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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공동체 갈등 상담: 본당이 시끄러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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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4 ㅣ No.146

[공동체 갈등 상담] 본당이 시끄러운 이유는? (1)

 

 

작금에 본당마다 시끄러운 일들이 적지 아니 일어나고 있고, 성당이 전처럼 조용하지 않고 도떼기시장처럼 되어간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어떤 성당은 본당신부와 신자의 갈등 때문에, 또 어떤 곳은 신자와 신자간의 갈등 때문에, 또 어떤 곳은 수녀님과 신자들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시끄럽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요즈음 사람들이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말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나름의 설명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문제를 표피적이고 단편적으로 단정하는 것이지 공동체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는 못합니다. 기껏해야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약발 없는 처방으로 일시적인 안정감만 줄 뿐, 그 뿌리는 여전히 남아서 언제라도 다시 불씨가 될 여지를 남깁니다. 따라서 본당이 안정을 찾으려면 불안정한 이유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당이 시끄러운 첫 번째 이유는 신자들 중에 마음의 상처가 깊은 분들이 많을 때, 특히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던 분들이 성당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대인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성장하면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지도자가 된 후에는 다른 신자들을 돌보고 본당 신부나 수도자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충실한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합니다. 어떤 본당에는 여러 본당 신부들을 도운 사목위원들이 있습니다. 어떤 신부가 오더라도 성심껏 도움을 드렸기에 어떤 신부에게라도 환영을 받고, 본인이 그만두고 싶어 해도 그만두지 못하는 은총 아닌 은총을 누리는 분들, 이런 분들은 대개 부모와의 관계가 좋았던 분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 오는 본당 신부들과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키고 신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고 내 편, 네 편을 갈라놓는 분들, 본당이 하루도 조용하지 않게 하는 분들은 왜 그런 것일까요? 자신들은 정의롭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본인들의 미성숙함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는 능력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성장과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점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아가 아닌 문제어른이 되고만 것입니다. 물론 이런 관점은 비단 신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본당 신부들 역시 신자들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놓는다면 같은 관점에서 벗어날 여지가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만 찾으려고 할 때입니다.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삶입니다. 자기 문제를 보고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삶, 그래서 가톨릭 신앙인들은 ‘수도복을 입지 않은 수도자’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자기 문제를 보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에는 본당이 자기 문제를 다듬는 수도원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재판정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미사 중에 우리는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구절은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결코 신앙의 성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내적인 성숙은 자기 문제를 보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내 탓이오’ 운동을 하신 것 역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너무 심하게 다른 사람들을 몰아 붙여 나라가 갈라질 듯한 위기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또한 문제 발생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는 내적 탐색과 내적 성찰을 하지 않는 한 안정감을 갖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기도하지 않을 때입니다. 시끄럽다고 소문난 본당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기도하기보다 모여서 서로 헐뜯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헐뜯음은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때에 하게 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대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기도 중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경우가 드물고, 설령 기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고, 교회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아주 중요한 장입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성당은, 하느님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기에 당연히 주도권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연스레 그런 성당은 갈등이 심하고 시끄러워지겠지요. 본당이 조용한 분위기를 간직하려면 모두가 성령의 빛 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수도자적인 삶을 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해답임을 말씀드립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1월호,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가좌동 성당 주임)]

 

 

[공동체 갈등 상담] 본당이 시끄러운 이유는? (2)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못한 이기적인 행동인가 하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본성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더 깊은 것에 대하여 죄의식을 갖거나 자신을 비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웃 사랑을 강조하신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자기애(自己愛)가 지나칠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자신도 성장하지 못하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친 경우를 일컬어 ‘자기애적 성격장애’라고 합니다. 이 말의 시작은 그리스의 나르시스 신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반해서 만지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본당에 이런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이 많을 때, 신자 간에 분열이 잦고 조용할 날 없이 시끄럽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에 대하여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지나치게 자부심을 가지거나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데 있습니다. 본당에 가면 터주대감 노릇을 하는 신자들을 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정말 말없이 봉사하고 일하면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사사건건이 부딪치고 싸우다가 등을 돌리고 사는 분들도 적지 아니 있습니다. 이분들은 본당신부가 새로 오면 제일 먼저 찾아가서 자기가 본당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 그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기도 합니다. 혹은 자기가 거느리고 다니는 사람을 앞세워서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양 소문을 내도록 합니다. 왜 이렇듯 유아적이고도 미성숙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평소에 성공 권력에 대한 공상에 젖어 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열등생일수록 성당 안에서 자기 권력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봉사직인 직분을 자기 권력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새로 오는 본당신부를 자기 권속으로 만들려고 하여서 자기와 좋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식의 반협박 언행을 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합니다.

 

제가 몇 해 전 새 본당에 부임을 하였는데, 처음가자마자 이런 분을 만났습니다. 주일날 미사가 끝나서 신자분들과 인사를 하는데, 딱 가로막고서서 자신이 저보다 경험과 경력이 많으니 자기 조언을 들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예전에도 그랬다는데, 제가 상대를 안 하고 피하니 결국 다른 성당에 가서 제 욕을 하고 다니더랍니다. 이런 분은 신자 공동체 안에서도 기피대상 1호입니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감탄을 요구하다보니 주위 사람 또한 피곤해져서 가까이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애적 성격장애인 사람이 성당에서 요직을 차지하면 본당신부들은 아주 힘이 듭니다. 사사건건 본당신부와 맞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기가 심어놓은 심복들을 다 빼어버려서 본당신부의 힘을 빼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분들이 많이 있는 본당의 신부나 순한 신자들은 너무나도 자주 상처를 입습니다. 그들이 뱉듯이 하는 말에 상처를 받고 마음의 병을 앓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쉽게 상처를 입히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즉 자기애적 성격장애가 있으면 주위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기의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치 심술궂은 어린아이처럼 마음에 들면 헤헤거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치 쓰레기나 폐품처럼 대하여서 마음에 심한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이분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였다가 느닷없이 평가절하를 하는 등 극과 극을 오가는 병적인 행위를 번복하기도 합니다. 특히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지나친 분노를 표출하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각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마치 폭군처럼 피비린내 나는 적대적 행위를 서슴치 않고 행합니다. 이렇게 폭군적 기질을 발휘하는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성격이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두려워합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늘 우울감이 존재하고 자존감이 낮습니다. 즉 마음에 당당함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항상 주위에서 자기를 보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에 대해 안테나를 세우고 삽니다. 바로 칭찬결핍증 환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기만하면 자신의 공을 늘어놓아서 칭찬을 들으려 구걸을 하는 것이고, 행여 다른 사람이 자기를 비판하면 속이 뒤집어져서 이성을 잃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처럼, 그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위에 가까이 있으면 언제 똥물을 뒤집어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2월호,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가좌동 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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