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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8: 한스 큉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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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9-28 ㅣ No.350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 (18) 한스 큉 (하)
 
종교 간 대화와 세계 윤리 정립에 힘써



국내에 소개된 한스 큉 저서들.
 

1978년에 발간된 「신은 존재하는가?」는 「그리스도인의 실존」보다 신학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가톨릭 철학자 에머리히 코레트(E.Coreth, 1919~2006) 신부는 책의 전반부, 곧 데카르트에서 시작해 니체에 이르는 근대 사상과 겨루면서 화해와 극복을 추구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계속된 교회 교도권에 대한 큉의 비판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큉은 근대 무신론조차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유독 가톨릭교회의 제도와 교도권에 대해서만 왜 그렇게 비판적인지 묻고 싶다." 큉과 교회 교도권과의 해묵은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

1967년 「교회」로 시작된 교황청 신앙교리성과의 갈등은 1970년에 발간한 「무류라고?」로 인해 더욱 고조된다. 신앙교리성은 조사를 위한 '대화'에 큉을 부르지만, 큉은 '대화'의 공정한 규정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 그 후 협상은 지루하게 진행되다가 1975년 2월 조건부로 마무리된다. 큉이 앞으로 교황 무류권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신앙교리성에서도 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갈등은 수습됐다.
 

교회 교도권과 마찰

하지만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직후, 큉은 다시 교황 무류권을 언급했다. 1979년 초 발간한 「진리 안에 보존된 교회?」라는 소책자에서 교황 무류권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새 교황에게 이 문제에 관한 대화를 요청했다.

신앙교리성은 이를 1975년에 맺은 합의를 깬 것으로 간주하고, 1979년 12월 18일 성명을 통해 "한스 큉 교수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가톨릭교회의 온전한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므로 그는 가톨릭 신학자로 간주될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큉은 가톨릭교회의 이름으로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사제직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큉은 튀빙겐대 측과의 조율을 거쳐 독자적 지위를 얻게 된다. 가톨릭 신학부 소속이 아닌 총장 직속의 교회일치 신학 교수로서, 그 직책과 연관된 교회일치연구소 소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스 큉은 이렇게 특별한 조건에서 활동하다가 1995년 12월에 정년 퇴임했다.

가톨릭 교수 자격을 박탈했음에도 큉의 학문 활동은 왕성하게 계속됐는데, 연구 초점은 가톨릭교회와 신학 울타리를 넘어 좀 더 넓은 분야로 확장된다.
 

세계 종교의 기초 연구
 
우선 전통적 신학 주제를 대상으로 한 저서는 종말론을 다룬 「영원한 생명?」(1982), 교회일치를 지향하는 자신의 신학적 방법론을 제시한 「새로운 출발점에 선 신학」(1987), 사도신경 해설서 「믿나이다」(1992) 정도다. 이에 비해 종교와 문학, 특히 여러 종교에 대한 저작들을 다수 출판했다. 「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1984), 「문학과 종교」(1985), 「신학과 문학」(1986), 「그리스도교와 중국의 종교」(1988), 「인간성의 변호인들」(1989) 등이다.

1990년에 출간한 「세계 윤리 구상」(1992년 우리말 번역)에서 큉은 원대한 계획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인류 상황을 고찰해볼 때 생존을 위해선 인류 전체를 위한 윤리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런 측면에서 대 종교들이 인류를 위해 공헌할 바가 매우 큰데, 세계 윤리는 윤리 담지자인 세계 종교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협력을 위해선 종교 간 대화가 필수적이다. 큉은 자기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세계 윤리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종교의 평화 없이는 세계의 평화도 없고, 종교의 대화 없이는 종교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

큉은 종교 간 대화를 위해 각 종교에 대한 기초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리고 긴장과 다툼이 많은 세 종교, 곧 아브라함에게 기원을 둔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대한 기초 연구를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실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인간이 2000년대에 돌입하면서 대 종교들의 취지는 어떠한 것일까? 무엇이 지속돼야 하고, 무엇이 변화돼야 하는가? 영속적인 신앙의 요체는 무엇이며 변화하는 징후는 무엇인가? 종교 사이의 적대는 어디에 있으며, 병존과 분화, 수렴과 갈등의 진원지 그리고 대화의 씨앗은 어디에 있는가?"

