수도원 같은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그런 우리 인생에서 영성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자유롭게 살고픈 욕구를 절제하고 스스로를 좁은 공간에 가두고 집중하는 역설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가 본당 사목을 25년간 하면서 본당마다 조용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늘 시끄러운 소문의 진원이 되는 분들이 있음을 경험합니다. 대개 조용한 분들은 자신을 기도방에 가두고 스스로를 다듬는 분들이고, 시끄러운 분들은 마음이 감옥이라고 답답해하면서 정신 사납게 사는 분들이더군요. 그러니 성공을 못하고 늘 그런 인생을 삽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6월호,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가좌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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