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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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밤에 우리 영혼은 - 그래,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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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26 ㅣ No.1262

[영화 칼럼]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 2017년 감독 리테쉬 바트라


그래, 함께 해요

 

 

영화는 불쑥 이렇게 시작합니다. 5월의 어느 날 저녁, 미국 콜로라도의 작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이웃해 살았지만 특별한 교류가 없는 이웃집 여자 에디(제인 폰다 분)가 찾아와서는 “가끔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잘래요.”라고 제안합니다.

 

루이스(로버트 레드포드 분)는 당황합니다. 뜬금없고 황당한데다, 아무리 70대 노인이지만 남녀가 ‘한집에 같이 잔다.’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지요. 그러나 에디가 바라는 것은 결혼도, 육체관계도 아닙니다. 외로운 밤을 견뎌내기 위해 누군가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고 싶은 것입니다.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둘은 오래전에 각자 아내와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대충 저녁 식사를 하고, 신문의 낱말 퍼즐을 풀고, TV에서 일기예보나 보면서, 이따금 멀리 사는 아들이나 딸의 전화를 받고 잠자리에 들어 뒤척이곤 했습니다.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에디가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데도 루이스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제안대로 <밤에 우리 영혼은>에서 루이스는 에디의 침대에 함께 누워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잠을 자고는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 갖지 않기로 합니다. 너무 오래, 아니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노년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그들의 용기와 도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결코 별난 격정이나 도발이 아닙니다. 그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 스스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알고 봤더니 자신이 온통 말라죽은 것이 아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각자가 쌓은 것들, 자기만의 삶과 연결된 것들은 좋든 싫든 그대로 두면서 ‘거짓’ 없는 대화를 통해 다름과 같음을 확인하고, 과장된 연민이나 공감 없이 위로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둘의 영혼은 따스한 위안과 평화, 기쁨으로 채워지고 윤기를 되찾습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에디와 루이스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들을 안고 품고 있습니다. 에디에게는 교통사고로 딸을 잃으면서 아들, 남편과 단절되는 절망이 있었고, 루이스에게는 한때의 외도로 아내와 딸에게 갖게 된 죄책감과 꿈을 포기한 회한이 있습니다. 그 상처들을 나지막이 주고받는 그들은 아픈 티를 내지 않는데 정작 옆에서 그것을 보고 듣는 우리의 가슴이 아픕니다.

 

에디와 루이스는 물론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편견과 장애물로 둘의 도전이 오래 지속될 수 없으리란 사실을. 딸과 아들의 노골적인 반감과 몰이해, 아들의 가정과 어린 손자를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상황 앞에서 여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곳이 아닌, 누군가와 진심으로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새로운 관계와 시간이 내 것이 되지 못하는 순간, ‘밤에 그들의 영혼’은 다시 쓸쓸해진다는 사실을. 해마다 늘어나는 독거노인과 노인자살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늙고, 혼자일수록 영혼은 더 방황하며,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을.

 

[2021년 7월 25일 연중 제17주일(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서울주보 4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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