큉은 세 종교에 대한 연구 결과를 차례로 발표했다. 1991년에는 「유다교」, 1994년에는 「그리스도교」(2002년 우리말 번역), 2008년에는 「이슬람」(2012년 우리말 번역)을 썼다. 큉은 이 책에서 패러다임 분석을 통해 각 종교가 어떻게, 또 왜 오늘날의 모습이 됐는지를 고찰하고 바람직한 미래 모습을 제시했다.

큉은 자신이 주창한 세계 윤리 구상이 실현되도록 적극 활동했다. 19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협의회가 제정한 '세계 윤리를 위한 선언'의 산파 역할을 했다. 이 선언은 장차 세계 윤리의 기초가 되는 4가지 기본 원칙을 담고 있다. △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비폭력의 문화 △ 정의로운 경제 질서와 연대성의 문화 △ 진실한 삶과 관용의 문화 △ 남녀의 평등과 동반의 문화를 의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1995년 세계 윤리 구상의 구체적 실현을 돕는 '세계윤리재단'이 설립됐고, 큉은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2012년 4월에는 큉이 명예교수로 있는 튀빙겐대에 '세계윤리연구소'가 세워졌다.
 

큉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주의
 
큉은 가톨릭 교수 자격이 박탈된 후, 자신의 신학을 변호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철두철미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논하는 신학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신앙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표현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집중은 신학 연구 초기에서부터 일관성 있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그리스도 이해는 동일하게 머물지 않고 큰 변화를 겪는다. 칼케돈공의회의 교의 결정에 근거한 전통적 그리스도론, 이른바 '위로부터 그리스도론'에서 현대의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역사의 예수에 초점을 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큉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삶은 성경에 토대를 둬야 한다고 확신하는데, 그 성경의 중심은 역사의 예수라고 주장한다. 이런 전제하에 성경에서 출발해 교의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성경의 중심인 역사의 예수를 신학의 근본 규범으로 삼아 교회 전통 요소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해 의미를 축소하거나, 제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방법론은 큉의 대표작 「그리스도인의 실존」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큉은 이 책을 통해 목표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정확하면서도 오늘의 현실에 부응하고 최근의 연구 현황에 바탕을 두면서도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교 설계의 결정적 특징을, 그리스도교적 실천을 위해서 도출하는 것이다. 이 설계가 원래 2000년의 먼지와 쓰레기에 덮이기 전에 무엇을 뜻했었으며, 이 설계가 오늘 새로이 조명될 때 각자에게 뜻있고 보람찬 삶을 위해 무엇을 뜻할 수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또 다른 복음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 유일한 옛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환영만이 아니라 교회와 전통을 소홀히 한다는 거센 비판도 받는다. 바로 여기에 큉이 극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면서 교회 교도권과 심각한 마찰을 빚은 이유가 있다.

교황 무류권에 대한 논쟁은 많은 물의를 빚었지만, 그가 이유 있는 질문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없는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 주제에 내재한 문제를 끄집어내 공론화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큉이 시도한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전통 그리스도론의 핵심 내용을 불충분하게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 자체가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질문과 시도는 정당하지만 해결책은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학자 하인리히 프리스(H.Fries, 1911~1998) 신부는 현대인들, 특히 의심과 물음이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을 설득력 있게 전하려는 큉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큉으로 인해서 불안을 느끼는 신자들 외에도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이 큉의 저서, 특히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신은 존재하는가」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위해 진정한 도움을 발견하거나 신앙을 강화하고, 신앙 이해와 획득을 위해 새롭고 신뢰할만한 입구를 찾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목자와 교리교사, 설교자에게 위에 언급한 두 책은 진정 귀중한 보고(寶庫)가 됐다. 큉은 자신의 말과 글을 통해 교회 변두리에 자리한 사람과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 신앙과 거리를 두고서 교회를 비판적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도달한다."

교황 무류권 문제로 큉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칼 라너 신부도 비슷한 취지로 얘기했다. "나는 큉의 여러 입장을 비판적으로 거부하는 견해를 밝혔고 나름대로 항변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한스 큉의 긍정적 의미와 자유주의적이고 대중적이며 회의적인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전해주려는 그의 성실한 노력을 존중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1981년 12월 칼 라너는 다른 여러 신학자와 함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큉과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대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한스 큉 신부가 교회 교도권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결국 가톨릭 교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해서, 또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신학적 노력과 성과의 긍정적 측면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계속되는 세계 윤리 정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평화신문, 2013년 9월 29일,
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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